[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아담 판 브렌(Adam van Breen, c.1585~c.1645)은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 회화의 풍성한 생태계 속에서 겨울 풍경화 장르를 전문적으로 개척한 화가다. 암스테르담 출신으로 추정되는 그는 '겨울 풍경화의 시인'으로 불리는 헨드릭 아베르캄프(Hendrick Avercamp)와 함께 네덜란드 동계 풍경화의 양대 선구자로 분류된다. 생애 후반에는 노르웨이 오슬로로 이주해 덴마크-노르웨이 왕실의 후원을 받으며 활동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미술사적으로 판 브렌은 렘브란트·페르메이르·할스 같은 최상위 거장들의 그늘에 가려진 '특화된 거장'으로 분류되어 왔지만, 겨울 풍경화 분야에서만큼은 동시대 어떤 화가와도 견줄 수 있는 독보적 역량을 인정받는다. 그가 활동한 17세기 초는 유럽에 '소빙하기(Little Ice Age)'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로, 네덜란드의 강과 운하가 매년 두꺼운 얼음으로 덮혔다. 이 자연 현상은 단순한 기후 변화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 현상이었으며, 판 브렌은 그 생동하는 현장을 누구보다 생생하게 화폭에 담아냈다.
살아 숨 쉬는 겨울 축제의 전경
1611년 제작된 '얼어붙은 암스텔 강 위에서 스케이트 타기' 는 목판(oil on panel) 위에 유채로 완성된 43×65cm의 소품이다. 현재 워싱턴 DC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National Gallery of Art)에 소장되어 있다.
화면은 얼어붙은 암스텔 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겨울 축제의 전경을 파노라마처럼 담아낸다. 구성의 핵심은 전경·중경·원경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탁월한 공간감의 처리다. 화면 하단 전경에는 17세기 네덜란드 귀족과 시민 복식을 화려하게 갖춰 입은 남녀 무리가 얼음 위에서 담소를 나누거나 스케이팅을 즐기고 있다. 자주색·붉은색·검정의 풍성한 의상과 깃털 달린 모자들이 겨울의 흰 설경과 극적인 색채 대비를 이루며 화면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중경으로 눈길을 옮기면 수십 명의 인물들이 광활한 빙판 위에서 스케이팅·썰매·대화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오른편에는 붉은 돛의 풍차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원경에는 암스테르담 도시의 교탑 실루엣이 안개처럼 가라앉아 있어 이 장면이 실재하는 특정 지역의 기록임을 확인시켜 준다. 왼편으로는 앙상한 겨울나무 사이에 플랑드르-네덜란드 양식의 붉은 기와집이 자리하고,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화면에 온기를 더한다. 하늘에는 새 떼가 흩어져 날고, 구름 사이로 엷은 겨울 햇살이 빙판 위를 은빛으로 물들인다.
화법적으로 판 브렌은 전경 인물들의 복식 세부까지 정교하게 묘사하면서, 원경으로 갈수록 터치를 느슨하게 풀어 대기 원근법을 자연스럽게 구현한다. 43×65cm라는 소형 패널이 이토록 광대한 공간감과 수백 명의 인물을 품을 수 있는 것은 이 정밀한 구성 설계 덕분이다.
겨울을 기록한 역사화
이 작품의 가치는 미술사적 차원과 문화사적 차원 모두에서 중층적으로 조명된다. 미술사적으로 이 그림은 16세기 말 피터르 브뤼헐에서 출발한 북방 겨울 풍경화의 전통이 17세기 초 네덜란드에서 독자적으로 꽃피는 과정을 증언하는 중요한 사료다. 귀족과 시민이 계층 구분 없이 어울리는 빙판 위의 풍경은 당시 네덜란드 공화국 특유의 상대적으로 수평적인 사회 문화를 반영하며, 스케이팅이 이미 17세기 초에 계층을 초월한 국민적 레저로 완전히 자리 잡았음을 시각적으로 증명한다.
문화사적으로는 소빙하기 네덜란드 사회의 일상을 생생하게 기록한 시각 문서로서의 가치가 크다. 풍차·범선·운하·전통 가옥 등 화면 곳곳의 시각 요소들은 당시 네덜란드의 지리적·건축적·경제적 환경을 한 화면 안에 압축적으로 담아낸다.
400년 전 겨울 오후의 웃음소리
이 그림 앞에서 관람자는 묘한 따뜻함을 느낀다. 겨울 풍경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는 냉기보다 온기가 가득하다. 전경의 인물들이 나누는 담소, 아이들의 작은 몸짓,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빙판 위 수십 명이 만들어내는 활기찬 생의 리듬이 화면 전체를 데운다.
색채의 운용도 이 온기에 기여한다. 차갑고 회색조의 하늘과 빙판 위에서 전경 인물들의 붉고 자주빛 의상이 빛처럼 튀어오른다. 그것은 마치 추운 겨울 거리에서 마주치는 붉은 뺨과 웃음소리 같은 감각이다. 43cm 남짓의 작은 패널이 이토록 광대한 세계와 생의 기쁨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추위는 삶을 멈추지 않는다. 강이 얼어붙을 때 오히려 사람들은 강 위로 내려와 함께 축제를 벌인다—이 그림은 그 단순하고 아름다운 진실을 400년째 조용히 증언하고 있다.
그림 속 빙판에서 밀라노까지—네덜란드가 스케이팅 최강국인 이유
이번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에서도 네덜란드는 스피드스케이팅 종목에서 압도적인 메달 강국의 위상을 이어가고 있다. 인구 1,800만 명의 소국이 빙속 종목에서 세계를 제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담 판 브렌의 이 1611년 그림이 그 답의 출발점을 보여준다.
첫째는 400년을 이어온 문화적 DNA다. 이 그림이 증명하듯 네덜란드인에게 스케이팅은 17세기 초부터 귀족과 서민, 노인과 아이를 막론하고 전 국민이 즐기는 일상적 이동 수단이자 레저였다. 운하와 강이 얼어붙으면 온 도시가 자연스럽게 빙판으로 나섰고, 스케이팅은 생존과 이동의 기술이기도 했다. 이 수백 년의 문화적 축적이 오늘날 '스케이팅은 네덜란드인의 피 속에 있다'는 말로 이어진다.
둘째는 지형적 조건이 만들어낸 구조적 강점이다. 해수면보다 낮은 저지대 국가인 네덜란드는 운하와 수로가 전국에 거미줄처럼 뻗어 있다. 소빙하기 절정기에는 이 운하들이 매년 얼어붙어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자연 빙상 트랙을 형성했다. '엘프스테던토흐트(Elfstedentocht)'는 그 전통의 현대적 계승으로, 프리슬란트 지방 11개 도시를 잇는 약 200km의 천연 운하 스케이팅 대회다. 이처럼 일상과 스포츠가 분리되지 않은 환경이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층을 자연스럽게 양성해 왔다.
셋째는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과 국가적 지원이다. 현대 네덜란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실내 빙상 훈련 시설과 과학적 코칭 체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스피드스케이팅 전문 클럽 문화가 전국적으로 발달해 있다. 400년 전 암스텔 강 위 그 익명의 스케이터들이 오늘의 네덜란드 선수들의 먼 조상인 셈이다.
판 브렌의 붓 끝에서 얼음 위를 미끄러지던 17세기 네덜란드인들의 몸짓은, 2026년 밀라노의 빙상 트랙 위에서도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
희소하나 시장에서 주목받는 이름
아담 판 브렌의 작품은 현존 수량이 극히 적어 국제 경매에 등장하는 빈도가 낮다. 그러나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 풍경화에 대한 컬렉터들의 수요가 꾸준히 높은 만큼, 진품이 출품될 경우 상당한 관심을 끈다. 동일 장르를 다룬 헨드릭 아베르캄프의 소품 겨울 풍경화가 크리스티·소더비 경매에서 수백만 달러에 낙찰된 사례를 참고하면, 판 브렌의 주요 작품 역시 수백만 달러 이상의 시장 가치를 지닐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 소장의 이 대표작은 사실상 공개 시장에서 거래될 수 없는 미국 국가 문화재급 소장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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