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프랑스의 고음악 전문 레이블 K617이 선보인 DVD 'Caminos Barrocos(바로크의 길)'는 남미 대륙에 전해진 바로크 음악의 놀라운 역사를 조명하는 역작이다. "바로크의 길 대장정의 피날레(Le final des Chemins du Baroque)"라는 부제가 붙은 이 영상물은 음악감독 가브리엘 가리도(Gabriel Garrido)와 연출가 올리비에 시모네(Olivier Simonnet)의 협업으로 탄생했으며, 2011년 12월 24일부터 2012년 1월 6일까지 진행된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바로크의 길’ 프로젝트는 예수회 선교사들이 남미 대륙에 전한 선교 음악의 흔적을 따라 탐색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오늘날 이 탐색은 수세기 동안 식민지 시대의 유산으로 이 혼혈 대륙의 역사에 완전히 새겨진 원주민 음악가들의 약속어음이 담긴 악보들을 낳았다.
선교와 음악, 그리고 문화적 혼종의 역사
이 DVD가 담아낸 것은 바로 그 섬세한 과정이다. 과라니어 가사의 복음주의적 멜로디를 통해 융합이 완벽하게 이루어진 레퍼토리를 기념하는 동시에, 수세기 동안 잊혀졌던 페루비아 키케로의 성스러운 드라마나 성 이그나시오의 신성한 드라마 등의 작품들을 되살렸다. 18세기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인디언 색채를 입힌 화려한 바로크 교회의 환영 속에서 이 작품들이 재현되었다.
카메라는 가볍게 움직이며, 이제는 자신의 운명을 주도하는 예술가들인 청년들의 모습을 포착한다. 새해의 여명에서 주교좌 성당의 합창과 오페라의 세속적 상징이 고조되는 가운데, 기타리스트들이 완전한 회개 속에서 이 겸손하고 위대한 역사, '타자(l'autre, the other)'에 대한 시선, 존엄의 시선, 문화적 메시지, 그리고 어떤 기록 기관도 결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상징을 채색한다.
가브리엘 가리도와 앙상블 엘리마의 역사적 소명, 남미 바로크 음악 부흥의 선구자
아르헨티나 출신의 지휘자이자 음악학자인 가브리엘 가리도는 남미 식민지 시대 음악 연구와 연주의 세계적 권위자다. 1970년대부터 유럽과 남미를 오가며 잊혀진 바로크 음악 악보들을 발굴해온 그는, 1985년 앙상블 엘리마(Ensemble Elyma)를 창단하며 본격적으로 남미 바로크 음악 복원 작업에 착수했다.
가리도의 접근법은 단순한 음악학적 복원을 넘어선다. 그는 유럽 바로크 음악이 남미 대륙에 전해지면서 겪은 변화, 원주민 음악 전통과의 융합, 그리고 그 과정에서 탄생한 독특한 혼종 문화를 종합적으로 조명한다. 그의 ‘바로크의 길’ 프로젝트는 25년에 걸쳐 볼리비아,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페루, 멕시코 등 남미 전역의 예수회 선교 지역을 탐사하며 귀중한 음악 유산을 발굴해냈다.
파라과이 바로크 앙상블과 현지 음악가들의 참여
이 DVD의 특별한 가치는 파라과이 바로크 앙상블(Ensemble Paraguay Barroco)과 현지 음악가들이 직접 참여했다는 점이다. 솔리스트로 참여한 플라비오 올리버(Flavio Oliver), 실바나 구아텔리(Silvana Guatelli), 다미안 라미레스(Damian Ramirez), 막시밀리아노 바뇨스(Maximilliano Banos) 등은 모두 남미 출신 성악가들로, 과라니어와 스페인어 가사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며 작품의 진정성을 더했다.
특히 생 조셉 중학교의 "알테리테(Alterite, 타자성)" 합창단의 참여는 상징적이다. '타자'를 뜻하는 합창단 이름은 이 프로젝트의 핵심 주제를 담고 있다. 유럽인과 원주민, 선교사와 피선교민,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문화적 만남과 상호 변용을 음악을 통해 표현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앙상블 엘리마의 바로크 악기 연주자들, 특히 알렉상드르 쇼포(Alexandre Chauffaud)를 비롯한 기악 주자들은 시대 악기를 사용해 17-18세기 남미 선교 지역의 음향을 재현했다. 바로크 바이올린, 비올라 다 감바, 하프, 기타, 그리고 원주민 타악기들이 어우러져 유럽과 남미가 만나는 독특한 음색을 창조했다.
도메니코 치폴리: 이탈리아에서 남미로 간 바로크 거장, 예수회 선교사 작곡가의 특별한 여정
이 DVD에서 가장 중요한 작곡가는 도메니코 치폴리(Domenico Zipoli, 1688-1726)다. 로마에서 태어나 베르나르도 파스퀴니에게 작곡을 배운 치폴리는 당대 이탈리아 바로크 음악의 정통 교육을 받은 뛰어난 오르가니스트였다. 1716년 로마의 예수회 교회 일 제수(Il Gesù)의 오르가니스트로 임명되며 촉망받는 경력을 시작했지만, 1717년 예수회에 입회하며 그의 인생은 극적으로 전환된다.
1717년 예수회 선교사로서 남미행 배에 오른 치폴리는 1718년 아르헨티나 코르도바에 도착했다. 그러나 사제 서품을 받기 전인 1726년, 38세의 젊은 나이로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짧은 생애였지만, 그가 남미에서 작곡한 음악들은 파라과이와 볼리비아의 예수회 선교 지역(레두시온, Reducción)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치폴리의 '성 이그나시오 오페라(Opera San Ignacio)'와 '성 이그나시오 미사(Misa San Ignacio)'는 예수회의 창립자 이그나시오 데 로욜라를 기리기 위해 작곡된 작품들이다.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의 정교함과 남미 선교 지역의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신앙심이 결합된 이 작품들은, 유럽 음악이 신대륙에서 어떻게 토착화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치폴리 음악의 이중성: 유럽적 세련미와 선교적 실용성
치폴리는 로마에서 활동할 당시 코렐리와 헨델의 영향을 받은 세련된 건반 음악과 실내악을 작곡했다. 그의 오르간 소나타들은 당시 이탈리아 바로크 음악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러나 남미에 도착한 후 그의 음악은 변화했다. 과라니 원주민 음악가들이 연주할 수 있도록 기술적 난이도를 조정하고,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악기 편성을 고려했으며, 과라니어 가사를 위한 멜로디를 작곡했다.
이러한 변화는 예술적 타협이 아니라 문화적 번역이었다. 치폴리는 유럽 바로크 음악의 화성적 풍요로움과 대위법적 정교함을 유지하면서도, 원주민들이 쉽게 배우고 연주하며 감동받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냈다. 그의 미사곡들은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보다는 아마존 정글 속 소박한 선교 교회에서 울려 퍼질 음악이었지만, 그 음악적 가치는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과라니 익명 작곡가들: 문화 융합의 산 증인, '달콤한 나의 예수(Dulce Jesus mio)'와 과라니 성가들
DVD에 수록된 익명의 과라니 성가들은 이 프로젝트의 핵심을 이룬다. '달콤한 나의 예수(Dulce Jesus mio)'를 비롯한 과라니어 성가들(Chants guaranies)은 유럽 선교사들이 전한 그레고리오 성가와 르네상스 다성 음악이 과라니 원주민의 음악 전통과 만나 탄생한 독특한 작품들이다.
이 성가들의 작곡가들은 대부분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회 선교사들로부터 음악 교육을 받은 과라니 원주민 음악가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7-18세기 파라과이와 아르헨티나의 예수회 선교 지역에서는 원주민 아이들에게 체계적인 음악 교육이 이루어졌고, 그들 중 일부는 뛰어난 작곡가와 연주자로 성장했다.
과라니어 가사에 붙여진 이 멜로디들은 유럽 바로크 음악의 화성 구조를 따르면서도, 과라니 언어의 억양과 리듬을 자연스럽게 반영한다.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선율, 반복적이면서도 명상적인 구조는 원주민 공동체의 집단적 신앙 표현에 적합했다. 이는 유럽 교회 음악의 일방적 이식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문화적 대화였다.
후안 데 아라우호: 안데스 바로크의 거장, '용감한 자들이여, 경계하라(Alarma Valientes)'
스페인 출신이지만 남미에서 활동한 후안 데 아라우호(Juan de Araujo, 1646-1712)는 치폴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남미 음악사에 기여했다. 그는 파나마, 리마, 그리고 볼리비아의 수크레(당시 라플라타)에서 활동하며 400곡이 넘는 종교 음악을 작곡했다.
아라우호의 '용감한 자들이여, 경계하라(Alarma Valientes)'는 성탄절을 위한 빌란시코(villancico, 스페인어 캐럴)로, 군사적 은유를 사용해 그리스도의 탄생을 찬양하는 작품이다. "경계하라", "무장하라"와 같은 전투적 언어는 반종교개혁 시대 가톨릭교회의 전투적 신앙관을 반영하면서도, 동시에 정복과 식민화라는 역사적 맥락과도 연결된다.
그러나 아라우호의 음악은 단순한 유럽 음악의 복제가 아니었다. 그는 안데스 지역의 민속 리듬과 선율을 자신의 작품에 통합했으며, 현지 악기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의 빌란시코들은 스페인 바로크의 화려함과 안데스의 생동감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다.
가스파르 페르난데스: 멕시코와 과테말라의 바로크, '쇼치(Xiochi)'와 원주민 언어 성가
포르투갈 출신으로 멕시코와 과테말라에서 활동한 가스파르 페르난데스(Gaspar Fernandes, c.1570-1629)는 가장 이른 시기에 남미에서 활동한 중요 작곡가 중 한 명이다. 그의 빌란시코 '쇼치(Xiochi)'는 나우아틀어(아즈텍 제국의 언어)로 작곡된 성가로, 유럽 음악과 원주민 언어의 만남을 보여주는 초기 사례다.
페르난데스는 250곡이 넘는 빌란시코를 남겼는데, 그 중 상당수가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나우아틀어, 그리고 아프리카 노예들의 언어가 혼합된 다언어 작품이다. 이는 식민지 남미의 복잡한 인종적, 문화적 구성을 음악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특히 아프리카계 주민들의 방언과 리듬을 모방한 "네그리야(negrilla)" 빌란시코들은 당시 사회의 다층적 현실을 담고 있다.
'쇼치'에서 페르난데스는 나우아틀어의 음운론적 특성을 고려한 멜로디 라인을 만들었다. 유럽 다성 음악의 대위법적 구조 안에서 원주민 언어가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하는 그의 기법은 문화적 감수성과 음악적 숙련도를 동시에 보여준다.
예수회 선교 지역의 음악적 유토피아, 레두시온: 음악이 중심이 된 공동체
17-18세기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우루과이 지역에 세워진 예수회 선교 지역(레두시온, Reducción)은 독특한 사회 실험이었다. 유럽 선교사들과 과라니 원주민들이 함께 살며 농업, 공예, 그리고 무엇보다 음악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를 형성했다.
음악은 이 선교 지역에서 단순한 예배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교육의 수단이자, 공동체 정체성의 표현이며, 유럽과 원주민 문화가 만나는 장이었다. 선교사들은 과라니 아이들에게 악기 제작법, 악보 읽기, 성악과 기악 연주를 가르쳤고, 일부 원주민들은 작곡까지 배웠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어떤 선교 지역에는 수백 명의 음악가들이 있었고, 유럽의 대성당에 버금가는 규모의 합창단과 오케스트라가 존재했다. 바이올린, 하프, 오르간 등의 유럽 악기들이 현지에서 제작되었고, 원주민 음악가들은 몬테베르디, 비발디, 코렐리의 작품들을 연주했다.
식민주의와 복음화의 이중성
그러나 이러한 음악적 성취는 식민주의라는 복잡한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예수회 선교 지역은 원주민들을 스페인 식민 당국의 직접적 착취로부터 보호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지만, 동시에 유럽 문화의 강요와 원주민 전통 종교의 억압이라는 측면도 존재한다.
음악은 이 이중성의 중심에 있었다. 유럽 바로크 음악은 복음화의 도구였지만, 동시에 원주민들에게 새로운 예술적 표현 수단을 제공했다. 과라니 음악가들은 유럽 음악을 단순히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들의 문화적 감수성으로 재해석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이 DVD에 담긴 독특한 남미 바로크 음악이다.
음악이 표현하고자 했던 것들, 복음의 메시지와 문화적 번역
이 DVD에 수록된 작품들이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단순한 종교적 메시지를 넘어선다. 표면적으로는 그리스도의 탄생, 성인들의 덕행, 성모 마리아에 대한 찬양 등 가톨릭 신앙의 핵심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더 깊은 차원에서 이 음악들은 문화적 만남, 번역, 그리고 융합의 과정을 기록한다.
과라니어로 부르는 "달콤한 나의 예수"는 유럽 선교사가 가져온 신학을 원주민의 언어와 감성으로 표현한 것이다. "달콤하다"는 형용사는 과라니 문화의 감성을 반영하며, 멜로디의 단순함과 반복성은 공동체적 참여를 가능하게 한다. 이는 유럽 교회 음악의 개인적, 명상적 성격과는 다른 집단적, 참여적 성격을 띤다.
치폴리의 미사곡들은 가톨릭 전례의 엄격한 구조를 따르면서도, 남미 선교 지역의 구체적 현실을 반영한다. 제한된 악기 편성, 원주민 음악가들의 기량에 맞춘 난이도 조정, 그리고 열대 기후의 습한 공기 속에서 울려 퍼질 음향적 특성 등이 고려되었다.
타자성의 존중과 문화적 대화
DVD 해설이 강조하는 "타자(l'autre)"에 대한 시선은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가브리엘 가리도와 올리비에 시모네는 이 음악들을 단순히 유럽 음악의 남미 전파 사례로 보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두 문화가 만나 새로운 것을 창조한 과정, 즉 진정한 의미의 문화적 대화를 조명한다.
DVD 속에서 젊은 파라과이 음악가들이 300년 전 자신들의 조상이 연주했던 음악을 다시 부르고 연주하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이는 식민지 시대의 유산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재해석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과거의 음악은 현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
존엄의 시선: 역사적 정의와 문화적 회복
DVD에서 언급하는 "존엄의 시선(regards sur 'l'autre', de dignité)"은 이 프로젝트의 윤리적 차원을 드러낸다. 수세기 동안 유럽 중심의 음악사에서 주변부로 밀려났던 남미 바로크 음악을 복원하는 것은 단순한 학술적 작업이 아니라, 역사적 정의를 회복하는 행위다.
과라니 원주민 작곡가들의 이름은 대부분 전해지지 않는다. 그들의 음악은 익명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 DVD는 그들에게 목소리를 돌려준다. 21세기의 청중들은 이 음악을 통해 식민지 시대 원주민 음악가들의 창의성, 예술성, 그리고 주체성을 발견한다. 그들은 단순한 모방자가 아니라 창조자였다.
영상미와 음악의 결합, 바로크 교회의 시각적 장관
올리비에 시모네의 연출은 음악만큼이나 중요한 요소다. DVD는 남미 바로크 교회들의 화려한 내부를 담아낸다. 금박으로 장식된 제단, 정교한 목각 조각, 천사와 성인들의 생동감 넘치는 조상들은 유럽 바로크 예술의 장엄함과 원주민 장인들의 섬세한 손길이 만나 탄생한 결과물이다.
DVD에서 언급하듯, 이러한 시각적 요소들은 "18세기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인디언 색채를 입힌(sacré aux couleurs indiennes, est représenté dans une église baroque somptueuse)" 독특한 미학을 보여준다. 유럽 바로크의 화려함은 남미의 색채와 열정으로 재해석되어, 전혀 새로운 시각 언어를 창조한다.
공동체의 부활: 젊은 음악가들의 헌신
DVD는 현대의 젊은 음악가들이 이 음악을 배우고 연주하는 과정을 포착한다. 리허설 장면, 토론하는 모습, 그리고 마침내 무대에서 연주하는 순간들은 이 프로젝트가 단순한 고음악 연주를 넘어 살아있는 전통의 재창조임을 보여준다.
특히 새해 전야(2011년 12월 31일)부터 새해 첫날(2012년 1월 1일)로 이어지는 연주회 장면은 강력한 상징성을 지닌다. 옛 것과 새 것, 과거와 현재, 유럽과 남미, 죽음과 부활이 음악을 통해 하나로 연결되는 순간이다. 기타리스트들이 "완전한 회개 속에서(en toute plénitude)" 연주하는 모습은 음악이 단순한 예술을 넘어 영적 체험임을 암시한다.
남미 바로크 음악의 현대적 의의, 탈식민주의적 음악사 서술
이 DVD의 가장 중요한 의의는 유럽 중심의 음악사 서술에 도전한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바로크 음악사는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영국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왔다. 남미는 유럽 음악의 수용자로만 간주되었고, 남미에서 창조된 음악은 주변적인 것으로 취급되었다.
가리도의 25년 프로젝트는 이러한 관점을 전복한다. 남미 바로크 음악은 유럽 음악의 열등한 모방이 아니라, 독자적 가치를 지닌 창조적 성취다. 더 나아가 이 음악들은 문화적 만남과 혼종성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다루며, 21세기 다문화 사회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문화유산 보존의 긴급성
DVD에서 지적하듯, 이 음악들은 "수세기 동안 잊혀졌던(oubliés depuis des siècles)" 것들이다. 많은 악보들이 아직도 남미 각지의 교회와 도서관에 묻혀 있으며, 일부는 손상되거나 소실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이 프로젝트는 이러한 유산을 발굴하고 기록하며 연주함으로써, 후대에 전승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동시에 이 음악들을 연주할 수 있는 전통도 보존해야 한다. 파라과이와 볼리비아의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바로크 음악 연주 전통이 살아있지만, 세계화와 현대화의 물결 속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 젊은 음악가들을 훈련하고 이 전통을 이어가게 하는 것은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문화적 다양성 보존의 문제다.
음악을 통한 화해와 대화,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는 예술
식민지 역사는 남미 대륙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원주민 인구의 급감, 문화의 파괴, 경제적 착취는 오늘날까지도 그 영향이 남아 있다. 예수회 선교 지역의 역사 역시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일부는 이를 원주민 보호의 모범 사례로 보지만, 다른 이들은 문화적 제국주의의 한 형태로 비판한다.
그러나 이 DVD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역사적 판단이 아니라 대화의 가능성이다. 음악은 과거의 복잡성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그 속에서 아름다움과 창조성을 발견한다. 유럽 선교사와 과라니 음악가가 함께 만든 이 음악들은 갈등과 만남, 지배와 저항이 공존했던 역사적 순간을 증언한다.
현대의 연주자들이 이 음악을 다시 부르는 것은 과거를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대화하며 미래를 모색하는 행위다. DVD 해설이 말하는 "문화적 메시지(message culturel)"는 바로 이것이다: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날 때, 갈등과 파괴만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도 가능하다는 것.
25년 여정의 결실
'Caminos Barrocos'는 단순한 음악 DVD가 아니다. 그것은 25년에 걸친 탐구의 결실이며, 잊혀진 역사의 복원이고, 문화적 정의의 실천이며, 무엇보다 음악을 통한 인간 존엄의 회복이다. 가브리엘 가리도와 올리비에 시모네, 그리고 수많은 남미 음악가들의 헌신이 빚어낸 이 작품은 바로크 음악이 유럽만의 것이 아니라 인류 공동의 유산임을 웅변한다.
이 프로젝트는 "어떤 기록 기관도 결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상징(symbole qu'aucune agence de notation ne questionnera jamais)"을 창조했다. 그 상징이란 음악의 보편성, 문화 간 대화의 가능성, 그리고 예술을 통한 화해와 치유의 힘이다.
300년 전 아마존 정글과 안데스 산맥에서 울려 퍼졌던 이 음악들이 21세기 청중들에게 다시 들려지는 순간,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인간의 창조성과 영성이 연결됨을 경험한다. 'Caminos Barrocos'는 바로크의 길이 단순히 과거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로도 이어지는 살아있는 길임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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