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독일 베를린 클래식스(Berlin Classics)가 발매한 안톤 슈바이처(Anton Schweitzer, 1735-1787)의 오페라 '알체스테(Alceste)'는 독일 오페라사에서 기념비적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이 음반은 2007년 바이마르의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Herzogin Anna Amalia Bibliothek) 재개관을 기념해 열린 공연을 담고 있으며, 독일 고전주의 시대의 중요한 문화유산을 현대에 되살린 역사적 기록물이다.
이 오페라는 아말리아 여공작(Herzogin Anna Amalia)의 후원을 받은 작품으로, "독일어로 된 최초의 오페라(erste Oper in deutscher Sprache)"라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계몽주의 극작가 크리스토프 마르틴 빌란트(Christoph Martin Wieland)가 연극 형식으로 쓴 대본을 18세기 후반의 작곡가 안톤 슈바이처가 음악으로 완성했다.
바이마르 고전주의와 아말리아 여공작의 문화적 유산
이 녹음은 단순한 오페라 실황을 넘어 바이마르 고전주의 재단(Klassik Stiftung Weimar)의 페스티벌 주간(Festwoche) 행사의 일환으로 제작되었다. 2004년 화재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던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이 복구되어 재개관하는 역사적 순간을 축하하기 위해, 바로 그 도서관과 인연이 깊은 작품이 선택된 것이다.
아말리아 여공작(1739-1807)은 18세기 독일 문화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 공작의 딸로 태어나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공작과 결혼한 그녀는 남편이 일찍 사망한 후 섭정으로서 바이마르를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그녀는 괴테, 실러, 헤르더 같은 문인들을 바이마르로 초청했으며, 자신의 도서관을 구축해 독일 계몽주의 사상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콘체르토 쾰른과 미하엘 호프슈테터의 역사적 연주, 시대악기로 되살린 18세기 독일의 소리
이 음반의 연주를 맡은 콘체르토 쾰른(Concerto Köln)은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고음악 앙상블 중 하나다. 1985년 창단된 이 단체는 지휘자 없이 운영되는 독특한 방식으로 유명하며, 바로크와 고전주의 시대 음악을 시대악기로 연주하는 데 있어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이 녹음에서는 미하엘 호프슈테터(Michael Hofstetter)가 음악감독으로 참여해 오페라 전체를 총괄했다. 호프슈테터는 바로크와 고전주의 시대 오페라 연주에 특화된 지휘자로, 잊혀진 레퍼토리를 발굴하고 역사적 고증에 충실한 연주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콘체르토 쾰른의 연주는 18세기 독일 궁정 오케스트라의 음향을 충실히 재현한다. 바로크 바이올린의 따뜻한 음색, 내츄럴 호른의 부드러운 울림, 하프시코드와 오르간이 만들어내는 통주저음의 풍성함은 모차르트 이전 시대 독일 오페라의 독특한 음향 세계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특히 당시 만하임 악파의 영향을 받은 역동적인 다이나믹과 정교한 오케스트레이션이 돋보인다.
4인의 솔리스트, 계몽주의 오페라의 이상을 구현
타이틀 롤인 알체스테를 맡은 지모네 슈나이더(Simone Schneider)는 독일 소프라노로, 바로크와 고전주의 시대 오페라에서 탁월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그녀의 목소리는 18세기 독일 오페라가 요구하는 명료한 딕션과 표현적인 레치타티보, 그리고 서정적인 아리아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다재다능함을 보여준다.
알체스테의 남편 아드메트(Admet) 역을 맡은 크리스토프 겐츠(Christoph Genz)는 독일 리트와 오라토리오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테너다. 그의 섬세한 표현력과 명료한 딕션은 빌란트의 시적인 텍스트를 최대한 살려낸다. 겐츠는 특히 18세기 독일어 텍스트의 운율과 억양을 음악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하는 능력으로 유명하다.
파르테니아(Parthenia) 역의 신디아 지덴(Cynthia Sieden)은 미국 출신 소프라노로, 바로크 오페라와 오라토리오에서 탁월한 기량을 인정받고 있다. 그녀의 기교적으로 완벽한 콜로라투라와 표현력 있는 연기는 부차적 역할인 파르테니아에게도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헤라클레스(Herkules) 역을 맡은 요제프 바그너(Josef Wagner)는 바리톤으로, 영웅적 인물의 고귀함과 힘을 목소리로 표현한다. 그의 중후한 음색과 명료한 발성은 고대 그리스 영웅의 위엄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평론가들은 네 명의 솔리스트가 "최고의 기량으로, 큰 울림을 지닌(mit höchster Bravour, großartig)" 까다로운 성악 파트를 훌륭하게 소화했다고 평가한다.
미하엘슈타인 실내합창단의 정교한 앙상블
카머코어 미하엘슈타인(Kammerchor Michaelstein)은 독일의 저명한 실내합창단으로, 바로크와 고전주의 시대 합창 음악에 특화되어 있다. 이들의 투명하고 균형 잡힌 합창은 18세기 독일 궁정 합창단의 양식을 충실히 재현하며, 오페라의 극적 순간들을 효과적으로 뒷받침한다.
특히 고대 그리스 비극의 전통을 따르는 합창의 역할 - 사건을 논평하고, 도덕적 교훈을 제시하며,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반영하는 - 을 정교하게 수행한다. 이는 빌란트와 슈바이처가 추구했던 계몽주의적 교육 극장의 이상을 실현하는 핵심 요소다.
안톤 슈바이처: 독일 오페라의 선구자, 음악 개혁가의 여정
안톤 슈바이처는 1735년 슈바벤의 코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은 그는 바이로이트에서 교육받았으며, 이후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 당대 최고의 작곡 기법을 익혔다. 1760년대 그는 만하임 궁정에서 활동하며 당시 유럽 최고 수준이었던 만하임 오케스트라의 혁신적인 연주 기법을 체득했다.
1770년대 슈바이처는 바이마르로 이주해 아말리아 여공작의 궁정악장으로 임명되었다. 바로 이 시기에 그는 빌란트와 협력하며 독일어 오페라 창작에 몰두했다. 당시 독일 궁정들은 대부분 이탈리아 오페라 세리아나 프랑스 오페라를 공연했지만,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독일 민족의 정체성을 담은 독일어 오페라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었다.
슈바이처는 이러한 문화적 열망에 부응한 선구자였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배운 벨칸토 전통과 만하임에서 익힌 오케스트라 기법, 그리고 프랑스 오페라의 극적 구조를 종합하여 독일만의 음악극 양식을 창조하고자 했다.
독일 음악사에서의 위치: 글루크와 모차르트 사이
음악사적으로 슈바이처는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루크(1714-1787)의 오페라 개혁과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의 독일 오페라 사이에 위치한다. 글루크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오페라 개혁을 주도했지만 주로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로 작곡했다. 모차르트는 나중에 '마술피리(Die Zauberflöte, 1791)'로 독일어 징슈필(Singspiel)의 정점을 이루었다.
슈바이처는 이 둘 사이에서 독일어로 된 본격 오페라의 가능성을 탐색한 인물이다. 그의 '알체스테'는 모차르트의 '이도메네오(Idomeneo, 1781)'나 '마술피리'보다 10년 이상 앞선 작품으로, 독일어로 된 진지한 오페라가 예술적으로 성공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슈바이처의 음악 양식은 전고전파와 초기 고전파의 특징을 보여준다. 바로크 시대의 통주저음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만하임 악파의 역동적인 오케스트레이션을 적용했다. 아리아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다 카포 형식에서 벗어나 더 자유롭고 극적인 구조를 택했으며, 레치타티보는 프랑스 오페라의 영향을 받아 텍스트의 자연스러운 억양을 따른다.
빌란트와 슈바이처의 협업: 계몽주의 음악극의 탄생
1773년 바이마르에서 초연된 '알체스테'는 독일 계몽주의 운동의 산물이다. 18세기 중반 독일 지식인들은 정치적으로는 수백 개의 연방국가로 분열되어 있었지만, 문화적으로는 통일된 독일 민족 문화를 창조하고자 열망했다. 그 핵심에는 독일어로 된 고급 예술의 창작이 있었다.
크리스토프 마르틴 빌란트(1733-1813)는 괴테, 실러와 함께 독일 고전주의 문학의 거장으로 꼽힌다. 그는 1773년 고대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알체스테'를 희곡으로 집필했다. 원작은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이지만, 빌란트는 이를 계몽주의 시대의 이상에 맞게 재해석했다.
빌란트의 대본은 "연극 형식의 스튜디오 연극(in der Form eines Spieles für das Studitheater)"으로 쓰였다. 이는 당시 독일 궁정극장의 관습인 화려한 무대 장치나 발레 장면보다는 텍스트와 음악, 그리고 연기의 진정성을 강조하는 형식이었다. 계몽주의 교육 이념에 따라 관객에게 도덕적 교훈을 전달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다.
에우리피데스에서 계몽주의로: 희생과 사랑의 재해석
고대 그리스 비극 '알케스티스'는 에우리피데스가 기원전 438년에 쓴 작품이다. 테살리아의 왕 아드메토스는 아폴론의 은혜로 죽음을 면할 수 있게 되지만, 대신 누군가가 그를 위해 죽어야 한다. 그의 아내 알케스티스만이 자발적으로 남편을 위해 죽음을 받아들이고, 결국 헤라클레스가 죽음의 신으로부터 그녀를 구출해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빌란트와 슈바이처는 이 고대 신화를 18세기 계몽주의의 핵심 가치들 - 이성적 덕성, 부부간의 사랑, 자기 희생, 그리고 인간의 고귀함 - 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알체스테의 희생은 단순한 운명론적 비극이 아니라 이성적 선택의 결과로 제시되며, 그녀의 행위는 계몽주의가 이상으로 삼는 도덕적 완성의 모범이 된다.
이 작품은 "아말리아 여공작의 후원을 받은(geförderten)" 오페라로서, 여공작 자신의 문화적 이상을 반영한다. 강인하고 지혜로우며 희생적인 여성상은 섭정으로서 바이마르를 이끌던 아말리아 여공작 자신의 모습과도 겹쳐진다.
글루크의 '알체스테'와의 비교
흥미롭게도 글루크도 1767년 비엔나에서 같은 소재로 '알체스테(Alceste)'를 작곡했다. 글루크의 작품은 이탈리아어 대본(라니에리 데 칼차비지 작사)으로 되어 있으며, 그의 유명한 오페라 개혁 이론 - 음악은 드라마에 봉사해야 한다 - 을 실천한 대표작이다.
슈바이처와 빌란트는 글루크의 작품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알체스테'는 글루크의 것과는 다른 방향을 택했다. 독일어로 된 대본, 더 서정적이고 서사적인 구조, 그리고 만하임 악파의 영향을 받은 오케스트레이션이 슈바이처판의 특징이다. 글루크의 엄격하고 고전적인 양식에 비해, 슈바이처는 더 다양한 색채와 감정의 뉘앙스를 추구했다.
오페라가 표현하고자 한 것들, 계몽주의의 핵심 가치: 이성, 덕성, 그리고 인간애
'알체스테'가 표현하고자 한 것은 계몽주의 시대의 이상적 인간상이다. 알체스테는 남편에 대한 사랑 때문에 죽음을 선택하지만, 이는 맹목적 열정이 아니라 이성적 숙고의 결과다. 그녀는 자신의 희생이 가져올 결과를 충분히 인지하고, 자유의지로 그 길을 택한다.
아드메트는 처음에는 아내의 희생을 받아들이지만, 곧 그것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깨닫는다. 그는 단순히 생명을 구한 것이 아니라 평생 죄책감과 함께 살아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러한 심리적 갈등과 도덕적 딜레마는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탐구하던 윤리학적 질문들과 직결된다.
헤라클레스의 개입은 신화적 장치이지만, 동시에 인간 연대와 우정의 가치를 상징한다. 그는 단순한 영웅이 아니라 친구를 위해 죽음의 세계까지 내려가는 도덕적 용기의 화신이다. 이는 계몽주의가 강조한 사회적 덕성과 인간애의 표현이다.
독일 문화 정체성의 추구
이 오페라의 더 깊은 의미는 독일어 자체에 있다. 18세기 독일 궁정에서는 프랑스어가 교양 있는 대화의 언어였고, 이탈리아어가 오페라의 언어였다. 독일어는 하층민의 언어로 간주되었다. 빌란트와 슈바이처는 독일어가 고급 예술의 매체가 될 수 있음을, 독일어로도 고대 그리스의 고귀한 정신을 표현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자 했다.
이 작품은 "독일어로 된 최초의 오페라"로서의 중요성을 지닌다. 이는 단순한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자립과 민족 정체성의 문제였다. 슈바이처의 음악은 독일어의 음운론적 특성 - 강세, 어미 변화, 복합어 구조 - 을 고려한 멜로디와 리듬을 만들어냈다.
특히 레치타티보에서 독일어의 자연스러운 억양을 살리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세코 레치타티보(secco recitativo)나 프랑스 오페라의 레시타티프(récitatif)와는 다른, 독일어만의 음악적 발화를 창조하고자 했다.
음악적 표현: 감정의 다층성과 오케스트라의 역할
슈바이처의 음악은 등장인물들의 복잡한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알체스테의 아리아들은 사랑, 두려움, 결연함, 그리고 체념이 교차하는 감정의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아드메트의 음악은 기쁨에서 절망으로, 다시 희망으로 이어지는 극적인 여정을 따른다.
오케스트라는 단순한 반주가 아니라 극의 중요한 참여자다. 만하임 악파로부터 배운 크레셴도, 다이나믹의 급격한 변화, 목관악기와 현악기의 대비 등을 통해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특히 알체스테가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장면, 아드메트가 그녀의 희생을 깨닫는 순간, 헤라클레스가 등장하는 장면 등에서 오케스트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을 음악으로 전달한다.
합창은 고대 그리스 비극의 전통을 따라 사건을 논평하고 도덕적 교훈을 제시한다. 그러나 슈바이처의 합창 음악은 바로크 오페라의 장중함과 전고전파의 투명한 텍스처를 결합하여, 계몽주의적 이성의 목소리를 구현한다.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과 문화유산의 재생, 화재에서 부활한 지식의 전당
2004년 9월 2일, 바이마르의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16세기부터 수집된 귀중한 도서 5만 권이 소실되었고, 중세 및 르네상스 시대의 필사본과 악보들도 상당수 피해를 입었다. 이는 독일 문화사에서 엄청난 손실이었다.
3년간의 복구 작업 끝에 2007년 도서관이 재개관했고, 그 기념행사의 하나로 이 '알체스테' 공연이 기획되었다.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이 오페라는 바로 아말리아 여공작의 후원으로 1773년 초연된 작품이며, 그녀의 문화적 유산을 대표하는 걸작이기 때문이다.
이는 "도서관 재개관을 기념한 공연(Aufführung anlässlich der Wiedereröffnung der Herzogin Anna Amalia Bibliothek)"이라고 명시할 수 있다. 화재로 파괴되었다가 재생된 도서관과, 오랜 세월 잊혀졌다가 재발견된 오페라의 운명이 상징적으로 겹쳐진다.
역사적 녹음의 의의, 잊혀진 레퍼토리의 복원
18세기 후반에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던 슈바이처의 오페라들은 19세기 들어 완전히 잊혀졌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이 빛을 발하면서, 그 이전 세대의 작곡가들은 음악사에서 사라졌다. 20세기 후반 고음악 운동이 활성화되면서 바로크 오페라들이 부활했지만, 전고전파와 초기 고전파 오페라들은 여전히 소외되어 있었다.
이 녹음은 그러한 공백을 메우는 중요한 작업이다. 음반 해설에서 지적한 "역사적 희곡을 바탕으로 한 새로 편집된 판본이 CD로 녹음되기를 갈망했다(the historic play was begging to be captured on CD)"는 표현은 이 작품이 얼마나 오랫동안 무시되어 왔는지를 암시한다.
베를린 클래식스 레이블은 구동독 시절부터 독일 음악 유산 보존에 헌신해온 레이블이다. 이들의 이 녹음 발매는 상업적 고려보다는 문화유산 보존이라는 사명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고증적 연주 실천의 모범
콘체르토 쾰른과 참여 음악가들의 연주는 18세기 독일 오페라 연주 관습을 충실히 재현한다. 시대악기 사용, 비브라토의 절제된 사용, 장식음의 즉흥적 추가, 그리고 레치타티보에서의 자유로운 템포 등이 모두 역사적 고증에 기반한다.
독일 오페라사의 잃어버린 고리, 모차르트 이전의 독일 오페라
음악사 저술서들은 종종 독일 오페라사를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에서 시작하는 것처럼 서술한다. 그러나 모차르트 이전에도 독일어 오페라 창작을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다. 슈바이처의 '알체스테'는 그러한 시도들 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였다.
1773년 바이마르 초연 당시 이 오페라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빌란트의 시적인 대본과 슈바이처의 아름다운 음악, 그리고 무엇보다 독일어로 부르는 본격 오페라라는 참신함이 관객들을 매혹시켰다. 이후 독일 여러 도시에서 공연되었고, 독일어 오페라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은 지속되지 못했다. 1780년대 모차르트가 '이도메네오'와 '후궁으로부터의 도주' 같은 걸작들을 내놓으면서, 슈바이처의 음악은 구식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19세기 낭만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전고전파 오페라들은 완전히 레퍼토리에서 사라졌다.
계몽주의 음악극의 이상과 한계
슈바이처와 빌란트의 '알체스테'는 계몽주의 음악극의 이상을 구현하지만, 동시에 그 한계도 보여준다. 도덕적 교훈과 이성적 덕성의 강조는 때로 극적 긴장감을 약화시킨다. 등장인물들이 너무 이상화되어 인간적 결함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음악적으로도 슈바이처는 모차르트와 같은 천재성은 보여주지 못한다. 그의 음악은 아름답고 세련되었지만, 모차르트의 오페라들이 보여주는 심리적 깊이, 극적 통찰, 그리고 음악적 혁신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이 작품이 레퍼토리에서 사라진 주된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알체스테'는 독일 음악사에서 중요한 이정표다. 모차르트와 베버, 그리고 바그너로 이어지는 독일 오페라 전통의 출발점에 슈바이처가 있다. 그가 없었다면 독일어 오페라의 발전은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 것이다.
21세기에 되살아난 18세기의 목소리
베를린 클래식스의 ‘알체스테’ 녹음은 단순한 역사적 호기심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그것은 독일 문화사의 중요한 순간을 생생하게 기록하며, 계몽주의 시대 지식인들의 이상과 열망을 음악을 통해 전달한다. 2007년 바이마르에서 이 오페라가 다시 울려 퍼졌을 때, 관객들은 단순히 옛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문화적 뿌리와 만나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화재로 파괴되었다가 재생된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처럼, 오랜 세월 잊혀졌다가 부활한 슈바이처의 '알체스테'는 문화유산의 복원력을 상징한다. 이 음반은 그 부활의 순간을 영원히 보존한다. 콘체르토 쾰른의 정교한 연주, 네 명의 뛰어난 솔리스트, 미하엘 호프슈테터의 설득력 있는 해석이 결합되어, 250년 전의 음악을 21세기 청중에게 생생하게 전달한다.
얀 필립 렘츠마의 상세한 해설과 함께 이 2CD는 단순한 오페라 녹음을 넘어 하나의 문화사적 문서가 된다. 독일 계몽주의, 바이마르 고전주의, 18세기 음악극의 발전, 그리고 문화유산 보존의 의미까지, 이 모든 것이 슈바이처와 빌란트의 '알체스테' 안에 압축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이 녹음의 진정한 가치이며, 독일 음악사 연구자와 오페라 애호가들에게 필수적인 자료가 되는 이유다.
klifejourney2025@gmail.com
[저작권자ⓒ K라이프저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이 소리] 250년 만에 되살아난 최초의 독일어 오페라](https://klifejourney.com/news/data/2026/02/16/p1065613667946124_931_h2.jpg)
![[이 소리] 리체르카르 레이블의 루이 14세 시대의 찬란한 음악 유산, 8CD로 만나다](https://klifejourney.com/news/data/2026/02/16/p1065589241502506_914_h2.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