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폴 세자르 엘뢰(Paul César Helleu, 1859~1927)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한 화가이자 판화가로, '벨 에포크(Belle Époque)'의 화려하고 우아한 상류 사회 문화를 캔버스와 종이 위에 탁월하게 옮긴 예술가였다.
브르타뉴 방데 지방 출신인 그는 파리 국립미술학교(에콜 데 보자르)에서 수학했으며, 이 시기 인상주의 거장 클로드 모네, 존 싱어 사전트(John Singer Sargent) 등과 깊은 교류를 맺으며 자신만의 섬세하고 유려한 화풍을 형성했다.
엘뢰는 특히 파스텔화와 드라이포인트(drypoint) 동판화 기법으로 큰 명성을 얻었으며, 당대 파리 사교계의 귀부인들과 미국 상류층 여성들의 초상화를 즐겨 그려 '우아함의 화가(Peintre de l'élégance)'라는 별칭을 얻었다. 뉴욕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의 천장 별자리 벽화 디자인에 관여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어, 그의 활동 영역이 순수 회화를 넘어 장식 예술 전반에 걸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인상주의의 세례를 받은 '벨 에포크의 목격자'
엘뢰는 모네와 마네의 인상주의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으나, 그의 작품 세계는 인상주의의 빛과 색채 실험보다는 당대 사교계 여성들의 우아한 일상과 감성적 분위기 포착에 더 집중됐다는 점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점한다.
그는 인상주의의 자유로운 붓터치와 빛의 표현 방식을 수용하면서도, 인물의 감성적 아름다움과 서사적 분위기를 전달하는 데 있어 사전트와 함께 당대 최고 수준의 역량을 발휘했다. 미술사 측면에서 엘뢰는 인상주의와 아르누보, 그리고 에드워드 시대 특유의 장식적 감수성이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회색빛 도빌 해변에 누운 한 여인의 고요한 오후
가로 81.8cm, 세로 48cm 크기의 이 유화는 프랑스 노르망디의 해변 휴양지 도빌(Deauville)의 해변을 배경으로, 모래사장 위에 비스듬히 엎드려 상념에 젖은 엘뢰 부인(알리스 귀에랭)을 담고 있다. 인물은 당대 벨 에포크 상류층 여성의 전형적인 복식인 라벤더 빛이 감도는 회청색 롱 드레스를 착용했으며, 머리에는 흰색 리본이 달린 여름용 챙 모자를 쓰고 한 손에는 상아빛 파라솔을 쥐고 있다.
화면 구성은 극도로 안정적이다. 화면 하단 2/3를 모래사장과 인물이 채우고, 상단 1/3에는 잔뜩 구름이 낀 회색빛 하늘과 그 아래 잔잔한 바다, 그리고 멀리 점점이 흩어진 요트들이 배치됐다. 오른쪽 원경에는 도빌 항구의 방파제와 등대로 추정되는 구조물이 수평선을 따라 자리하며 공간적 깊이를 더한다.
엘뢰는 인상주의 특유의 빠르고 자유로운 붓터치로 모래사장의 질감과 해풍에 흔들리는 갯가 풀을 생동감 있게 표현했으며, 전체 색조는 회색과 베이지, 라벤더의 절제된 팔레트로 통일되어 고요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벨 에포크 여성성의 기록이자 개인적 헌정
이 작품은 단순한 해변 풍경화가 아니라, 엘뢰가 평생의 뮤즈이자 반려자였던 아내를 화폭에 담은 사적이고 친밀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화가가 자신의 아내를 모델로 삼아 그린 작품들은 흔히 작가 내면의 감성과 시선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으며, 엘뢰의 알리스 초상 연작들 역시 이런 맥락에서 그의 작품 세계 전체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또한 이 작품은 19세기 말 프랑스 상류층이 즐겨 찾던 노르망디 해변 휴양 문화를 기록한 시대적 사료로서도 가치가 있다. 도빌은 당시 파리 사교계 인사들이 여름 피서지로 즐겨 찾던 곳으로, 엘뢰는 이 작품을 통해 한 시대의 우아한 여가 문화와 여성의 일상적 아름다움을 영원히 캔버스에 고정시켰다.
시간이 멈춘 듯한 회색빛 오후의 정적
이 그림 앞에 서면 묘한 정적과 고요함이 밀려온다. 잔뜩 흐린 하늘과 잔잔한 바다, 그리고 모래사장 위에 홀로 엎드려 세상과 단절된 채 상념에 빠져든 한 여인의 모습이 이루는 화면은, 마치 시간이 그 순간에 조용히 멈춰버린 것 같은 감각을 선사한다. 화가가 선택한 라벤더와 회색의 절제된 색조는 쓸쓸하지만 결코 슬프지 않은, 오히려 충만하고 자족적인 고독의 정서를 전달한다.
저 멀리 수평선 위를 미끄러지는 요트들은 세상의 소음을 상징하듯 화면 깊숙이 물러나 있고, 오로지 그녀만이 이 고요한 해변의 주인이다. 한 폭의 산문시처럼, 이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만의 고독하고 아름다운 오후를 상상하게 만든다.
경매 시장에서의 위치와 작품 가격
엘뢰의 작품은 국제 경매 시장에서 꾸준히 거래되며 안정적인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크리스티(Christie's), 소더비(Sotheby's), 드루오(Drouot) 등 주요 경매에서 그의 파스텔 작품과 드라이포인트 판화는 수천 달러에서 수만 달러 사이에 낙찰되는 경우가 많으며, 유화 작품의 경우 크기와 보존 상태, 주제에 따라 수십만 달러를 호가하는 사례도 있다. 특히 아내 알리스를 담은 도빌 시리즈 연작은 엘뢰 작품 중에서도 컬렉터들의 선호도가 높은 주제군으로 꼽힌다.
'도빌 해변의 엘뢰 부인'과 같이 개인적 서사가 담긴 유화 작품이 경매에 등장할 경우, 추정가는 작품의 출처(프로비넌스)와 전시 이력, 보존 상태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으나, 통상적으로 10만 달러(한화 약 1억 4천만 원) 이상의 평가가 이루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엘뢰는 모네나 르누아르와 같은 인상주의 거장들에 비해 대중적 인지도는 낮지만, 19세기 말~20세기 초 프랑스 회화에 관심을 가진 전문 컬렉터들 사이에서는 세련된 안목의 선택으로 꼽히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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