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에서 영광으로 — 스웨덴이 낳은 세계적 거장
[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안데르스 레오나르드 조른(Anders Leonard Zorn, 18601920)은 19세기말, 20세기초 스웨덴을 대표하는 화가로, 스웨덴 달라르나 주 모라(Mora)의 외가 농장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외조부모 손에서 자란 그는 빈곤한 유년 시절을 보냈으나 타고난 재능으로 1875년 스톡홀름 왕립 예술 아카데미에 입학해 탁월한 예술적 역량을 꽃피웠다.
조른은 특정 유파나 스승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화업을 개척한 것으로 유명하다. 수채화로 시작한 그는 이후 유화, 에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국제적 명성을 쌓았다. 파리 체류 시절인 1889년 세계박람회에서 메달을 수상하며 유럽 화단의 주목을 받았고, 미국으로 건너가서는 그로버 클리블랜드, 시어도어 루스벨트, 윌리엄 H. 태프트 등 세 명의 미국 대통령 초상화를 그리는 위업을 달성했다. 윌리엄 호워드, 스웨덴 국왕, 오스카 2세의 초상화도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미술사적으로 조른은 존 싱어 사전트, 호아킨 소로야, 제임스 휘슬러와 함께 19세기 말 서양 사실주의 회화의 최전선에 선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색채 철학은 황토색, 납백색, 상아 흑색, 진사 네 가지 색만으로 이루어진 극도로 절제된 팔레트에 기반했으며, 이 제한된 색채를 자유롭게 혼합해 놀라운 광채와 생동감을 만들어냈다.
수채화가 이룩한 사진 같은 현실감 — ‘솜마르뇨예’의 화법과 내용
‘솜마르뇨예(Sommarnöje, 여름의 즐거움)’는 조른이 수채화에 집중했던 초기 전성기인 1886년에 완성한 작품으로, 수채화·종이, 76×54cm의 크기이며 현재 개인 소장으로 전해진다.
화면은 스웨덴 군도(群島)의 한 부두인 달라뢰를 배경으로 두 인물이 묘사되어 있다. 흰 드레스와 흰 모자로 단장한 우아한 여성은 조른의 아내인 엠마 조른이고 조각배 위의 남자는 조른의 친구인 뱃사공 출신의 칼 구스타프 달스트롬이다. 노를 쥔 남자는 황색 밀짚모자를 쓴 채, 노동의 흔적이 역력한 손으로 배를 부두에 대려는 참이다. 흰 드레스의 상류층 여성과 작업복 차림의 서민 남성 — 두 계층의 대비가 이 그림의 핵심 구도를 이룬다.
조른의 수채화 기법이 가장 빛나는 부분은 단연 물의 묘사다. 잔물결이 이는 회청색 호수 혹은 만(灣)의 수면이 빛의 굴절과 반영을 머금은 채 살아 움직이는 듯 표현되어 있다. 수면의 반짝임, 배 아래 녹조의 그림자, 부두 기둥이 물 속에 드리운 어두운 반영까지 — 이 모든 것이 수채화의 매체적 특성을 극한까지 활용해 묘사되었다. 흐린 회색빛 하늘과 원경의 암회색 섬들은 스웨덴 여름 특유의 서늘하고 습윤한 대기를 정확하게 포착한다. 여성의 흰 의상은 이 모노크롬에 가까운 배경 속에서 유일하게 빛을 발하는 존재로, 화면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집중시킨다.
계층을 가로지르는 시선 — 스웨덴 여름의 사회적 초상
제목 '솜마르뇨예'는 '여름의 즐거움' 혹은 '여름 별장'을 뜻하는 스웨덴어로, 19세기 후반 스웨덴 상류층 사이에서 유행한 군도의 여름 휴양 문화를 암시한다. 그러나 조른의 시선은 단순한 휴양의 낭만에 머물지 않는다.
우아하게 차려입은 여성과 생업의 현장에서 온 남성이 부두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이 장면은, 19세기 스웨덴 사회의 계층 구조를 시각적으로 압축한 사회적 스냅숏이기도 하다. 가난한 농가 출신으로 상류층 사회에 진입한 조른 자신의 삶이 이 두 인물 사이 어딘가에 겹쳐진다. 그는 양쪽 세계를 모두 이해했기에, 그 어느 쪽도 낭만화하거나 희화화하지 않고 동등한 시선으로 담아낼 수 있었다.
또한 이 작품은 조른의 수채화 시기(1888년 이전)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그가 유화로 전환하기 이전에 이미 완숙한 대가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음을 증명하는 중요한 미술사적 증거이기도 하다.
부두 끝에 선 여름 — 서늘하고 아름다운 정감의 세계
이 그림 앞에 서면 먼저 스웨덴 여름 특유의 서늘하고 청아한 공기가 화면을 통해 전해진다. 뜨겁게 달아오른 남국의 여름이 아닌, 회색빛 하늘 아래 잔물결이 이는 북유럽의 여름 — 차갑고 맑고 약간은 쓸쓸한 그 계절의 감촉이 화면 전체에 배어 있다.
두 인물 사이의 시선 교환은 짧은 찰나를 포착한 것이지만, 그 안에 무수한 이야기가 함축되어 있다. 조른은 이 순간을 완성시키지 않은 채로 남겨두었다. 잔물결 위에 흔들리는 배처럼, 이 그림이 주는 감정도 조용히, 그러나 지속적으로 흔들린다.
조른의 시장 가치
안데르스 조른은 생전에도 막대한 부를 축적할 만큼 높은 상업적 성공을 거뒀고, 사후에도 그 명성은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크리스티, 소더비, 부코스키(Bukowskis) 등 주요 경매사에서 그의 작품은 지속적으로 높은 낙찰가를 기록 중이다. .
‘솜마르뇨예’는 2010년 경매에서 2,600만 스웨덴 크로네(한화 약 33억원)로 스웨덴 화가의 그림중 최고가를 기록하며 가치를 인정받았다. ‘솜마르뇨예’와 같이 초기 수채화 전성기를 대표하는 대형 작품이 경매에 출품될 경우, 수십만에서 수백만 달러의 낙찰가가 예상된다.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대통령의 초상을 그리고 세계 화단을 무대로 활약했던 조른의 생애 자체가 하나의 드라마였듯, 그의 그림들도 오늘날 세계 미술 시장에서 여전히 힘 있는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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