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독일 CPO 레이블이 프랑스 작곡가 프랑수아-조제프 고섹(François-Joseph Gossec, 1734-1829)의 종교음악을 담은 음반을 2020년에 발매했다. 이 음반에는 '라 나티비테(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모테트 '그리스도 구속자', '죽은 자들을 위한 미사(레퀴엠)' 등 고섹의 대표적인 종교음악 작품들이 수록됐다.
18세기 프랑스 종교음악의 재발견
이번 음반은 18세기 후반 프랑스 음악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했던 고섹의 종교음악을 재조명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특히 총 연주시간 69분에 달하는 이 음반은 고섹이 바로크에서 고전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프랑스 음악계에서 수행한 역할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고섹의 '레퀴엠'(1760년 작곡)은 모차르트의 레퀴엠보다 30년 앞서 작곡된 작품으로, 프랑스 혁명기 이전 종교음악의 장엄함과 계몽주의 시대의 합리적 구조가 결합된 걸작이다. 40분이 넘는 대작인 이 레퀴엠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큰 편성의 오케스트라와 합창을 사용하며, 특히 트롬본과 타악기를 효과적으로 배치해 극적인 음향을 창출했다.
'라 나티비테(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는 예수 탄생의 기쁨을 서정적이면서도 화려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약 20분 길이의 이 작품은 바로크 오라토리오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고전주의 시대의 명쾌한 형식미를 보여준다.
정통 고음악 해석의 정수
지휘자 플로리안 헤이에릭(Florian Heyerick)은 이번 녹음에서 역사적 연주 관행에 충실한 해석을 선보인다. 그는 18세기 프랑스 음악의 특성인 우아함과 극적 표현력 사이의 균형을 탁월하게 유지하며, 고섹 음악이 지닌 혁신성을 부각시킨다.
합창단 엑스 템포레(Ex Tempore)는 '라 나티비테'와 '레퀴엠' 양쪽에서 모두 참여하며 명료한 딕션과 균형 잡힌 앙상블로 작품의 텍스트와 음악적 구조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특히 레퀴엠의 'Dies Irae' 부분에서 보여준 극적 긴장감과 폭발적인 에너지는 이 작품이 지닌 혁명적 성격을 잘 전달한다.
기악 앙상블 레 자그레망(Les Agrémens)과 만하임 호프카펠레(Mannheimer Hofkapelle)는 각각 레퀴엠과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에서 18세기 오케스트라의 음색을 충실히 재현한다. 특히 만하임 호프카펠레는 당시 유럽 최고 수준이었던 만하임 악파의 전통을 계승하는 단체답게 역동적이면서도 섬세한 연주를 들려준다.
뛰어난 솔리스트 진용
소프라노 헨드릭예 판 케르크호베(Hendrickje van Kerckhove)와 엘리자베스 숄(Elisabeth Scholl)은 각각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와 레퀴엠에서 순수하면서도 표현력 풍부한 음색으로 작품의 영적 깊이를 전달한다.
오트-콩트르(haute-contre, 고음 테너) 필립 가녜(Philippe Gagné)와 파스칼 베르탱(Pascal Bertin)은 18세기 프랑스 성악의 독특한 전통을 보여준다. 오트-콩트르는 프랑스 바로크 오페라에서 영웅적 역할을 담당했던 고음역 남성 성부로, 이들은 이 전통을 훌륭하게 계승하며 작품에 특유의 프랑스적 색채를 더한다.
베이스 바리톤 로베르트 무세(Robbert Muuse)와 베이스 디르크 스넬링스(Dirk Snellings), 테너 로베르트 게첼(Robert Getchell)은 각각의 역할에서 안정적인 기량과 깊이 있는 해석을 선보인다.
고섹, 프랑스 음악사의 가교
프랑수아-조제프 고섹(1734-1829)은 벨기에 에노 지방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활동한 작곡가로, 95세까지 장수하며 바로크 시대부터 낭만주의 초기까지를 관통한 인물이다. 그는 18세기 중후반 파리 음악계의 중심 인물로, 40개 이상의 교향곡, 다수의 오페라, 종교음악을 작곡했다.
고섹은 특히 만하임 악파의 영향을 프랑스에 도입한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그는 크레센도와 디미누엔도 같은 역동적 표현 기법을 프랑스 음악에 적극 도입했으며, 관현악 편성을 확대하고 현악기와 관악기의 대비를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또한 고섹은 프랑스 혁명기에 혁명 정부의 공식 작곡가로 활동하며 대규모 야외 축전을 위한 음악을 작곡했다. 그의 레퀴엠이 보여주는 대편성 오케스트라와 극적 구성은 이러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후 베를리오즈로 이어지는 프랑스 대편성 관현악의 전통을 예고한다.
음악사적으로 고섹은 라모와 글루크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고전주의 양식을 프랑스에 전파한 교량 역할을 했다. 그의 음악은 바로크의 장식적 요소와 고전주의의 명료한 구조, 그리고 혁명기의 웅장함이 독특하게 결합되어 있다.
작품 탄생의 역사적 배경
'죽은 자들을 위한 미사(레퀴엠)'는 1760년 작곡되어 1780년 개정되었다. 이 작품은 당시 파리에서 유행하던 대규모 추모 음악회의 전통 속에서 탄생했다. 고섹은 이 작품에서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큰 편성을 사용했는데, 특히 'Dies Irae(진노의 날)' 악장에서 사용한 대형 북과 심벌즈, 탐탐 등의 타악기는 최후의 심판이라는 주제를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레퀴엠은 초연 당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프랑스 혁명기에는 혁명 영웅들을 위한 추도식에서 자주 연주되었다. 특히 1790년 혁명 순교자 미라보를 위한 추도식에서 연주되어 큰 감동을 주었다고 전해진다.
'라 나티비테(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는 예수 탄생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위해 작곡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당시 파리의 콩세르 스피리튀엘(Concert Spirituel, 영적 음악회)이라는 정기 연주회 시리즈를 위해 쓰였다. 콩세르 스피리튀엘은 사순절과 크리스마스 시즌에 오페라 공연이 중단될 때 열리던 종교음악 연주회로, 고섹은 이 무대를 위해 많은 종교음악을 작곡했다.
모테트 '그리스도 구속자(Christe Redemptor)'는 2성을 위한 작품으로, 보다 친밀하고 실내악적인 성격을 지닌다. 이는 왕실 예배당이나 귀족 살롱에서의 연주를 염두에 둔 작품으로 추정된다.
음악이 표현하고자 한 것
고섹의 종교음악은 계몽주의 시대의 합리성과 가톨릭 전통의 영성을 조화시키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그의 레퀴엠은 죽음 앞에서의 두려움과 최후의 심판에 대한 경외감을 극적으로 표현하면서도, 동시에 구원에 대한 희망을 명료하게 제시한다.
'Dies Irae' 악장의 강렬한 타악기 사용과 불협화음은 심판의 공포를 생생하게 전달하지만, 'Pie Jesu'와 'Agnus Dei'에서는 온화하고 위로적인 선율로 신의 자비를 노래한다. 이러한 대비는 18세기 후반 프랑스 사회가 겪던 이성과 감성, 두려움과 희망 사이의 긴장을 반영한다.
'라 나티비테'는 예수 탄생의 기쁨과 경이로움을 목가적이면서도 축제적인 음악으로 표현한다. 작품 전체에 흐르는 순수하고 밝은 정서는 바로크 시대의 화려함과 고전주의 시대의 균형미가 조화를 이룬 결과다. 목자들의 경배 장면에서는 민속적 선율과 리듬을 사용해 친근함을 더하고, 천사들의 합창 장면에서는 투명한 화성으로 초월적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라그르네의 '우울(La Mélancolie)'
이 음반의 표지를 장식한 그림은 프랑스 화가 루이 장 프랑수아 라그르네(Louis Jean François Lagrenée, 1724-1805)의 '우울(La Mélancolie)'(1785)이다. 현재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이 작품은 깊은 생각에 잠긴 젊은 여성의 모습을 그린 신고전주의 회화의 걸작이다.
라그르네는 18세기 후반 프랑스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으로, 로코코의 우아함과 신고전주의의 엄격함을 절묘하게 결합한 화풍으로 유명하다. 그는 왕립 미술 아카데미의 회원이었으며, 역사화와 신화화에 뛰어났다.
'우울'은 명상적이고 내성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품으로, 한 손에 턱을 괸 채 깊은 사색에 잠긴 여성의 모습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여성의 황금빛 드레스와 붉은 깃이 든 벨트는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색채 대비를 이루며,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인물의 피부톤은 내면의 빛을 표현하는 듯하다.
이 그림이 음반 표지로 선택된 것은 고섹의 레퀴엠이 지닌 명상적이고 영적인 특성과 잘 어울리기 때문으로 보인다. 죽음과 구원이라는 레퀴엠의 주제는 깊은 사색을 요구하며, 라그르네의 '우울'이 표현하는 내면적 성찰의 자세는 이와 공명한다.
또한 라그르네와 고섹이 동시대를 살았던 예술가들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두 사람 모두 1780년대에 활발히 활동했으며, 루이 16세 시대 프랑스 예술계의 중요한 인물들이었다. 라그르네의 그림이 그려진 1785년은 고섹이 레퀴엠을 개정하고 다양한 종교음악을 작곡하던 시기와 겹친다.
국제 음악 도서관 협회의 지원으로 탄생
이 음반은 국제 음악 도서관 협회(International Association of Music Libraries, IAML), 벨기에 예술 학교(School of Arts Gent), 겐트 음악원 도서관(Conservatory Library, BGc)의 지원으로 제작되었다. 2016년 3월과 2009년 12월 두 차례에 걸쳐 벨기에에서 녹음이 이루어졌으며, 슈테판 레 뮤직프로덕션(Stephan Reh Musikproduktion)이 마스터링과 디지털 편집을 담당했다.
CPO 레이블은 바로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잊혀지거나 덜 알려진 작곡가들의 작품을 발굴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번 고섹 음반 역시 그러한 레이블 철학의 연장선상에 있다. 특히 18세기 과도기 음악에 대한 CPO의 지속적인 관심은 음악사의 공백을 메우는 중요한 작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음반은 고섹이라는 작곡가와 18세기 후반 프랑스 종교음악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한층 깊게 해주는 귀중한 자료이자, 역사적 연주 관행에 충실한 고음악 연주의 모범을 보여주는 녹음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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