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세계 오페라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긴 전설적 베이스바리톤 호세 반 담(José van Dam)이 지난 2월 17일 별세했다. 향년 85세. 1940년 8월 25일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태어난 그는 반세기에 걸친 무대 생활을 통해 바그너와 베르디, 모차르트, 드뷔시를 아우르는 방대한 레퍼토리로 20세기 후반 오페라계를 주도한 거장이었다. 그의 예술적 고향이었던 브뤼셀 라 모네/드 뮌트 오페라극장은 공식 성명을 통해 깊은 애도를 표했다.
브뤼셀에서 파리로, 세계 무대로
반 담은 브뤼셀 왕립음악원에서 성악을 수학한 뒤, 1960년대 초 파리 오페라에서 본격적인 경력을 시작했다. 젊은 나이에 이미 파리 오페라와 제네바 그랑 테아트르의 주역으로 자리를 굳힌 그는 이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빈 국립오페라, 밀라노 라 스칼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등 세계 최정상 무대를 두루 석권했다. 특히 1973년부터 30년 이상 라 모네와 맺은 각별한 인연은 그의 예술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축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베이스바리톤 파트 특유의 중후한 무게감과 바리톤의 서정적 유연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었다. 풍부한 배음과 완벽한 레가토, 그리고 어떤 극적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음색의 일관성은 동시대 어떤 성악가와도 구별되는 그만의 미덕이었다. 성악 교사들과 평론가들은 오랫동안 그의 발성을 "완벽하게 지지된 호흡 위에 얹힌 자연스러운 공명"이라 평가해왔다. 목소리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았기에 30대에 완성한 음색을 70대까지 거의 손상 없이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바그너 해석의 최고 권위자
반 담이 세계 오페라계에서 차지한 가장 독보적인 지위는 역시 바그너 해석이었다. 그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무대에서 ‘파르지팔’의 암포르타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네덜란드인,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의 한스 작스를 연이어 맡으며 전후 바그너 해석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그가 바그너에 정통하게 된 배경에는 독일어 텍스트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연구가 있었다. 반 담은 인터뷰에서 수차례 "바그너를 노래하려면 먼저 그의 글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악보를 처음 접할 때부터 음표보다 가사의 의미와 운율 구조를 먼저 분석하는 방식으로 작업했으며, 이를 통해 독일어 모국어 화자조차 놀랄 정도의 언어적 명료함과 표현의 깊이를 구현해냈다. 벨기에 출신으로서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를 모국어로 사용한 그가 오히려 독일어 오페라에서 더 탁월한 해석자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은 성실한 텍스트 연구가 선천적 언어 배경을 뛰어넘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자주 인용됐다.
거장들과의 협연, 그리고 잊히지 않는 에피소드들
반 담의 경력은 20세기 후반을 빛낸 거장 지휘자들과의 협연으로 더욱 빛났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의 인연은 특히 깊었다. 카라얀은 그를 베를린 필하모닉과의 바그너 음반 및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거듭 기용하며 "내가 찾던 베이스바리톤 목소리"라고 공개적으로 칭찬한 바 있다. 두 사람은 베르디의 ‘돈 카를로’와 ‘팔스타프’,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등 주요 레퍼토리를 함께 녹음했으며, 카라얀 특유의 치밀한 앙상블 미학과 반 담의 자기 절제적 창법이 빚어낸 조화는 두고두고 명반으로 남아 있다.
안토니오 파파노와의 인연도 각별했다. 파파노가 라 모네의 음악감독으로 재직하던 시절(1992~2002), 두 사람은 수많은 프로덕션을 함께 만들었고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 예술적 교감은 반 담의 전성기를 더욱 풍요롭게 했다. 파파노는 반 담 사후 "그의 무대 위 존재감은 노래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객석 전체를 압도했다"고 회고했다.
드물지 않게 회자되는 에피소드 중 하나는 드뷔시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공연 중의 일화다. 반 담이 골로 역을 노래하던 어느 날 공연에서 파트너 소프라노가 갑작스러운 컨디션 난조를 호소하자, 그는 무대 뒤에서 조용히 그녀의 손을 잡고 "우리는 함께 무대에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소프라노는 훗날 이 말이 자신의 무대 공포증을 극복하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동료들 사이에서 반 담은 무대 안팎에서 한결같이 침착하고 품위 있는 인물로 기억된다.
사생활 속의 반 담
사생활에 있어서 반 담은 극도로 과묵했다. 브뤼셀 근교에 거처를 두고 조용한 가정생활을 지켰으며, 인터뷰에서도 음악 이외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는 오랜 세월 독서와 회화 감상을 즐겼고, 젊은 성악가들을 위한 마스터클래스에 꾸준히 참여하며 후진 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그가 남긴 마스터클래스 영상들은 오늘날에도 성악도들 사이에서 교과서적 자료로 공유되고 있다.
음반 ‘30 Years at La Monnaie/De Munt’— 한 성악가의 반생을 집약한 기념비
게시한 2CD 음반 ‘30 Years at La Monnaie/De Munt(Cypres Records)’는 반 담이 라 모네와 함께한 30년의 예술적 여정을 압축한 아카이브 음반이다. 실황 및 스튜디오 녹음을 망라한 이 컬렉션은 2010년에 발매되었으며, 총 2시간 29분 20초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 속에 바그너·슈트라우스·무소르그스키(CD1)와 베르디·모차르트·로시니·드뷔시·베를리오즈·오펜바흐(CD2)의 핵심 아리아와 장면들을 담고 있다.
CD1은 바그너의 세 작품으로 문을 연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독백 "기한이 다했다(Die Frist ist um)"에서 반 담은 저주받은 선장의 실존적 고뇌를 처연한 음색으로 그려내며, 뒤이어 ‘파르지팔’의 "아니! 베일을 벗기지 마라(Nein! laßt ihn unhenthüllt!)"와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의 "라일락 향기(Was duftet doch der Flieder)" 및 "망상! 망상!(Wahn! Wahn!)"이 이어진다. 특히 한스 작스의 독백 두 곡은 반 담 예술의 정수라 할 만하다. 슈트라우스의 ‘살로메’ 한 장면을 거쳐, 무소르그스키 ‘보리스 고두노프’의 대관식 장면과 죽음 장면으로 CD1은 마무리된다. 러시아 오페라 레퍼토리에서조차 그의 목소리가 발휘하는 드라마적 무게감은 이 음반의 숨겨진 매력 중 하나다.
CD2는 베르디의 세 작품으로 시작한다. ‘돈 카를로’의 "그녀는 나를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다(Ella giammai m'amò)"와 대심문관의 이중창, ‘시몬 보카네그라’의 "평민이여! 귀족이여!(Plebe! Patrizi! Popolo)", ‘팔스타프’의 두 장면은 베르디 베이스바리톤 레퍼토리의 전범을 보여준다. 이어지는 모차르트 ‘돈 조반니’의 세레나데와 이중창은 무거운 극적 레퍼토리와 대비되는 밝고 유연한 성악 어법을 선보이며, 로시니 ‘이탈리아의 터키인’, 드뷔시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베를리오즈 ‘파우스트의 겁벌’, 그리고 오펜바흐 ‘호프만의 이야기’의 "다이아몬드 아리아(Scintille diamant)"로 화려하게 대미를 장식한다.
지휘자 진용 역시 이 음반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다. 실뱅 캉브를랭, 존 프리처드 경, 안토니오 파파노, 미하엘 쇤반트, 이반 피셔, 조지 벤저민 등 당대 최고의 지휘자들이 라 모네 심포니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을 이끌며 반 담의 노래를 뒷받침했다. 각 지휘자의 음악적 개성과 반 담의 창법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이 음반을 감상하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앨범 커버는 두 장의 강렬한 무대 사진을 사용했다. 전면 사진 속 반 담은 황금빛 왕관과 홀을 든 위엄 있는 군주 의상으로 등장해 그의 무대적 카리스마를 웅변하며, 후면 사진의 흰 날개 같은 무대 의상을 걸친 뒷모습은 예술가의 고독과 기품을 동시에 담아낸다. 벨기에의 Cypres Records 레이블이 라 모네 및 SONUMA 아카이브와 협력해 완성한 이 음반은 단순한 베스트 음반을 넘어, 한 예술가와 한 극장이 함께 쌓아온 신뢰와 역사의 증언이기도 하다.
반 담의 별세로 20세기 오페라의 황금기를 직접 경험한 마지막 세대 거장들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수십 종의 음반과 영상 자료, 그리고 그에게 영향받은 수많은 성악가들의 목소리 속에서 그의 예술은 오래도록 살아 숨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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