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아들에서 유럽이 주목한 화가로
[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페데르 발케(Peder Balke, 1804~1887)는 노르웨이 헤드마르크(Hedmark) 지방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독학에 가까운 미술 수업을 거쳐 크리스티아니아(현 오슬로)와 스톡홀름, 드레스덴에서 수학한 그는 1832년 노르웨이 최북단 노르카프(Nordkapp)까지 탐험 여행을 감행했다. 이 여정은 그의 예술 세계를 결정적으로 각인시켰다. 거대한 피오르, 북극광(오로라), 끊임없이 몰아치는 해풍—발케는 그 압도적인 자연을 눈과 가슴에 새겨 평생의 주제로 삼았다.
1840년에는 당시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그의 그림에 매료되어 직접 작품을 구입하고 베를린 궁정에 초청하는 이례적인 사건도 있었다. 발케는 노르웨이 낭만주의 풍경화의 선구자이면서도, 동시대 거장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유럽 낭만주의의 중요한 축으로 미술사에 자리매김한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조국에서조차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다가 20세기 후반부터 재조명이 본격화되었다.
어둠과 빛이 충돌하는 화면—발케의 독자적 화법
1855년작 ‘노르웨이 해안의 등대(Lighthouse on the Norwegian Coast)’는 발케 특유의 화법이 절정에 달한 시기의 작품이다.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짙은 갈색과 검정에 가까운 먹구름의 덩어리들이다. 우측 상단에서 좌측 하단으로 비스듬히 몰아치는 폭풍 구름은 캔버스의 3분의 2 이상을 점유하며 보는 이를 압도한다.
발케는 이 그림에서 날카로운 팔레트 나이프와 거친 붓질을 교차 사용해 하늘의 질감을 극적으로 살려냈다. 화면에 남아있는 긁힌 자국들은 단순한 손상이 아니라, 발케가 젖은 물감 위에 도구로 직접 긁어 빛의 방향과 파도의 결을 표현한 의도적 기법의 흔적이다.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실험적인 접근법으로, 인상주의가 태동하기 전에 이미 표현주의적 가능성을 타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좌측 수평선에는 타오르는 듯한 주황빛 노을이 가느다란 띠를 이루며 번진다. 이 불꽃색 선은 화면에서 유일하게 따뜻한 온기를 품은 부분으로, 어둠과 공포에 맞서는 한 줄기 희망처럼 읽힌다. 원경에는 파도에 잠식당할 듯한 검은 암초들이 떠 있고, 근경에는 흰 포말을 사납게 뿜어내는 파도가 암반을 덮친다. 그 위에, 마치 기적처럼, 빨간 띠 장식의 흰 등대 하나가 꼿꼿이 서 있다.
등대라는 상징—인간 의지와 자연 앞의 왜소함 그리고 희망
부분도를 통해 더욱 선명히 드러나듯, 등대는 화면 전체의 규모에 비해 놀랍도록 작다. 광포한 먹구름과 성난 파도 앞에 홀로 선 등대의 형상은 낭만주의 미학의 핵심 개념인 '숭고(Sublime)'를 시각화한다. 자연의 무한한 힘 앞에서 인간의 피조물은 한없이 작고 취약하지만, 동시에 그 자리를 지킨다는 사실 자체가 인간 의지의 존엄성을 웅변한다.
발케는 단순한 풍경화가가 아니었다. 그는 노르웨이의 독립 운동이 활발하던 시대(노르웨이는 1814년 덴마크로부터 분리되어 스웨덴과 연합왕국을 이루고 있었다)를 살았으며, 그의 그림에 담긴 북극의 장엄한 자연은 노르웨이 민족의 정체성과 독립 정신을 은유하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거친 파도와 폭풍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등대—그것은 단순한 항해 안전시설이 아닌, 존재의 근거를 묻는 실존적 상징이다.
화면이 불러오는 감정—공포와 위안 사이
이 그림 앞에 서면 먼저 압도감이 엄습한다. 먹구름이 실제로 내 머리 위를 짓누르는 듯한 체감 압력, 파도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한 착각, 차고 습한 바닷바람의 촉감. 그러나 공포만이 전부가 아니다. 등대의 존재를 발견하는 순간, 불안은 묘한 위안으로 전환된다. 어두운 밤 먼 불빛을 발견했을 때의 그 안도감—발케는 관람자로 하여금 이 감정의 전환을 경험하도록 화면을 정밀하게 설계했다.
노르웨이의 시인 헨리크 베르겔란(Henrik Wergeland)이 노래한 북방의 고독과 자유, 그 서정이 발케의 붓 끝에서 고스란히 살아난다. 이 그림은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체감하는 회화다.
경매 시장에서의 발케—뒤늦게 빛난 별
발케는 생전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고, 말년에는 화가 활동보다 사회사업에 더 많은 시간을 쏟기도 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미술 시장에서 그의 재평가는 눈부시다. 2017년 런던 소더비(Sotheby's) 경매에서 그의 소품 작업들이 추정가를 훌쩍 상회하며 낙찰되었고,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을 비롯해 파리 루브르 박물관, 런던 내셔널 갤러리 등 세계 주요 기관들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특히 루브르가 살아있는 노르웨이 작가—당시 기준—의 작품을 구입했다는 사실은 발케의 국제적 위상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현재 발케의 중대형 유화 작품은 국제 경매에서 수억 원대에 거래되며, ‘노르웨이 해안의 등대’와 같이 그의 핵심 주제를 담은 완성도 높은 작품의 경우 그 이상의 평가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 미술 시장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오랫동안 빈센트 반 고흐나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그늘에 가려있던 발케가, 이제는 그들과 대등한 반열에서 논의되기 시작했다는 점이 무엇보다 의미심장하다.
폭풍 속에 홀로 선 등대처럼, 페데르 발케 역시 오랜 무관심의 어둠을 뚫고 마침내 제 빛을 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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