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시대의 '화가-철학자', 조지 프레더릭 왓츠
[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조지 프레더릭 왓츠(George Frederic Watts, 1817~1904)는 19세기 영국 미술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는 화가다. 런던 태생인 그는 정규 아카데미 교육보다는 독학과 이탈리아 유학을 통해 르네상스 거장들의 화풍을 흡수하며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구축했다. 동시대의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s)와 교류하면서도 그 양식에 종속되지 않고, 상징주의적 알레고리를 중심축으로 삼는 독자적인 세계를 열었다.
왓츠는 스스로를 ‘사상의 화가(Painter of Ideas)’라 불렀다. 그에게 그림은 아름다움을 재현하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감정과 철학적 진실을 시각 언어로 번역하는 행위였다. 사랑, 죽음, 시간, 희망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인물화로 육화(肉化)해낸 그의 작업은 당대 영국 지식인 사회에 깊은 울림을 남겼으며, 빅토리아 여왕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철학자로 평가받았다. 로댕과 같은 조각가도 그를 존경했으며, 만년에는 두 차례나 기사 작위를 제안받았으나 사양할 만큼 예술적 소신이 확고했던 인물이다.
부서진 하프, 지구 위의 여인
1886년 완성된 ‘희망(Hope)’은 캔버스에 유채로 제작된 작품으로, 크기는 1422×1118mm다. 화면 중앙에는 한 여인이 지구를 형상화한 어두운 구체(球體) 위에 홀로 앉아 있다. 몸은 깊숙이 웅크려 있고, 두 눈은 흰 천으로 가려져 있다. 여인의 손에 들린 것은 현이 거의 모두 끊어진 하프 — 단 한 줄의 현만이 가까스로 남아 있으며, 그녀는 귀를 기울여 그 마지막 현이 내는 소리를 듣고 있다.
왓츠는 이 작품에서 빛과 어둠의 극적인 대비를 중심 화법으로 사용했다. 배경은 짙은 청회색으로 처리되어 우주적 공허감을 자아내며, 여인의 몸체는 은은한 빛을 발하는 청록빛 의상으로 감싸여 어둠 속에서도 존재감을 잃지 않는다. 인상주의적 붓 터치와 상징주의적 구성이 교차하는 이 화면은, 세부묘사보다는 감각적 분위기와 감정의 밀도에 집중한 왓츠 특유의 방식이 집약된 결과물이다.
지구라는 배경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드넓은 우주 속 고독한 존재로서의 인간, 그 위에 혼자 앉은 여인의 모습은 인류 전체의 취약함을 응축한 상징으로 읽힌다.
비통한 모습인데 왜 제목이 '희망'인가
이 그림 앞에 처음 선 관람객이 가장 먼저 품는 의문이 바로 이것이다. 눈을 가리고, 몸을 웅크리고, 거의 모든 현이 끊어진 악기를 들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어디에도 밝음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왓츠는 이 그림에 '희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해답은 역설에 있다. 왓츠가 말하는 희망은 풍요로운 상황에서 피어나는 낙관이 아니다. 모든 것을 잃고, 앞을 볼 수 없고, 단 하나의 현만 남았을 때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마지막 한 줄에 귀를 기울이는 행위 자체가 희망이다. 절망의 극한에서도 음악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 미세한 진동에 온몸을 기울이는 것이 왓츠가 정의한 희망의 본질이다.
눈을 가린 흰 천은 현실의 냉혹함으로부터 눈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면의 소리에 더욱 집중하기 위한 감각의 전환이다. 보이지 않기에 더 잘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역설적 구조야말로 ‘희망’을 단순한 알레고리화를 넘어 보편적 인간 조건을 탐구하는 철학적 회화로 끌어올리는 힘이다.
시로 읽는 그림 — 감정과 서정의 결
이 그림 앞에 서면 고요한 무게감이 먼저 다가온다. 어둠 속에서 웅크린 여인의 형상은 슬픔이라기보다 침묵에 가깝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의 적막, 울고 난 뒤의 고요함 — 그런 감각이다.
끊어진 현들이 허공에 흘러내리는 모습은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인은 무너지지 않았다. 남은 단 하나의 현에 손을 얹고,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 자세에서 역설적으로 강인함이 느껴진다. 화려하지 않고, 당당하지도 않으며, 그저 버티고 있는 존재의 아름다움 — 왓츠는 그것을 희망이라 불렀다.
이 그림은 말이 없다. 그러나 오래 바라볼수록 무언가를 속삭인다. "아직 한 줄이 남아 있다"고.
버락 오바마가 사랑한 그림 — 문화적 영향과 역사적 의미
‘희망’은 완성 직후부터 영국 사회에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왓츠는 이 작품의 복제화를 대량 보급하며 ‘미술을 통한 도덕적 계몽’이라는 자신의 신념을 실천했다. 당시 런던의 노동자 계층 가정에까지 이 그림의 복제본이 걸렸을 만큼 대중적 파급력이 컸다.
역사적으로 가장 극적인 파급은 대서양을 건너 이루어졌다. 1990년대 시카고의 한 흑인 교회 목사가 이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설교를 했고, 그 설교를 들은 청중 중에 젊은 정치인 버락 오바마가 있었다. 오바마는 이후 자신의 정치적 메시지의 핵심으로 '희망(Hope)'을 내세웠으며, 이 그림이 그 사상적 원천 중 하나였음을 밝혔다. 왓츠의 캔버스가 140년의 세월을 넘어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탄생에 영적 자양분을 제공한 셈이다.
현재 원작은 런던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에 소장되어 있으며, 또 다른 버전은 왓츠 갤러리(Watts Gallery, 서리)에 보관되어 있다.
재평가받는 빅토리아 시대 거장
왓츠는 20세기 중반 모더니즘의 부상과 함께 한동안 미술사의 조명에서 멀어졌으나, 21세기 들어 빅토리아 시대 미술 전반에 대한 재평가 열풍과 함께 다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상징주의와 알레고리 회화에 대한 컬렉터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의 작품 가치도 꾸준히 상승세를 타고 있다.
크리스티(Christie's)와 소더비(Sotheby's) 등 주요 경매 하우스에서 왓츠의 초상화와 알레고리화는 수십만 파운드에서 수백만 파운드 수준에서 거래된다. ‘희망’ 자체는 테이트 브리튼 소장품으로 매각 대상이 아니지만, 동급의 알레고리 대작이 경매에 나올 경우 수백만 파운드대의 낙찰가가 예상된다는 것이 미술 시장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무엇보다 ‘희망’의 가치는 금전적 수치로 환산하기 어렵다. 오바마의 언급 이후 이 작품의 문화적 상징 가치는 단순한 예술품의 범주를 초월했다. 인류가 절망의 시간을 통과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소환되는 이 이미지는, 그 자체로 하나의 보편적 아이콘으로 기능하고 있다.
140년 전 왓츠가 캔버스 위에 옮겨 놓은 한 줄의 현은, 오늘도 조용히 울리고 있다. 보이지 않아도, 들을 수 있다면 —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이 그림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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