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이프저니|글·사진 이주상 기자] "일반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서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제 친구들이나 옆에 있는 분들은 저를 일도 안 하고 훈련만 하고 집에만 있는 사람으로 알아요. 돈도 없고요.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했던 게 오늘 빛을 본 거 같습니다."
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감고도 김현우의 표정에는 자만보다 담담함이 앞섰다. 29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굽네 ROAD FC 078 with K-POP' 2부 5경기 -61.5kg 밴텀급 잠정 타이틀전에서 양지용을 꺾고 새로운 잠정챔피언에 오른 직후, 그는 오히려 자신을 낮추는 소감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4년 만의 리턴매치, 이번엔 김현우가 웃었다
이날 경기는 5분 3라운드에 연장 1라운드가 걸린 타이틀전 규정으로 치러졌지만, 승부는 예상보다 빨리 갈렸다. 김현우는 2라운드 2분 25초 만에 펀치로 양지용을 무너뜨리며 TKO 승을 따냈다.
두 선수의 악연은 20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맞대결에서는 양지용이 1, 2라운드 내내 밀리다가 길로틴 초크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양지용 스스로도 "역전승이었기 때문에 찝찝한 승리"라고 표현할 만큼 완전히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었다.
4년 만에 성사된 이번 재대결에서 양지용은 "힘도, 기술도 그때와는 완전히 달라졌다"며 완벽한 승리를 자신했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김현우가 이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권을 내주지 않으며 완승을 거뒀다.
경험의 양지용 vs 패기의 김현우
이번 타이틀전은 스타일과 경력 모두에서 뚜렷한 대비를 이루는 매치업이었다.
1996년생인 양지용은 로드FC 센트럴리그부터 성장한 제주도 출신의 밴텀급 스타다. 킥복싱 11승 1패의 아마추어 경력을 쌓은 뒤 종합격투기로 전향했고, 격투 오디션 '맞짱의 신' 4강 진출로 이름을 알렸다. 로드FC 데뷔 후 연승 가도를 달리며 2022년 로드FC 올해의 신인상을 받았고, 일본 최대 단체 라이진FF 무대에서도 활약해 국내외에 두터운 팬층을 보유하고 있다.
이날 경기 전까지 12승 5패 1무효의 전적을 쌓아왔으며, 왼손 타격이 최대 무기로 꼽힌다. 다만 밴텀급 글로벌 토너먼트 결승전에서는 김수철의 노련함에 밀려 연장 판정패를 당하며 챔피언 등극에는 아쉽게 실패한 바 있다.
반면 2002년생으로 여섯 살 어린 김현우는 아마추어 시절 로드FC 센트럴리그 8경기에서 모두 승리하는 압도적인 모습으로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2021년 로드FC 신인상을 수상했고, 밴텀급의 스타로 꼽혀왔다.
그가 지금까지 당한 세 번의 패배 상대는 '제주짱' 양지용, '아시아 전설' 김수철, '페더급 챔피언' 으르스켈디 두이세예프로, 모두 챔피언급 강자들이었다. 이번 경기 전 전적은 7승 3패. 강자들에게만 패해왔던 만큼, 이번 승리로 김현우는 마침내 자신의 이름 앞에 '챔피언'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게 됐다.
"아직 벨트를 맬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겸손한 승자의 다음 목표
승리 인터뷰에서 김현우는 냉정한 자기 평가를 이어갔다. 그는 "잠정 타이틀전인데, 지금 진짜 챔피언인 (김)수철이 형과 통합 타이틀전도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싶다. 솔직히 더 증명해야 될 거 같다"며 "지금부터 바로 도전을 이어갈 수도 있지만, 조금은 이 시간을 즐기고 싶다"고 말했다. 잠정챔피언에 오른 순간에도 진짜 챔피언 김수철과의 통합 타이틀전을 자연스럽게 언급하며, 자신의 다음 목표를 분명히 한 셈이다.
하늘의 할머니와 처음 직관 온 할아버지
김현우는 어린 시절 생계로 바빴던 부모님을 대신해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2018년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부터는 경기를 앞두고 늘 납골당을 찾아 인사를 드리고 좋은 기운을 받아왔는데, 이번 경기를 앞두고도 어김없이 할머니를 찾았다고 한다. 특히 이번 경기는 할아버지가 생애 처음으로 직관에 나선 경기였던 만큼 김현우에게는 더욱 간절한 승부이기도 했다.
인터뷰 말미 그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셨다. 반갑고, 아빠도 오셨다"며 가족들에게 애틋한 인사를 전했다. 이어 그동안 자신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온 관장님과 소속사 대표진, 스폰서 관계자들, 그리고 곁을 지켜준 지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감사 인사를 잊지 않았다.
이로써 김현우는 로드FC 밴텀급 잠정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정상급 강자들에게만 패하며 아쉬움을 삼켜야 했던 그가 마침내 벨트를 허리에 감았지만, 정작 본인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말로 다음 목표를 향한 각오를 다졌다. 진짜 챔피언 김수철과의 통합 타이틀전이 성사될 경우, 밴텀급 체급 정리를 위한 진검승부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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