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미국 태생의 리릭 소프라노 바바라 헨드릭스(Barbara Hendricks)가 2012년 자신의 레이블 아르트 베룸(Arte Verum)을 통해 발표한 2CD 음반 'Portrait musical / A Musical Portrait'는, 1977년부터 2010년까지 33년에 걸친 그의 레코딩 경력을 스스로 되짚어 엮은 회고적 성격의 앨범이다.
슈베르트의 가곡에서 베토벤 교향곡 9번의 실황까지, 오페라 아리아에서 니그로 스피리추얼과 빌리 홀리데이의 재즈 스탠더드까지를 한데 아우른 이 두 장의 음반은, 한 성악가가 평생 걸어온 다채로운 음악적 여정을 스스로 정리한 자서전과도 같다.
직접 프로그램을 구성한 회고 음반
이 음반은 새로운 레퍼토리를 담은 신보가 아니라, 헨드릭스 자신이 직접 프로그램을 구성한 회고 음반이라는 점에서부터 남다르다. 헨드릭스는 이 음반에 대해 필립스 레이블과 함께한 첫 프랑스 오페라 아리아 음반부터 자신의 레이블 아르트 베룸의 최근 녹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모든 레코딩 역사를 훑는 프로그램을 구성했다고 밝힌 바 있다.
도이치 그라모폰, 에라토, 텔락, 소니 등 그가 거쳐온 여러 메이저 레이블의 녹음까지 함께 아우를 수 있어 기뻤다는 소회도 전했다. 특히 이 음반에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가진 첫 콘서트에서의 베토벤 교향곡 9번 '환희의 송가' 실황이 미발표 트랙으로 처음 공개되어 자료적 가치를 더한다. 두 장에 걸쳐 총 30곡, 러닝타임 2시간 25분에 이르는 방대한 구성은 단순한 히트곡 모음이 아니라 한 성악가의 예술관과 인생관을 압축한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바바라 헨드릭스의 해석과 역량
헨드릭스는 오페라와 오라토리오, 가곡, 재즈와 니그로 스피리추얼을 넘나드는 폭넓은 레퍼토리로 잘 알려진 성악가다.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메조소프라노 제니 투렐을 사사했고, 마리아 칼라스의 마스터클래스에도 참여하며 자신의 예술을 다듬었다. 이 음반이 증명하는 것은 그가 단순히 여러 장르를 오갈 수 있는 성악가가 아니라, 슈베르트의 내밀한 가곡에서 푸치니의 격정적인 오페라 아리아로, 다시 빌리 홀리데이의 재즈 스탠더드로 옮겨가면서도 각 장르가 요구하는 어법과 색채를 온전히 소화해내는 드문 능력을 지녔다는 점이다.
프랑스어권 매체는 이 음반을 소개하며 헨드릭스가 인종차별이 끝나가던 미국 남부에서 자란 목격자로서, 대학에 입학한 초기 흑인 학생 중 한 명이었던 경험을 지나 프로 성악가의 길에 들어선 인물이라 소개하며, 반세기에 걸친 음악 역사를 강철 같은 의지와 남다른 예술적 엄격함으로 통과해온 가수라고 평가했다.
오페라의 극적 절창과 가곡의 섬세한 뉘앙스, 재즈의 자유로운 프레이징
CD1은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와 연가곡 '겨울 나그네' 중 몇 곡, 슈만의 '헌정', 풀랑크의 가곡, 그라나도스의 스페인 가곡에 이어 니그로 스피리추얼과 빌리 홀리데이의 '돈트 익스플레인'까지 폭넓게 이어지며 헨드릭스의 서정적이고 내밀한 가곡 해석 능력을 보여준다. 특히 목사의 딸로 자란 그가 어린 시절 아버지의 교회에서 듣고 부르던 니그로 스피리추얼을 평생 레퍼토리의 뿌리로 간직해왔다는 점에서, 이 곡들은 그의 정체성과 가장 깊이 맞닿아 있는 트랙이라 할 수 있다.
CD2는 모차르트와 푸치니, 베르디, 도니체티, 마스네, 샤르팡티에의 오페라 아리아로 문을 열어 그의 오페라 무대에서의 극적 표현력을 조명하며, 헨델과 퍼셀의 바로크 아리아를 거쳐 베토벤 교향곡 9번 '환희의 송가'로 대미를 장식한다. 오페라의 극적 절창과 가곡의 섬세한 뉘앙스, 재즈의 자유로운 프레이징이 한 목소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한다는 점이 이 음반의 가장 큰 미덕이다.
헨드릭스의 다재다능함
음반에는 각기 다른 시대와 맥락에서 탄생한 곡들이 섞여 있다.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는 실연의 상처를 안고 정처 없이 눈길을 떠도는 나그네의 심경을 그린 작품으로, 낭만주의 가곡의 정점으로 꼽힌다. 푸치니의 '라 보엠' 중 '내 이름은 미미'는 가난한 파리의 다락방에서 만난 두 연인의 사랑을 그린 오페라의 핵심 아리아이며, 도니체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중 '광란의 아리아'로 알려진 '주위를 감싸는 그 목소리'는 정략결혼에 내몰린 여주인공의 광기를 담아낸다.
베토벤 교향곡 9번 4악장 '환희의 송가'는 실러의 시에 곡을 붙인 것으로 인류애와 형제애를 노래하는 곡인데, 이 음반에 실린 버전은 다름 아닌 헨드릭스가 카라얀과 가진 생애 첫 협연 실황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개인사적 의미를 지닌다. 니그로 스피리추얼과 빌리 홀리데이의 '돈트 익스플레인'은 미국 흑인 공동체의 신앙과 고난, 사랑의 아픔을 담아낸 곡들로, 클래식 성악의 전통과는 또 다른 뿌리에서 자라난 레퍼토리다.
자전적 기록
헨드릭스는 이 음반의 선곡을 두고 자신의 음악 역사 전체를 되짚는 프로그램을 스스로 구상했다고 밝혔다. 즉 이 음반의 트랙 리스트는 평론가나 프로듀서가 아닌 헨드릭스 자신이 자기 경력에서 어떤 순간과 레퍼토리를 가장 의미 있다고 여기는지를 스스로 선별한 결과물이다. 프랑스의 한 음반 평론가는 이 음반이 오페라와 오라토리오, 가곡뿐 아니라 재즈와 니그로 스피리추얼까지 포함한 것을 두고, 목사의 딸로서 어린 시절 교회에서 자란 음악적 뿌리를 평생 레퍼토리 안에 간직해온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헨드릭스에게 이 음반이 단순한 명연 모음이 아니라, 자신이 어디서 왔고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를 음악으로 증언하는 자전적 기록임을 보여준다.
국제적으로 공인된 예술적 궤적
바바라 헨드릭스는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코망되르, 레지옹 도뇌르 훈장 슈발리에, 스페인 아스투리아스 왕세자상 예술 부문 등 다수의 훈장과 상을 받은 바 있으며, 루뱅라뇌브 대학과 그르노블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이러한 수상 경력은 이 음반이 다루는 33년의 레코딩 역사가 곧 국제적으로 공인된 한 성악가의 예술적 궤적임을 뒷받침한다.
프랑스어권 평자들은 이 음반을 두고 단순한 컴필레이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평하며, 헨드릭스의 목소리를 초월하는 것은 음악을 통해 타인에게 자신의 가장 좋은 것을 건네는 법을 찾아낸 위대한 한 인물의 영혼이라고 상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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