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 샤를 카무앵의 '캉 항구의 열린 창문'…야수파의 마지막 서정시인이 남긴 빛과 색채의 유산
고요비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6-06-28 17:31:20
[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프랑스 화가 샤를 카무앵(Charles Camoin, 1879~1965)의 유화 작품 '캉 항구의 열린 창문(Open Window on the Port of Cannes)'(1956, 캔버스에 유채, 65×50cm)은 마티스, 마르케와 함께 야수파(Fauvisme)의 핵심 멤버로 활동했던 카무앵이 77세에 완성한 작품으로, 한 평생 지중해의 빛과 색채를 탐구해 온 화가의 결정(結晶)으로 평가받는다.
야수파의 마지막 생존자…마티스의 평생 벗
샤를 카무앵은 1879년 마르세유에서 태어나 1896년 파리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 귀스타브 모로의 화실에서 앙리 마티스, 알베르 마르케, 조르주 루오와 함께 수학했다. 이 화실에서 맺어진 마티스와의 우정은 평생을 이어갔다. 카무앵은 1905년 파리 살롱 도톤(Salon d'Automne)에서 마티스, 드랭, 블라맹크 등과 함께 전시를 열며 야수파 운동의 기수로 떠올랐다. 평론가 루이 보셀(Louis Vauxcelles)이 "야수(fauves)들의 우리"라 비난하며 붙인 이름이 오히려 역사적 명칭이 된 것은 잘 알려진 일화다.
미술사적으로 카무앵은 야수파 1세대 중에서도 가장 오랜 기간 그 정신을 순수하게 유지한 화가로 평가된다. 마티스가 점차 장식적 평면성으로, 드랭이 고전주의로 노선을 전환한 것과 달리, 카무앵은 생애 말년까지 야수파 특유의 대담한 색채와 자유로운 붓질, 지중해적 감수성을 고수했다. 그 때문에 그는 종종 '야수파의 마지막 서정시인'이라 불린다.
활짝 열린 창문과 캉 항구…실내와 외부 세계를 잇는 빛의 통로
이 그림은 전형적인 카무앵식 '창문 구도(fenêtre ouverte)'를 활용한 작품이다. 녹색 페인트가 칠해진 프랑스식 여닫이창이 양옆으로 활짝 열려 있고, 그 너머로 캉 항구의 풍경이 펼쳐진다. 청록빛 수면 위에는 돛단배들이 유유히 떠 있고, 빨강·주황·노랑의 반사광이 물 위에 출렁인다. 항구 건너편 언덕 위 건물들은 빨강 지붕과 노란 벽이 대담한 필촉으로 쌓여 있으며, 그 배경에는 보라와 청회색이 섞인 산세가 물감처럼 번진다. 발코니의 아라베스크 문양이 새겨진 철제 난간은 유일하게 윤곽선이 뚜렷하게 살아 있어 화면에 리듬감을 부여한다.
전경에는 짙은 보랏빛 등받이와 붉은 좌석을 가진 루이 16세풍 의자가 비스듬히 놓여 있고, 그 아래 빨강과 흰색 줄무늬 카펫이 화면 하단을 장식한다. 실내의 붉은 카펫·의자와 외부의 청록 바다·하늘이 극적인 보색 대비를 이루며 화면 전체에 긴장감과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붓 터치는 짧고 빠른 임파스토(impasto) 기법으로 처리되어 빛이 화면 위에서 직접 진동하는 듯한 효과를 낸다. 좌측 하단에는 'Ch. Camoin'이라는 서명이 담담하게 새겨져 있다.
빛을 담은 창문, 삶을 향한 열린 시선
이 작품이 지닌 가치는 여러 층위에서 읽힌다. 첫째, 야수파 운동의 핵심 도상(圖像)인 '열린 창문' 모티프를 카무앵이 77세라는 노년에, 그것도 탁월한 색채 감각과 조형 완성도로 구현했다는 점이다. '열린 창문'은 마티스의 1905년작 '열린 창문, 콜리우르(Open Window, Collioure)'에서 야수파의 선언적 도상으로 자리잡은 이후 카무앵이 평생 반복해 탐구한 주제였다. 내부와 외부, 사적 공간과 자연 세계를 하나의 화면에 담는 이 구도는 단순한 풍경화를 넘어 존재와 세계의 경계에 대한 시각적 사유로 읽힌다.
둘째, 1956년이라는 제작 시점이 갖는 역사적 의미다. 이미 야수파 운동이 50여 년 전의 역사가 된 시점에, 그 정신적 계승자가 여전히 같은 주제를 같은 방식으로 그렸다는 사실은 카무앵의 예술적 순수성과 일관성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카무앵 말년 작업의 완숙함을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창문 앞에 홀로 남겨진 의자…시적 여백이 주는 감동
이 그림 앞에 서면, 먼저 고요한 오후의 공기가 느껴진다. 누군가 방금 의자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사라진 것만 같다. 비어 있는 의자는 부재(不在)의 존재감으로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활짝 열린 창문 너머로는 캉의 오후 햇살이 항구 위에 내려앉아 물결과 함께 흔들린다.
붉은 카펫의 따스함과 청록 바다의 서늘함이 동시에 몸으로 전해온다. 철제 난간의 아라베스크 문양 사이로 작은 인물들이 점처럼 서 있어, 그들의 일상이 멀리 그림 속에서 조용히 흘러간다. 이 그림은 관람자를 창가의 의자에 앉아 있던 누군가의 자리로 초대한다. 그 자리에서 바라보는 캉 항구는 현실이자 꿈이고, 추억이자 지금 이 순간이다. 야수파의 격렬한 색채가 이 작품에서만큼은 거칠지 않고 오히려 따뜻하고 서정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카무앵이 평생 색채를 감정의 언어로 다뤄왔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 회화에 남긴 유산…지중해 컬러리즘의 계보
카무앵이 현대 회화에 미친 영향은 직접적이라기보다 기층적(基層的)이다. 그는 야수파의 색채 원리—자연의 모방이 아닌 감정의 표현으로서의 색채, 보색 대비의 진동, 붓 터치 자체의 물질성—를 생애 말년까지 실천하며 그 가능성의 경계를 넓혔다. 특히 지중해 연안의 빛과 색채를 회화의 주제이자 방법론으로 삼는 '지중해 컬러리즘(Mediterranean Colorism)'의 계보에서 카무앵은 빠트릴 수 없는 이름이다.
마티스가 야수파를 이론적·조형적으로 집대성했다면, 카무앵은 그 감성의 본질을 가장 오래, 가장 순수하게 지켜낸 화가다. 전후(戰後) 앵포르멜(Art Informel)이나 추상표현주의가 회화의 주류를 재편하던 시기에도 카무앵이 고수한 구상적 색채주의는, 역설적으로 21세기 신표현주의 및 감각적 구상회화의 선구자적 실천으로 재평가받고 있다. 색채를 사유의 언어로 사용한 그의 방식은 오늘날 컬러 필드 페인팅(Color Field Painting)의 정서적 뿌리로도 연결된다.
마티스 동시대 화가 중 희소성 높은 작가
경매 시장에서 샤를 카무앵은 야수파 2군(群)으로 분류되어 오랫동안 마티스·드랭·블라맹크에 비해 저평가되어 온 측면이 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야수파 원년 멤버의 진본(眞本) 작품 희소성이 부각되면서 꾸준한 가격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카무앵의 작품은 크리스티, 소더비, 드루오(Drouot) 등 주요 경매에 정기적으로 출품된다. 소품 및 소묘류는 1만~5만 유로 선에서 거래되며, 캔버스 유화 중품(50호 이하)은 통상 5만~20만 유로 범위에서 낙찰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작품과 같이 항구·창문 등 카무앵의 대표 주제를 담은 완숙기(1940~60년대) 작품, 특히 지중해 풍경 연작의 경우 20만~40만 유로 이상을 호가하기도 한다. 2019년 파리 드루오 경매에서 카무앵의 항구 풍경화가 추정가를 크게 상회해 낙찰된 사례가 있으며, 마티스와의 교우 관계, 야수파 창립 멤버로서의 역사성, 그리고 작품의 보존 상태와 출처(provenance)가 가격 결정의 핵심 변수로 작용한다.
국내에서는 아직 카무앵의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지만, 야수파 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컬렉터 시장의 흐름 속에서 진본 감정서를 갖춘 카무앵 작품의 희소 가치는 앞으로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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