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이프저니|글·사진 이주상 기자] 2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아트홀. 얼킨(ULKIN)의 런웨이가 시작되자 객석의 시선은 한 방향으로 모였다.
화려한 색채도, 매끈하게 정돈된 라인도 아니었다. 무대를 채운 것은 마치 오래 입어 온 옷처럼 얼룩지고 뒤틀린 실루엣들이었다. 그러나 그 얼룩 하나하나가 우연이 아니라 계산된 언어처럼 읽히는 순간, 이 무대가 단순한 의상의 나열이 아니라 하나의 서사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얼룩진 시간, 피부에 새겨진 기억
이번 시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카키, 그레이, 머드 톤으로 물든 원단 위에 번져 있는 얼룩 문양이었다. 워싱과 탈색을 거친 듯한 자국들은 마치 오래된 사진처럼 시간의 흔적을 옷감 위에 새겨놓았다.
셔츠와 니트, 심지어 반투명한 저지 톱 위로 스며든 그림자 같은 무늬는 피부의 명암과 뒤섞이며 옷과 몸의 경계마저 흐릿하게 만들었다. 실제와 기억이 뒤엉키는 순간을 시각화한 듯한 이 얼룩들은, 완벽하게 재현된 것이 아니라 마치 착용자가 오래 살아온 흔적처럼 느껴져 옷 자체에 하나의 서사를 부여했다.
해체된 옷, 다시 짜인 실루엣
얼킨의 무대에서 정형화된 핏은 찾기 어려웠다. 셔츠 자락은 밑단이 그대로 뜯겨 나온 듯 러프하게 마감되었고, 체크 셔츠는 입는 옷이 아니라 몸에 둘러 감싼 오브제처럼 재배치됐다.
오버사이즈 후드 집업과 미니스커트, 크롭 톱과 롱코트가 서로 다른 시간대에서 온 듯 한 사람 위에 겹쳐 입혀졌고, 한쪽 어깨를 드러낸 비대칭 톱은 매듭과 드로스트링으로 다시 봉합되며 해체와 재구성을 동시에 완성했다.
이러한 레이어링은 단순한 스타일링 기법을 넘어, 하나의 자아 안에 여러 시절의 자신이 공존한다는 인상을 준다.
유틸리티의 표면, 연약함의 이면
지퍼와 코드록, 다용도 포켓 같은 유틸리티 디테일은 이번 컬렉션 전반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이 실용적인 요소들은 튼튼함을 과시하기보다 오히려 옷의 방어선을 낮추는 방식으로 쓰였다.
메시 소재로 속을 드러낸 톱, 맨살 위에 헐렁하게 걸쳐진 하프 지퍼 후드, 가슴선까지 열어둔 오버사이즈 재킷은 유틸리티웨어의 문법을 차용하면서도 그 견고함 이면에 감춰진 무방비함을 함께 드러냈다.
여기에 표백된 듯한 금발과 젖은 듯한 메이크업, 초점 없는 시선이 더해지며 모델들은 마치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방금 걸어 나온 존재처럼 보였다.
몽환과 해체가 완성한 얼킨의 언어
전체 룩을 관통하는 이 얼룩과 해체, 그리고 뒤섞인 레이어링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 지금의 나와 지나간 나 사이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가.
완벽하게 다림질된 옷이 아니라 삶의 흔적이 배어든 옷을 통해 얼킨은 아름다움을 정서적 교감의 결과물로 제시해왔고, 이번 무대는 그 철학을 가장 직관적인 방식으로 구현했다.
화려한 완성보다 흐트러진 과정을, 매끈한 실루엣보다 뒤섞인 시간의 층위를 택한 이번 컬렉션은 옷이 몸을 감싸는 도구를 넘어 기억을 담는 그릇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무대였다.
klifejourney2025@gmail.com
[저작권자ⓒ K라이프저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K집중분석]](https://klifejourney.com/news/data/2026/09/02/p1065620921181507_367_h2.jpg)
![[K집중분석]](https://klifejourney.com/news/data/2026/09/02/p1065620470489779_507_h2.jpg)
![[K집중분석]](https://klifejourney.com/news/data/2026/09/02/p1065619747613409_642_h2.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