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이프저니|글·사진 이주상 기자] 2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아트홀에서 열린 '2027 S/S 서울패션위크' 얼킨(ULKIN) 컬렉션 무대에 그룹 엑스러브(XLOV)의 현이 모델로 나서 눈길을 끌었다.
이날 현은 낡은 듯 얼룩진 카키 그레이 톤의 오버사이즈 아노락 재킷을 입고 런웨이에 올랐다. 지퍼가 브이넥 라인까지 깊게 파인 하프집업 형태의 재킷은 마치 오랜 시간 바람과 흙을 맞은 듯한 빈티지 염색 텍스처로 뒤덮여 있었으며, 넉넉한 드롭숄더와 허리 부근을 가로지르는 절개 라인이 해체적인 실루엣을 완성했다.
재킷 안으로는 화이트 메시 소재의 이너를 레이어드했고, 하의는 다양한 포켓이 달린 그레이 카고 팬츠로 통일감을 살렸다. 여기에 은색 체인 목걸이와 반지, 낡은 가죽 소재의 워커를 매치해 전체적으로 정제되지 않은 듯하면서도 계산된 스타일링을 완성했다. 탈색한 금발을 뒤로 넘긴 헤어와 무심한 표정은 컬렉션이 지향하는 몽환적이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배가시켰다.
폐허에서 피어난 나비, '호접지몽(胡蝶之夢)'
이번 시즌 얼킨이 제시한 테마는 '호접지몽, Butterfly Dream'이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흐릿해지는 기억과 자아를 이야기하는 이 컬렉션은, 영원할 것 같았던 계절과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았던 순간들이 시간이 지나며 꿈처럼 희미해지는 감각을 담아낸다.
꿈속의 나비와 '나'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뒤섞이듯, 지나간 기억과 현재의 자신이 다시 마주하는 순간을 통해 브랜드 특유의 몽환적이고 서정적인 감성을 표현했다는 설명이다. 현이 입은 얼룩덜룩한 텍스처의 재킷 역시 이러한 흐릿한 기억과 시간의 흔적을 시각화한 결과물로 읽힌다.
해체와 재구성, 업사이클링으로 완성한 얼킨의 디자인 철학
얼킨은 예술적 감성과 한국적 미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지속 가능한 디자인 가치를 제안하는 유니섹스 디자이너 브랜드다. 브랜드의 미학은 아름다움에 대한 정서적 교감에서 출발하며, 주변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은유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디자인의 가치를 만들어간다. 폐캔버스를 활용한 업사이클링 백, 해체적 실루엣, 빈티지한 텍스처, 그리고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무궁(MUGUNG) 심볼과 정제된 한국적 색감은 얼킨의 디자인 철학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 요소들이다.
브랜드를 이끄는 이성동 디자이너는 한양대학교에서 의류학 학사 및 석사 과정을 마친 뒤 2014년 얼킨을 론칭했다. 이후 2017년에는 주식회사 옴니아트를 설립했으며, 서울예술실용전문학교 패션예술학부 겸임교수로도 활동해왔다. 업사이클링과 예술, 해체와 재구성의 감각을 바탕으로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메시지를 패션 언어로 풀어내며, 뉴욕·파리 패션위크와 서울패션위크를 오가며 브랜드의 정체성을 확장해왔다.
파리부터 서울까지…글로벌 무대에서 주목받은 행보
얼킨은 서울패션위크와 TRANOÏ의 협업을 통해 파리패션위크 기간 팔레 브롱냐르에서 열린 TRANOÏ Women 쇼케이스에 참여하며 유럽 패션 비즈니스 시장과의 접점을 넓혔다.
해외 매체의 관심도 이어졌다. 틴보그(Teen Vogue)는 2024 S/S 서울패션위크에서 주목해야 할 7개 브랜드 중 하나로 얼킨을 꼽으며, 이성동 디자이너가 예술과 해체, 업사이클링을 결합해 브랜드를 설립했고 이제는 서울패션위크를 대표하는 주요 브랜드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했다. 특히 2024 S/S 컬렉션에 대해서는 밀리터리에서 영감을 받은 워크웨어와 다양한 소재의 조합으로 하이엔드 캐주얼웨어의 성격을 보여줬다고 소개했다.
얼킨의 존재감은 2023 F/W 서울패션위크에서 정점을 찍었다. 사전 평가에서 최고점을 받아 오프닝 쇼를 맡으며 국내 패션위크 내 위상을 입증했고, 서울패션위크의 글로벌 PR 앰버서더로 활동한 그룹 뉴진스가 얼킨을 착장한 사실이 보그(Vogue)를 통해 조명되며 브랜드의 지속가능성 중심 컬렉션이 글로벌 패션 독자층에 널리 노출되기도 했다. 보그는 당시 얼킨의 컬렉션을 어스 톤 니트와 로우라이즈 팬츠, 크롭 니트와 셔츠의 조합 등 클래식하면서도 동시대적인 디자인으로 소개한 바 있다.
이처럼 예술과 지속가능성, 한국적 정서를 잇는 얼킨의 디자인 언어는 이번 2027 S/S '호접지몽' 컬렉션에서도 이어지며, 엑스러브 현의 워킹을 통해 몽환적이고 서정적인 무드로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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