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이프저니|글·사진 이주상 기자] 4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아트홀. '2027 S/S 서울패션위크' 무대에 빅팍(BIG PARK)의 모델들이 등장했다.
이번 컬렉션에서 눈에 띈 것은 화려한 장식이 아니라 옷 자체의 '낯선 조합'이었다. 딱 떨어지게 재단된 재킷 밑으로 마감하지 않은 원단 자락이 그대로 흘러내리고, 단정하게 여민 옷깃 아래로 실밥이 풀린 부분이 그대로 드러났다. 잘 만들어진 부분과 일부러 미완성으로 남긴 부분이 한 벌 안에 함께 있는 것, 이것이 이번 시즌 빅팍이 보여주려 한 첫 번째 특징이다.
정장과 헝클어진 자락이 한 벌에
이번 런웨이에서 가장 자주 보인 것은 '위아래가 서로 다른 옷 같은 조합'이었다. 어깨가 각지고 허리선이 뚜렷한 클래식한 재킷이 상의를 이루는데, 그 아래로는 예상과 다른 하의가 이어졌다. 각진 화이트 재킷은 아래로 갈수록 원단이 마감 없이 겹겹이 풀려 있었고, 잔주름이 잡힌 블라우스는 그 위에 걸친 어두운색 정장과 대비를 이루며 서로 다른 스타일이 한 사람 몸 위에서 만난 듯한 느낌을 줬다.
꽃무늬 재킷이 헐렁한 화이트 스커트와 함께 입혀진 룩, 무늬 있는 원단 팬츠가 일부러 뜯긴 채로 이어붙인 룩도 눈에 띄었다. 마치 여러 벌의 옷을 잘라서 다시 이어 붙인 것 같은 모습이다. 이는 단순한 디자인 포인트라기보다, 하나의 깔끔한 옷을 만들기보다 서로 다른 시대와 재료의 조각을 이어 붙이려는 의도로 읽힌다.
차분한 색 안에서 튀어나오는 포인트 컬러
전체 컬러는 아이보리, 그레이, 차콜, 화이트 같은 차분한 무채색이 기본을 이뤘다. 하지만 이 차분함은 밋밋함이 아니라, 다음에 나올 색을 돋보이게 하는 배경에 가까웠다. 무채색 옷들 사이사이로 청록색과 자홍색 꽃무늬 드레스가 강하게 등장했고, 코발트블루와 겨자색 계열의 무늬 있는 팬츠가 무채색 재킷과 짝을 이루며 나왔다.
특히 꽃무늬 원단은 평평하게 인쇄된 것이 아니라 도톰하게 짜여 있어서, 마치 자수나 부조처럼 입체감 있게 표현됐다. 여기에 은색 물방울무늬 스커트는 여러 겹으로 부풀어 있어 모델이 걸을 때마다 풍성하게 흔들렸다. 즉 색을 아끼다가 필요한 곳에서 확실하게 터뜨리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말린 꽃 장식, 시간이 지난 듯한 느낌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상징적인 소품은 어깨나 허리에 커다랗게 매달린 꽃 장식이었다. 가늘게 늘어진 검은 술과 마른 잎사귀 같은 소재가 섞인 꽃다발은 갓 딴 생화라기보다 말린 꽃에 가까운 느낌을 줬다.
화려하지만 활짝 피어 있지는 않은, 이미 한 시절을 지나온 듯한 이 꽃 장식은 컬렉션 전체 분위기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완전히 새것도 아니고 완전히 낡은 것도 아닌 상태. 이것은 이번 시즌에 반복해서 나온 마감되지 않은 밑단, 이어 붙인 원단과 같은 맥락에 있다.
박윤수의 45년, '다시 해석하기'라는 방식
이런 흐름은 디자이너 박윤수의 커리어와 함께 볼 때 더 잘 이해된다. 1980년 패션 콘테스트를 통해 데뷔한 그는 거의 반세기 가까이 한국 컨템퍼러리 패션을 이끌어 온 인물이다. 그에게 '다시 해석하기'는 새로운 주제가 아니다.
이번 무대에서 주목할 점은 옛날 스타일을 그대로 반복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다듬어 온 테일러링 기술을 지금 시대에 맞게 새로 조정했다는 것이다. 각진 어깨선이나 정교한 허리 절개 같은 클래식 테일러링의 기본기는 그대로 살리되, 그 아래로 볼륨감 있고 마감이 자유로운 실루엣을 더해 지금의 감각을 얹었다.
변화를 과거와의 단절이 아니라 쌓아온 것의 연장선으로 보는 이 태도는 디자인뿐 아니라 옷을 만드는 방식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마감되지 않은 밑단이나 이어 붙인 원단은 눈에 보이는 디자인 요소이면서, 동시에 원단을 재단하고 남은 자투리를 버리지 않고 다시 옷에 활용하는 브랜드의 제작 방식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헤리티지를 사업으로 — 계속 확장하는 방식
빅팍이 흥미로운 점은 이런 디자인 태도가 사업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독일의 럭셔리 브랜드와 협업해 한국적인 감각을 해외 매장에 선보인 사례나, 최근 국내 여성복 브랜드와 손잡고 디자인 기획력과 생산·유통 역량을 결합한 프로젝트는, 이번 런웨이에서 보여준 '이어 붙이기'의 태도가 옷을 넘어 브랜드 운영 방식으로도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브랜드의 강점을 연결해 새로운 시장을 여는 방식은, 서로 다른 원단과 시간을 이어 붙여 한 벌의 옷을 완성하는 이번 컬렉션의 방식과 같은 원리로 볼 수 있다. 오랜 시간 쌓아온 자산을 한 번에 소진하지 않고 계속 다른 방식으로 재배치하는 것, 그것이 지금 빅팍이 말하는 '확장된 연속체'이자 브랜드가 오래도록 시장에서 살아남아 온 방법이다.
완성된 하나의 결과물보다 계속 이어지는 과정을, 소비보다 축적을 택한 이번 무대는 한 시즌의 유행을 보여주는 자리가 아니라, 45년째 계속 새로 쓰이고 있는 한 디자이너의 이야기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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