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이프저니|글·사진 이주상 기자] 4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27 S/S 서울패션위크' 빅팍(BIG PARK) 컬렉션 현장. 쇼가 시작되기 전 블루카펫 위로 걸어 나온 대한민국 방송사의 ‘레전드’ 정혜선(84)은 등장만으로 이날 포토월의 온도를 바꿔놓았다.
은빛으로 센 곱슬머리를 자연스럽게 늘어뜨리고, 얼굴 라인을 따라 둥글게 떨어지는 연보랏빛 틴트 안경을 쓴 그는 계단 위 조명 아래에서 시종일관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포토그래퍼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두 손으로 하트를 그려 보이는 순간까지 - 레전드라는 수식어가 과장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장면들이었다.
화이트와 블랙, 절제 속에 숨긴 디테일
이날 정혜선이 완성한 룩은 화이트 톱과 블랙 롱스커트로 이루어진 심플한 투피스 조합이었다. 언뜻 단정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곳곳에 디자인적 장치가 숨어 있다. 라운드 넥의 화이트 상의는 넉넉한 실루엣에 7부 소매를 매치해 편안함을 살렸고, 옆선으로는 시어 소재의 체크 패널이 살짝 비치듯 겹쳐져 밋밋할 수 있는 화이트 톱에 입체감을 더했다.
여기에 발목까지 떨어지는 블랙 와이드 스커트를 매치해 상하의의 무게 균형을 잡았고, 스터드 장식이 더해진 블랙 레이스업 부츠로 마무리해 클래식한 무드에 경쾌한 포인트를 심었다.
액세서리 사용 또한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존재감이 뚜렷했다. 어깨에 가볍게 걸친 블랙 숄더백, 손목을 감싼 블랙 비즈 팔찌와 화이트 스트랩의 다이아몬드 워치, 그리고 목선을 따라 은은하게 빛나는 얇은 목걸이까지. 화려한 아이템 하나 없이도 완성도 높은 스타일링이 가능하다는 것을 정혜선은 이날 몸소 보여줬다.
빅팍이 입힌 '동시대적 절제미'
이 같은 스타일링은 빅팍이 이번 시즌 내세운 컬렉션 '엑스팬디드 컨티뉴엄(EXPANDED CONTINUUM)'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박윤수 디자이너가 오랜 시간 쌓아온 테일러링과 비례의 미학을 동시대적 감각으로 확장한 이번 컬렉션은, 전통적인 재단 위에 현대적 비율과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더해 과거의 언어를 그대로 반복하지 않는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정혜선이 소화한 화이트 톱과 블랙 스커트의 조합에서도 이러한 절제와 정교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박윤수 패션 하우스의 아카이브를 기반으로 2012년 런던에서 론칭된 빅팍은, 화려한 색채와 도회적 시크에 밀리터리·펑크·히피 무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온 브랜드다. 디자인부터 패턴, 봉제, 포장까지 전 과정을 인하우스에서 관리하며 재고 없는 지속가능한 생산 방식을 지향한다는 점 역시 빅팍이 내세우는 브랜드 철학의 핵심이다.
이날 블루카펫 위에서 정혜선이 보여준 편안하면서도 감각적인 룩은, 나이와 세대를 넘어 오래 지속되는 스타일을 제안하겠다는 빅팍의 지향점과도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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