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방탄소년단) RM이 사랑한 화가' 한국 수묵화 거장 박대성, 드라마보다 극적인 74년 화업 인생

이주상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5-10-15 23:52:42

한쪽 팔 잃고도 독학으로 정상 오른 '한국화의 신화'  박대성의 금강설경(부분)

[K라이프저니 | 이여름 기자] 한국 수묵화의 거장 소산(小山) 박대성 화백은 한쪽 팔로, 독학만으로 미술계 정상에 올라 '한국화의 신화', '한 팔의 기적'으로 불리며 세계를 놀라게 한 현존하는 한국화의 거장이다.  

1945년생인 박 화백은 4-5살의 어린 나이에 한국전쟁의 비극을 온몸으로 겪었다. 다섯 살에 부모를 잃고 빨치산의 총탄에 왼쪽 팔까지 잃는 참혹한 아픔을 겪었지만, 그림이 좋았던 그는 붓을 놓지 않았다.  

경주 남산 자락 배동(拜洞) 삼릉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둘러싸인 특별한 공간이다. 문방사우와 묵향이 가득한 이곳에서 박 화백은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박대성 화백은 정규 미술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다. 여섯 살 때 집안 제사에서 병풍 뒤 지필묵으로 장난치다 어른들에게 칭찬을 들은 것이 시작이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그는 땅바닥에 숯으로 그림을 그리며 신라시대 화가 솔거의 이야기에 자신을 투영했다.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였지만, 그는 살을 깎는 노력으로 묵화부터 고서에 이르기까지 독학으로 끊임없는 연습을 거듭하는 고행의 길을 걸었다.  

1970년대 대한민국 국전에 8번 수상했고, 1979년에는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미술계에 등단했다. 수상작은 자연을 섬세하게 묘사한 새로운 감각의 신 산수화였다. 

이후 박 화백은 겸재 정선부터 이상범, 변관식으로 이어지는 진경산수화의 명맥을 이으면서도, 전통에 머물러 있지 않고 한국 수묵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펼쳐왔다. 

박대성 화백은 눈 내리는 불국사를 자주 그리는 작가로 '불국사 화가'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와 불국사 설경의 만남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작업실에서 제자에게 "5년이 넘도록 경주에는 눈이 쏟아진 적이 없다는데, 경주의 설경을 한 번 그려보고 싶다"고 푸념하며 잠든 그날 밤, 경주에 이례적인 폭설이 내렸다. '눈이 온다'는 소식에 화들짝 놀라 깬 박 화백은 단숨에 불국사 설경을 그려냈다고 한다.

1996년 인사동에서 선보인 가로 9m 세로 2.3m의 '천년배산'과 가로 8m 세로 2m의 '불국설경'은 '그림에서 광채가 난다'는 소문이 퍼지며 화제를 모았다. 또 다른 걸작 '삼릉비경'은 높이만 8m에 달해 전시장 벽을 넘어서 바닥에 일부분이 코트자락처럼 끌릴 정도다.  

1999년 박대성 화백은 별다른 연고가 없던 경주 남산 자락 삼릉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70세가 넘은 후 '어디서 일생을 보내야 할까'라는 질문에 선택한 곳이 바로 신라의 천년고도 경주였다. 신라 왕릉이 모인 배동 삼릉의 작업실 주변에는 크고 작은 석불이 즐비해, 매일 부처에게 절하는 동네라는 뜻에서 배동(拜洞)이라 불린다.  

경주에 뿌리를 내린 박 화백은 2008년 작품 기증 의사를 밝혔고, 2015년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공원 내에 830여 점의 작품을 기증하며 경주솔거미술관 건립의 기초를 마련했다. 

신라시대 화가 솔거의 이름을 따 명명된 경주솔거미술관은 경상북도와 경주시가 지원한 최초의 공립미술관으로, 세계적인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해 미술관 건물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 되도록 세워졌다.  

박 화백은 공로를 인정받아 2020년 문화예술발전 유공자로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22년 7월 LA 카운티미술관(LACMA)을 시작으로 하버드대 한국학센터, 다트머스대 후드미술관,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 메리워싱턴대 등 총 8곳의 해외 미술기관에서 2023년 말까지 순회전이 계속됐다.  

특히 메리워싱턴대에서 열린 'Park Dae Sung: Ink Reimagined'는 30점이 넘는 작품을 선보이며 박 화백의 해외 전시로는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후드미술관의 존 스톰버그 관장은 "박대성의 작업은 한국 미술의 과거와 동시대 미학을 융합한다. 그의 필법과 소재, 재료는 전통적이나, 동시에 색채 사용, 작품의 크기와 구성은 현대적"이라고 평가했다. 

순회전 기간에는 다트머스대 김성림 교수를 중심으로 미국 미술사학자들이 집필한 한국 현대미술 서적이 출간됐는데, 이는 서양에서 한국의 현대미술 작가들을 미술사적으로 비교 분석한 최초의 영문 연구서다.  

특히 박대성 화백은 'BTS(방탄소년단) RM이 사랑한 화가'로도 유명하다. 미술 애호가로 알려진 BTS 리더 RM은 2021년 8월 서울 인사아트센터 개인전, 2022년 2월 경주솔거미술관 '원융무애'전, 2022년 7월 미국 LACMA 전시를 직접 찾아 자신의 SNS에 작품 사진을 올리며 박대성 화백의 팬임을 여러 차례 인증했다 

경주솔거미술관에서 RM은 박 화백의 신작 '금강폭포'와 가로 12m에 달하는 국내 최대 수묵화 작품 '몽유 신라도원도' 앞에서 사진을 찍고 10분가량의 작품세계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하는 등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에 경주솔거미술관은 RM이 작품을 감상했던 '금강폭포' 앞에 'BTS RM 포토존'을 설치하고 RM의 관람 동선을 따라 'BTS RM과 같이 보는 작품'이라는 발자국 스티커를 부착해 관람객들의 흥미를 끌었다.  

박대성 화백은 '서(書)'를 '글'이라기보다는 사물의 형태와 의미를 나타내는 '디자인'으로 접근한다. 그는 중국의 대가 이가염의 "글씨와 먹을 중요시하라"는 가르침에 깊은 감명을 받아, 한 화면에서 공간을 재구성하고 왜곡함으로써 사물의 본질을 찾는 데 주력한 반추상적 표현방법을 선보인다.  

폭이 5미터에 이르는 대작들은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긴장감과 힘찬 기운을 쏟아내는데, 이는 크기에 의한 것이 아니라 기운생동이 드러나는 현대적 수묵화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윤범모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박대성의 그림은 독창적이고 기백이 넘치면서 열려 있고 개념적 경계에 얽매이지 않는 작품으로 완숙했으며, 그의 시각적 진화는 '전통미술'과 '현대미술' 등 양분화를 뛰어넘는다"고 평가했다.  

박 화백은 먹이라는 단일 매체로 색과 공간을 엮어내며, 동양 수묵화의 정수인 '여백의 미'를 독창적인 화면 구성으로 표현한다. 그의 작품은 채움과 비움, 음과 양의 조화를 통해 동양적 미학이 서구의 미니멀리즘과 철학적으로 맞닿아 있음을 보여주며, 현대 모더니즘의 또 다른 형태로 평가받고 있다.

박대성의 소산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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