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음반] 바이로이트의 신성한 유산, 2023년 '파르지팔' 에라스-카사도의 지휘로 부활!

이주상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5-10-09 23:06:21

파블로 에라스-카사도의 바이로이트 데뷔작...안드레아스 샤거·엘리나 가란차 꿈의 캐스팅 파르지팔

[K라이프저니 | 이여름 기자] 세계 최고의 음반 레이블인 독일의 도이치 그라모폰(Deutsche Grammophon)이 2023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의 바그너 '파르지팔' 공연 실황을 음반과 블루레이로 동시 발매했다.

뉴욕 타임스가 "훌륭하게 노래되고, 근육질의 견고함으로 지휘됐다"고 극찬한 이 공연은  스페인의 떠오르는 거장 파블로 에라스-카사도의 바이로이트 데뷔 무대이자, 현시대 최고의 바그너 성악가들이 총출동한 역사적 기록이다.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의 마지막 악극 '파르지팔'은 작곡가가 바이로이트 축제극장(Festspielhaus)을 위해 특별히 작곡한 작품이다. 바그너는 이 작품이 오직 바이로이트에서만 공연되기를 원했으며, 1882년 7월 이곳에서 초연됐다. 
 
바그너는 '파르지팔'을 '무대봉헌축전극(Buhnenweihfestspiel)'이라 명명했는데, 이는 단순한 오페라가 아니라 무대를 신성화하는 종교적 의식극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중세 아서왕 전설의 성배 기사단 이야기를 바탕으로, 순수한 '바보' 파르지팔이 고통받는 기사단의 왕 암포르타스를 구원하고 성배의 왕이 되는 과정을 그린다.

작품은 기독교적 구원과 자비, 연민의 테마를 다루며, 성만찬과 발세례 등의 의식이 등장한다. 바그너가 생전에 완성한 마지막 작품이자, 그의 예술적·철학적 사상이 집대성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은 바그너가 자신의 음악극을 공연하기 위해 직접 설계하고 1876년 개관한 세계 유일의 작곡가 전용 극장이다. 독일 바이에른주 바이로이트에 위치한 이 극장은 매년 여름 약 한 달간 열리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의 중심 무대로, 오직 바그너의 작품만을 공연한다.

1,925석 규모의 이 극장은 혁신적인 음향 설계로 유명하다. 오케스트라 피트가 무대 아래 깊숙이 감춰져 있어 관객이 오케스트라를 볼 수 없으며, 이로 인해 음악이 무대 위에서 우러나오는 듯한 독특한 음향 효과를 만들어낸다. 바그너는 이를 통해 관객이 온전히 무대 위 드라마에 집중하도록 의도했다.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은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음악 축제 중 하나로, 티켓을 구하기가 극도로 어렵기로 유명하다. 평균 대기 시간이 10년에 달하며, 바그너 애호가들에게는 평생의 꿈과 같은 곳이다.

1977년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경찰관의 아들로 태어난 파블로 에라스-카사도는 7세 때 학교 합창단에서 노래를 시작했고, 9세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라나다 음악원에서 음악을 공부한 후 그라나다 대학교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연기 과정도 수료했으며, 거리 극단에서 활동하며 현대 무용 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다.  

16세기 종교 다성 음악에 영감을 받은 그는 1990년대 중반 초기 음악 앙상블 카펠라 엑사우디(Capella Exaudi)의 창단에 참여했다. 
 
지휘는 '더 식스틴(The Sixteen)'의 창단자 해리 크리스토퍼스(Harry Christophers)와 고음악의 대가 크리스토퍼 호그우드(Christopher Hogwood)에게 사사받았다. 
 
2007년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피에르 불레즈의 지도를 받았으며, 슈톡하우젠의 '그루펜(Gruppen)'을 지휘해 루체른 페스티벌 지휘자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국제적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25년 오페라 전문지 '오페르벨트(Opernwelt)'가 선정한 '올해의 지휘자'이자, 2024년 오페라 매거진 '오페라 XXI'가 선정한 최우수 지휘자, 2021년 국제 클래식 음악 어워즈의 '올해의 아티스트', 2014년 뮤지컬 아메리카의 '올해의 지휘자'를 수상했다. 
 
에라스-카사도는 바로크 음악의 전문가이면서 동시에 바그너와 브루크너 같은 후기 낭만파 거장들의 작품을 능숙하게 소화하는 보기 드문 지휘자다.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프랑스 방송 필하모닉,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뮌헨 필하모닉, NDR 엘프필하모닉,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빈 심포니커, 라 스칼라 필하모닉, NHK 심포니 등 유럽과 일본의 주요 오케스트라는 물론, 북미에서는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클리블랜드, 피츠버그, 필라델피아 심포니와 LA 필하모닉 등과 정기적으로 협연한다. 
 
2023년 '파르지팔'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성공적으로 데뷔한 이후, 에라스-카사도는 그의 세대를 대표하는 바그너 해석자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2025년과 2026년에도 '파르지팔'을 재연하며, 2028년에는 바이로이트에서 새로운 '니벨룽의 반지' 프로덕션을 지휘할 예정이다.  

에라스-카사도는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의 까다로운 음향에 적응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었다. 많은 저명한 지휘자들이 어려움을 겪은 이 공간에서, 그는 '파르지팔'을 투명하고 균형 잡힌 해석으로 이끌어냈다. 
 
빈 음악대학에서 수학한 안드레아스 샤거는 오페레타와 모차르트의 서정적 역할로 경력을 시작했지만, 이후 바그너와 슈트라우스의 헬덴테너(영웅 테너) 역할로 전환했다. 2009년 티롤 페스티벌 에를에서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의 다비트 역으로 호평을 받으며 데뷔했다.

라이브 녹음치고는 음질이 탁월하며, 거의 스튜디오 수준의 기준에 도달한다. 4CD 세트에는 작품에 대한 정보, 2023년 바이로이트 무대에 대한 정보와 프로덕션 사진이 담긴 북릿, 그리고 영어 번역이 포함된 완전한 독일어 대본이 수록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이번 음반은 의심할 여지 없이 라파엘 쿠벨릭의 기념비적인 1980년 버전 이후 최고의 '파르지팔' 녹음이다. 양식적으로 아바도의 접근 방식을 연상시키지만, 그는 안타깝게도 전체 악극을 음반으로 남기지 않고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위한 40분짜리 '파르지팔' 모음곡만 녹음했다. 
 
에라스-카사도의 해석은 필리페 조르당의 소니 클래시컬 녹음을 포함한 다른 최근 '파르지팔' 녹음들보다 훨씬 우수하다. 에라스-카사도의 투명하고 균형 잡힌 지휘, 샤거와 가란차를 비롯한 세계 최정상급 성악가들의 열창, 그리고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완벽한 연주가 어우러진 이 음반은 바그너 음악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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