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음반] 큐피드의 금화살이 부른 비극적 사랑, 카발리의 '아폴로와 다프네의 사랑'
이주상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5-12-16 20:17:59
[K라이프저니 | 이여름 기자] 바로크 음악 전문 레이블 글로사(Glossa)가 17세기 베네치아 오페라의 거장 프란체스코 카발리(Francesco Cavalli, 1602-1676)의 '아폴로와 다프네의 사랑(Gli amori d'Apollo e di Dafne)'을 발매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저명한 바로크 음악 지휘자 가브리엘 가리도와 그가 이끄는 앙상블 엘리마(Ensemble Elyma)가 연주한 이 음반은 1640년 베니스 테아트로 산 카시아노에서 초연된 이 작품을 현대에 생생하게 되살렸다.
이 오페라의 배경이 되는 그리스 신화는 사랑의 신 에로스(큐피드)가 빚어낸 비극적 이야기다. 거대한 뱀을 처치하고 승리에 도취된 태양의 신 아폴로는 활을 든 어린 에로스를 보고 조롱했다. "그런 장난감 같은 활로 무엇을 하려느냐"는 아폴로의 거만한 말에 분노한 에로스는 두 개의 화살을 준비했다.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금화살은 아폴로에게, 사랑을 거부하게 만드는 납화살은 아름다운 님프 다프네에게 쏘았다.
금화살을 맞은 아폴로는 순결을 지키며 살아가던 다프네에게 격렬한 사랑을 느꼈지만, 납화살을 맞은 다프네는 아폴로를 피해 끊임없이 도망쳤다. 아폴로의 집요한 추격 끝에 마침내 그가 다프네를 붙잡으려는 순간, 다프네는 아버지 강의 신 페네우스(또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에게 구원을 청했다. 그녀의 기도는 응답되었고, 다프네의 몸은 월계수로 변해갔다. 머리카락은 잎사귀로, 팔은 가지로, 다리는 뿌리로 변했다.
사랑하는 여인을 영원히 잃은 아폴로는 깊은 슬픔에 빠졌다. 그는 월계수를 자신의 성스러운 나무로 삼았고, 이후 월계관은 시인과 승리자를 상징하는 영광의 표시가 되었다. 델포이의 신탁을 전하는 피티아 여사제들도 월계수 잎을 씹으며 아폴로와 교감했다고 전해진다. 이런 배경으로 음반의 표지도 월계수로 변신하는 다프네를 쫓는 아폴로를 형상화했다.
프란체스코 카발리는 본명이 피에트로 프란체스코 칼레티-브루니(Pietro Francesco Caletti-Bruni)였으나, 그의 후원자였던 베네치아 귀족 페데리코 카발리의 이름을 따라 카발리로 알려지게 되었다. 1602년 베네치아 공화국의 크레마에서 태어난 그는 1616년 14세의 나이로 베네치아 산 마르코 대성당의 소년 소프라노 가수로 입단하며 본격적인 음악 경력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그는 오페라 장르의 창시자로 평가받는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의 지도를 받았다. 1639년 제2오르가니스트, 1665년 제1오르가니스트를 거쳐 1668년에는 산 마르코 대성당의 음악감독(maestro di cappella)이 되었다. 카발리는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베네치아 음악계의 중심인물로 군림했다.
카발리가 오페라 작곡을 시작한 1639년은 베네치아에 최초의 공공 오페라 극장 테아트로 산 카시아노가 문을 연 직후였다. 그의 데뷔작 '테티와 펠레오의 결혼(Le nozze di Teti e di Peleo)'은 이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카발리는 이후 30년간 40편이 넘는 오페라를 작곡했으며, 이 중 27편의 악보가 베네치아 산 마르코 도서관에 보존되어 있다.
카발리의 음악적 혁신은 몬테베르디의 궁정 오페라와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만토바 궁정의 호화로운 관현악을 위해 작곡된 몬테베르디의 초기 오페라와 달리, 카발리는 공공 오페라 극장의 제한된 조건에 맞춰 현악기와 통주저음(basso continuo)으로 구성된 소규모 오케스트라를 사용했다. 이러한 실용적 접근은 오히려 오페라가 대중적 예술 장르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는 선율적인 아리아를 오페라에 도입했으며, 대본에 서민적이고 대중적인 요소를 포함시켰다. 그의 작품은 강력한 극적 효과와 뛰어난 음악적 역량, 그리고 이탈리아 오페라의 특징이 된 그로테스크한 유머를 지니고 있었다. 음악학자들은 카발리가 17세기 베네치아에서 단일 작곡가가 단일 장르에서 초기부터 후기까지 연속적인 음악적 발전을 보여준 유일한 사례라고 평가한다.
카발리는 1649년 작 '기아손(Giasone)', 1651년 작 '칼리스토(La Calisto)' 등으로 높은 명성을 얻었으며, 1660년부터 1662년까지 파리로 초청받아 루이 14세의 결혼식을 위해 '에르콜레 아만테(Ercole amante)'를 제작했다. 그의 음악은 벨칸토 창법의 기초를 확립했으며, 레치타티보와 아리아 기법의 초기 형태를 발전시켰다.
이번 음반의 지휘자 가브리엘 가리도는 1950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나 17세 때 리코더 4중주단 '프로 아르테'의 멤버로 유럽 투어를 두 차례 가졌다. 그는 라플라타 국립대학교, 취리히, 그리고 바젤 스콜라 칸토룸에서 공부하며 류트, 바로크 기타, 르네상스 시대 리드 악기를 전문으로 했다.
조르디 사발이 이끄는 에스페리온 XX의 멤버로 활동하며 여러 음반 녹음에 참여한 그는 1977년부터 제네바 음악원 고음악 센터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1981년 앙상블 엘리마를 창단했다. 가리도는 이탈리아 바로크 음악, 특히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발레, 성악 작품 사이클로 유명하며, 동시에 라틴아메리카 바로크 음악 유산의 발굴과 재현에도 헌신해왔다.
1992년부터 프랑스 레이블 K617을 위해 '바로크의 길(Les Chemins du Baroque)' 시리즈를 녹음하며 라틴아메리카 바로크 음악을 세계에 알렸고, 이 공로로 UNESCO는 그에게 '모차르트 메달'을 수여했다. 2000년에는 베네치아 치니 재단이 이탈리아 음악을 위한 10년간의 예술 활동을 인정하여 특별상을 수여했다.
1990년부터 팔레르모의 테아트로 마시모에서 매년 오페라를 지휘해왔으며, 앙브로네 페스티벌, 본 국제 바로크 오페라 페스티벌, 인스브루크 고음악 페스티벌 등에서 활동했다. 그의 해석은 색채감, 표현력, 관능성이 뛰어나 바로크 음악이 세기를 뛰어넘어 현대 청중에게 공명하도록 만드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음반은 프랑스 몽프랭(Montfrin)의 노트르담 드 발랑스 성당에서 2007년 4월에 녹음되었다. 로베르토 메오와 지그리드 리가 엔지니어링과 프로듀싱을 담당했으며, 장-프랑수아 라타리코가 해설을 집필했다. 총 연주 시간은 77분 47초와 78분 40초로 두 장의 CD에 수록되었다.
주요 출연진으로는 아폴로 역에 안데르스 달린(Anders Dahlin), 다프네 역에 로사 도밍게스(Rosa Dominguez), 오로라 역에 에마누엘라 갈리(Emanuela Galli), 체팔로 역에 스테판 반 다이크(Stephan Van Dyck) 등 당대 최고의 바로크 성악가들이 참여했다.
이 음반의 역사적 가치는 카발리의 초기 작품인 '아폴로와 다프네의 사랑'이 현대에 거의 연주되지 않는 작품이라는 점에 있다. 1640년 초연 이후 오랫동안 잊혀졌던 이 오페라를 가리도와 앙상블 엘리마가 복원하여 녹음함으로써, 카발리의 작곡 스타일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추적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카발리의 음악은 20세기 들어 본격적으로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1970년 글라인드본 오페라 페스티벌의 '칼리스토' 공연이 대표적 사례이며, 2017년에는 같은 극장에서 '이페르메스트라(Hipermestra)'가 공연되었다. BBC 라디오 3의 '이 주의 작곡가' 시리즈에도 카발리가 소개되는 등 그의 작품들은 풍부한 음반 목록을 구축하며 21세기 바로크 음악 부흥의 중심에 서 있다.
카발리가 확립한 벨칸토 창법은 이후 이탈리아 오페라의 근간이 되었으며, 그의 극적 감각과 음악적 완성도는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통을 형성했다. 소규모 오케스트라를 위한 그의 실용적 작곡 방식은 오페라가 궁정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대중의 예술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음악 평론가들은 이 음반에 대해 "가리도 특유의 색채감과 표현력이 카발리의 음악이 지닌 극적 긴장과 서정성을 완벽하게 구현했다"며 "17세기 베네치아 오페라의 생동감을 현대 청중에게 전달하는 중요한 녹음"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앙상블 엘리마의 시대 악기 연주와 성악진의 뛰어난 표현력이 조화를 이루며, 오페라가 탄생한 지 38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카발리의 음악이 여전히 생명력을 지니고 있음을 증명했다는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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