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 베르나르도 벨로토의 '산 마르코 분지에서 본 몰로 부두', 도시 풍경화의 정수를 보여주다!
이주상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5-11-23 17:37:27
[K라이프저니 | 이여름 기자] 베르나르도 벨로토가 18세기 중반 제작한 '베네치아, 산 마르코 분지에서 본 몰로 부두'는 베네치아 공화국 전성기의 웅장함과 일상을 동시에 담아낸 걸작이다. 현재 샌디에이고 미술관이 소장한 이 작품은 도시 풍경화, 즉 베두타(Veduta) 장르의 백미로 평가받는다.
화면 중앙을 지배하는 산 마르코 종탑(Campanile)은 베네치아의 상징적 랜드마크로서 작품의 수직적 축을 형성한다. 오른쪽의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은 베네치아 고딕 양식의 화려한 아치와 섬세한 장식으로 공화국의 권위를 드러낸다. 왼쪽의 마르치아나 도서관과 주변 건축물들은 수평적 구도를 이루며 안정감을 부여한다.
전경을 가득 채운 곤돌라와 각종 선박들은 해양 도시 베네치아의 생동감을 전한다. 뱃사공들과 승객들의 모습, 화려한 의상을 입은 귀족 등 세밀하게 묘사된 인물들은 당시 베네치아의 일상과 문화를 생생하게 기록한다.
벨로토의 진가는 빛의 처리에서 드러난다. 따스한 황금빛 햇살이 건물의 크림색과 오렌지색 외벽을 감싸며, 맑은 청록색 수면과 대비를 이룬다. 하늘의 미묘한 구름 표현과 대기 원근법의 활용은 작품에 깊이감과 서정성을 더한다. 이는 단순한 지형도적 기록을 넘어선 예술적 성취다.
건축물의 정밀한 묘사는 벨로토가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를 활용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러나 그는 기계적 재현에 머물지 않고 구도의 재배치와 색조의 조정을 통해 예술적 완성도를 높였다. 이는 18세기 베네치아 풍경화가들이 추구한 '정확성'과 '아름다움'의 조화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여러 층위의 가치를 지닌다. 먼저 역사적 기록물로서 18세기 베네치아의 도시 경관과 사회상을 보존한다. 산 마르코 종탑은 1902년 붕괴 후 재건되었기에, 벨로토의 그림은 원형의 모습을 전하는 귀중한 자료다.
예술사적으로는 베두타 장르의 발전 과정을 증명한다. 벨로토는 스승 카날레토의 기법을 계승하면서도 더욱 냉철하고 객관적인 시선, 그리고 북유럽적 색조를 도입해 독자적 화풍을 구축했다. 이는 이탈리아 풍경화 전통이 범유럽적 미술 언어로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문화적으로는 18세기 그랜드 투어(Grand Tour) 문화를 반영한다. 유럽 귀족과 지식인들은 베네치아를 필수 방문지로 삼았고, 벨로토와 같은 화가들의 작품은 여행의 기념품이자 문화적 교양의 상징이었다.
베르나르도 벨로토(1721-1780)는 삼촌이자 스승인 카날레토의 그늘에서 출발했지만, 곧 독자적 영역을 개척했다. 그는 베네치아를 떠나 로마, 피렌체, 드레스덴, 빈, 바르샤바 등 유럽 각지를 순회하며 주요 도시의 풍경을 기록했다.
벨로토의 화풍은 카날레토보다 차갑고 명료하다. 그는 더욱 정확한 건축적 디테일과 대기 표현을 추구했으며, 북유럽의 청회색 색조를 적극 수용했다. 이는 이탈리아 베두타 전통에 북유럽 풍경화의 사실주의를 접목한 성과로 평가된다.
특히 폴란드 바르샤바에서의 활동은 주목할 만하다. 그가 남긴 바르샤바 풍경화들은 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된 도시를 복원하는 데 핵심 자료로 활용됐을 정도로 엄청난 정확성, 정확한 묘사를 보여주고 있다. 예술이 역사 보존의 실질적 도구가 된 사례다.
벨로토는 도시 풍경화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그의 정밀한 관찰과 객관적 재현은 19세기 사실주의 회화의 선구로 평가받는다. 또한 건축과 도시 공간에 대한 체계적 기록 방식은 현대 도시 다큐멘터리 사진의 원형을 제공했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빛과 대기를 탐구할 때, 그들은 벨로토가 닦아놓은 길 위에 있었다. 카메라 옵스큐라의 예술적 활용은 사진술 발명 이후 회화와 기계적 이미지의 관계를 사유하는 출발점이 됐다.
오늘날 벨로토의 작품들은 단순히 아름다운 옛 그림이 아니다. 그것은 사라진 도시의 기억이자, 예술과 기록의 경계에서 인간이 세계를 재현하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샌디에이고 미술관의 이 작품 역시 그러한 질문 앞에 관람객을 초대한다.
한편 게시한 작품을 비롯해 샌디에이고 미술관이 소장한 65점의 작품이 지난 11월 5일부터 2026년 2월 2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유럽의 명화를 감상하고 싶다면 꼭 봐야할 전시다.
klifejourney2025@gmail.com
[ⓒ K라이프저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
- 1[이 음반] 귄터 헤르비히의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 냉전시대 동독 클래식의 금자탑
- 2"정의의 아이콘 김도기로 돌아왔다"... 이제훈, '모범택시3'로 입증한 대체 불가 배우 파워
- 3[이 책] "역사는 과학이 될 수 있는가"... 피터 터친 '제국의 탄생', 수학으로 인류 문명 흥망성쇠 해독하다
- 4엔믹스 릴리, 블랙 레더 재킷으로 완성한 시크 공항 패션... "금발+올블랙 조합 완벽"
- 5[이 책] "청산되지 않은 역사, 오늘도 반복된다"... 정운현 『친일파의 한국 현대사』, 대한민국 권력구조의 민낯 파헤쳐
- 6[이 책] "인류 문명의 불평등은 어디서 비롯됐나"... 제러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역사학계 패러다임 전환 이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