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음반] 잊혀진 거장 칼다라의 걸작 오라토리오 '그리스도의 죽음과 매장', 비온디의 열정으로 되살아나다
이주상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5-12-31 16:04:17
[K라이프저니 | 이여름 기자] 2014년 노르웨이 스타방에르 콘서트홀에서 녹음된 안토니오 칼다라(Antonio Caldara, 1671-1736)의 오라토리오 '그리스도의 죽음과 매장(Morte e sepoltura di Christo)'은 바로크 성악 음악의 잊혀진 걸작을 현대 청중에게 선보인 의미 있는 음반이다.
1724년 비엔나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합스부르크 황실의 성금요일 예배를 위해 작곡되었다. 칼다라는 당시 비엔나 궁정 부악장(Vice-Kapellmeister)으로 재직하며 황실의 주요 종교 행사를 위한 음악을 도맡아 작곡했다. 이 오라토리오는 그의 종교 음악 중에서도 극적 구성과 음악적 완성도에서 정점을 이루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글로사(Glossa) 레이블에서 발매한 이 음반은 2장의 CD로 구성되어 있으며, 칼다라, 푹스(Fux), 비발디의 기악곡들을 함께 수록해 18세기 초 비엔나 궁정 음악의 맥락을 풍부하게 보여준다. 총 연주 시간은 약 125분에 달하는 대작이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매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매장을 다룬 2부 구성의 오라토리오다. 대본은 피에트로 파리아티(Pietro Pariati)가 썼으며, 성서의 수난 내러티브를 마리아 막달레나, 성모 마리아, 성 요한 등 목격자들의 시선으로 재구성했다.
제1부(Parte prima)는 십자가 위 그리스도의 죽음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제2부(Parte seconda)는 매장과 애도의 과정을 그린다. 칼다라는 각 등장인물에게 뚜렷한 음악적 성격을 부여했다. 마리아 막달레나의 아리아는 격렬한 슬픔과 회개를 표현하며, 성모 마리아의 음악은 고요한 비탄을 담아낸다.
작곡가는 당시 비엔나 궁정 오페라에서 활용하던 극적 기법들을 종교 음악에 접목했다. 레치타티보(recitativo)와 아리아가 교차하며 이야기를 진행하고, 합창은 극의 정점에서 등장해 극적 긴장을 고조시킨다. 특히 그리스도가 숨을 거두는 장면에서 현악기의 떨림과 침묵을 활용한 음향적 처리는 당대 최고 수준의 작곡 기법을 보여준다.
안토니오 칼다라는 18세기 초 유럽 음악계에서 헨델, 비발디와 어깨를 나란히 한 거장이었다. 1671년 베네치아에서 태어난 그는 조반니 레그렌치(Giovanni Legrenzi) 밑에서 수학했으며, 초기에는 베네치아와 만투아에서 오페라 작곡가로 명성을 쌓았다.
1716년 비엔나 궁정으로 초빙된 칼다라는 카를 6세 황제의 총애를 받으며 20년간 궁정 음악을 이끌었다. 그는 요한 요제프 푹스(Johann Joseph Fux) 궁정악장 아래서 부악장직을 맡았지만, 실질적으로는 궁정의 모든 음악 활동을 책임졌다. 오페라, 오라토리오, 미사, 칸타타 등 3,400곡 이상을 작곡한 다작 작곡가였다.
음악사학자들은 칼다라를 "비엔나 바로크 양식의 완성자"로 평가한다. 그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벨칸토 전통과 오스트리아-독일의 대위법적 엄격함을 조화시켜 독특한 양식을 창조했다. 이는 후대 글룩(Gluck)과 모차르트로 이어지는 비엔나 고전주의의 토대가 되었다.
하지만 칼다라는 사후 급격히 잊혀졌다. 19세기와 20세기 초 음악학계는 바흐와 헨델에 집중했고, 칼다라의 방대한 작품들은 도서관 서고에 묻혀 있었다. 1980년대 이후 역사적 연주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그의 음악이 재발견되기 시작했으며, 최근 20년간 주요 음반사들이 앞다투어 그의 작품을 녹음하고 있다.
이 음반의 핵심은 바이올리니스트 겸 지휘자 파비오 비온디(Fabio Biondi)의 탁월한 음악적 리더십이다. 1961년 이탈리아 팔레르모에서 태어난 비온디는 바로크 음악 해석의 세계적 권위자로, 1990년 앙상블 유로파 갈란테(Europa Galante)를 창단해 비발디 협주곡 전집 등 획기적인 음반들을 남겼다.
비온디는 역사적 연주 관행(Historically Informed Performance)에 깊이 천착하면서도 학술적 경직성을 피하고 음악의 생동감을 우선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음반에서도 그는 스타방에르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바로크 시대 연주 관행에 따라 세밀하게 조율했다. 현악기의 비브라토를 절제하고, 활 사용법을 18세기 방식으로 통일했으며, 통주저음(basso continuo)은 하프시코드, 첼로, 더블베이스, 테오르보가 함께 담당하도록 편성했다.
비온디는 바이올린을 직접 연주하며 지휘하는 콘서트마스터 방식을 채택했다. 이는 18세기 오케스트라의 전형적인 운영 방식으로, 지휘자와 연주자 간의 유기적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그의 지휘는 극적 순간의 긴장감과 서정적 대목의 섬세함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칼다라 음악의 오페라적 성격을 극대화한다.
성악 솔리스트진도 주목할 만하다. 마리아 막달레나 역의 이탈리아 소프라노 마리아 그라치아 스키아보(Maria Grazia Schiavo)는 바로크 레퍼토리 전문가로, 격정적인 아리아에서 뛰어난 기교와 극적 표현력을 보여준다. 소프라노 실비아 프리가토(Silvia Frigato)는 성모 마리아 역을 맡아 절제된 슬픔을 담담하게 노래하며, 알토 마르티나 벨리(Martina Belli)는 성 요한 역에서 풍부한 중저음역을 들려준다.
테너 아니치오 조르지 주스티니아니(Anicio Zorzi Giustiniani)는 니코데모 역을 맡아 바로크 테너의 유연한 음색을 선보이며, 베이스 우고 과글리아르도(Ugo Guagliardo)는 백부장 역에서 권위 있는 저음을 담당한다. 다섯 솔리스트 모두 바로크 성악의 핵심인 레치타티보 딕션과 장식음 처리에서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스타방에르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노르웨이의 대표적인 오케스트라로, 2000년대 이후 바로크 레퍼토리 개척에 적극적이다. 이 음반에서 오케스트라는 비온디의 요구에 화답하며 투명하고 균형 잡힌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특히 현악 섹션의 일체감과 목관악기들의 섬세한 색채 변화가 돋보인다.
음반 평론가들은 이 녹음을 "칼다라 부흥의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한다. 영국 음악 전문지 '그라모폰(Gramophone)'은 "비온디의 해석은 학술적 정확성과 극장적 생동감을 완벽하게 결합했다"며 높은 점수를 부여했고, '파노라마 클래식(Panorama Classic)'지는 "잊혀진 걸작의 재발견"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이 음반은 바로크 성악 음악 애호가들뿐 아니라 헨델의 오라토리오나 바흐의 수난곡을 즐기는 청중들에게도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칼다라의 음악은 헨델보다 더 오페라적이고, 바흐보다 더 서정적이면서도, 둘 못지않은 음악적 깊이를 지니고 있다.
글로사 레이블은 이 음반에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로 된 상세한 해설서를 포함시켰다. 음악학자 브라이언 W. 프리처드(Brian W. Pritchard)가 집필한 해설은 작품의 역사적 배경, 대본 분석, 음악적 특징을 학술적으로 설명하며, 청취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300년 전 비엔나 궁정에서 울려 퍼졌던 성금요일의 음악이 21세기 청중과 만나는 이 음반은, 음악사의 잊혀진 장을 되살리는 음반 제작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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