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음반] 전설의 복원, 야샤 하이페츠가 들려주는 영국 바이올린 협주곡의 정수

이주상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5-12-20 10:57:29

야샤 하이페츠의 월튼·엘가 바이올린 협주곡. 이여름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K라이프저니 | 이여름 기자] 낙소스(Naxos) 레이블의 낙소스 히스토리컬 시리즈 중의 하나인 'Great Violinists'의 야샤 하이페츠의 월튼·엘가 바이올린 협주곡 음반은 20세기 바이올린 연주사의 황금기를 생생하게 증언하는 귀중한 음원이다. 1941년과 1949년의 역사적 녹음을 최신 기술로 복각한 이 음반은 하이페츠의 천재성과 영국 낭만주의 협주곡의 매력을 동시에 담아냈다.
 
이 음반의 가치는 무엇보다 역사적 중요성에 있다. 1941년 신시내티에서 녹음된 월튼 협주곡은 작곡가 자신이 하이페츠를 염두에 두고 작곡한 작품의 원전 버전이다. 유진 구센스가 지휘한 신시내티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작품 초연 직후 이루어진 것으로, 월튼 협주곡 해석의 기준점이 되었다.

1949년 런던 EMI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엘가 협주곡은 더욱 극적인 배경을 지닌다. 말콤 사전트가 지휘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이 녹음은 엘가 협주곡의 정통 해석으로 평가받으며, 하이페츠가 영국 음악에 바친 헌정으로 여겨진다. 당시 78회전 SP로 발매되었던 이 녹음은 반세기가 넘도록 최고의 엘가 협주곡 연주 중 하나로 손꼽혀왔다.
 
마크 오버트-손(Mark Obert-Thorn)이 담당한 오디오 복원 작업은 이 음반의 또 다른 미덕이다. 1940년대 녹음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어 하이페츠의 섬세한 보잉, 비브라토의 떨림, 오케스트라와의 미묘한 균형까지 생생하게 살려냈다. 원본 빅터(Victor)와 HMV 레코드에 담겼던 음향을 최대한 보존하면서도 잡음을 최소화한 복각 작업은 역사적 녹음 복원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는다.

특히 1949년 애비 로드 녹음은 당시로서는 최첨단 기술로 제작되었기에 복각 후에도 놀라운 음질을 자랑한다. 하이페츠의 스트라디바리우스가 뿜어내는 찬란한 음색과 런던 심포니의 풍성한 현악 사운드가 70여 년의 시간을 넘어 생생하게 전달된다.
 
야샤 하이페츠(1901-1987)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린다. 그의 연주는 완벽한 테크닉, 정확무비한 음정, 명료한 발음, 빠른 템포로 유명하지만, 이 음반에서는 그보다 깊은 차원의 음악성을 발견할 수 있다.

월튼 협주곡에서 하이페츠는 20세기 모더니즘 음악의 날카로운 리듬과 불협화음을 완벽하게 소화하면서도, 2악장 '나폴리 풍의 빠른 카프리치오'에서는 경쾌한 유머를, 3악장에서는 열정적인 추진력을 보여준다. 그의 연주는 월튼의 복잡한 음악 언어를 명료하게 풀어내면서도 서정성을 잃지 않는다.

엘가 협주곡에서는 하이페츠의 또 다른 면모가 드러난다. 영국 에드워디언 시대의 고귀한 우수와 낭만적 정서를 러시아 출신 거장이 어떻게 이해하고 표현했는지 보여주는 이 연주는, 기교를 넘어선 깊은 공감과 성찰을 담았다. 특히 2악장 안단테의 서정적 노래와 3악장 카덴차에서 펼쳐지는 독백 같은 연주는 하이페츠 예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흥미롭게도 월튼과 엘가의 협주곡은 모두 b단조로 작곡되었다. 하지만 두 작품이 그려내는 음악적 세계는 완전히 다르다.

엘가의 협주곡(Op. 61)은 1910년 작곡된 후기 낭만주의의 걸작이다. 41분이 넘는 대곡으로, 브람스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영국 특유의 전원적 서정성과 귀족적 우아함을 담았다. 특히 2악장은 바이올린 협주곡 문헌에서 가장 아름다운 느린 악장 중 하나로 꼽힌다. 반주가 곁들여진 긴 카덴차는 협주곡 형식의 혁신으로 평가받는다.

월튼의 협주곡(1939년 초연)은 20세기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은 작품이다. 신고전주의적 간결함과 재즈의 영향, 불협화적 화성이 어우러지면서도 낭만적 서정성을 잃지 않는다. 이 음반에 수록된 것은 원전 버전으로, 나중에 작곡가가 개정한 버전과는 다른 매력을 지닌다. 2악장의 '나폴리 풍 카프리치오'는 이탈리아 민속음악의 경쾌함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독특한 악장이다.
 
1941년과 1949년,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격동기에 녹음된 이 음반은 전쟁의 암울함 속에서도 예술이 빛을 잃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하이페츠의 완벽한 연주, 구센스와 사전트라는 명지휘자들의 헌신적 협연, 그리고 현대 복각 기술의 결합이 만들어낸 이 음반은 영국 바이올린 협주곡 연주사의 이정표이자, 하이페츠라는 거장의 예술 세계를 이해하는 필수 음원으로 남아 있다. 

klifejourney2025@gmail.com

[ⓒ K라이프저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