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음반] '레퍼토리의 명가' CPO, 부르크하르트 슈밀군의 혜안과 전략으로 클래식 음반계 거목으로 성장!
이주상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5-12-23 09:49:42
[K라이프저니 | 이여름 기자] 1986년 독일 오스나브뤼크에서 탄생한 CPO(Classic Produktion Osnabruck)는 클래식 음반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한 레이블이다.
CPO의 성공은 명확한 철학에 기반한다. "녹음된 클래식 레퍼토리의 틈새를 메운다(fill niches in the recorded classical repertory)"는 사명 선언은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라 실제 경영 전략의 핵심이다. CPO는 메이저 레이블들이 외면한 낭만파 후기, 20세기 음악, 그리고 잊혀진 작곡가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발굴해왔다.
1991년부터 예술감독(Director A&R)을 맡은 부르크하르트 슈밀군(Burkhard Schmilgun)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비올라 연주자 출신인 그는 '잊혀진 레퍼토리'를 발굴하는 탁월한 안목으로 CPO를 차별화했다. 그의 리더십 아래 CPO는 작곡가별 전집 녹음에 주력하며, 교향곡 전집, 협주곡 전집, 실내악 전집 등 체계적인 시리즈를 구축했다.
클래식 평론가들은 CPO가 "메이저 음반사들과 경쟁하지 않고 그들이 방치한 영역을 공략한다"는 전략으로 성공했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CPO는 설립 초기부터 스타 연주자가 아닌 레퍼토리 중심으로 접근하며, 음악 자체의 가치에 집중했다. 동시에 녹음 품질은 타협하지 않아, "레퍼토리의 폭이 넓고 녹음 상태가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CPO의 정확한 재무 정보는 공개되지 않지만, 30년 이상의 역사 동안 2,000개 이상의 CD를 제작했다는 점에서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2017년 텔레만 상 수상 당시 자료에 따르면, CPO는 이미 1,000개 이상의 CD 프로덕션을 완료했으며, 지속적으로 신작을 발매하고 있다.
CPO는 중가(中價) 전략을 취하고 있다. 메이저 레이블보다 저렴한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발매된 지 오래된 음반의 할인율이 높다는 특징이 있다.
독일 내수 시장뿐 아니라 국제 시장에서도 CPO의 입지는 견고하다. 아키브뮤직(ArkivMusic) 같은 해외 유통업체에서 1,000개 이상의 CPO 타이틀을 판매하고 있으며, 유로파디스크(Europadisc) 등 전문 유통업체들이 CPO의 전체 카탈로그를 취급한다.
CPO의 레퍼토리 전략은 세 가지 축으로 요약된다. 첫째, 주요 작곡가의 희귀 작품들이다. 게시한 사진 속의 베토벤 극음악(Die Ruinen von Athen, Konig Stephan, Die Geschopfe des Prometheus), 바흐의 덜 알려진 칸타타, 헨델의 초기 오페라 등이 여기 포함된다.
둘째, 잊혀진 거장들의 재발견이다. CPO가 집중한 작곡가들을 보면 그 범위가 압도적이다:
바로크/고전파: 게오르크 필립 텔레만(Georg Philipp Telemann)의 방대한 작품들 - CPO는 텔레만 녹음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며, 2017년 마그데부르크 시로부터 텔레만 상을 수상했다. 심사위원회는 "현재 CPO만큼 풍부하고 지속적이며 높은 품질로 텔레만 작품을 발표하는 레이블은 없다"고 평가했다.
낭만파: 루이 슈포어(Louis Spohr)의 교향곡 전집, 페르디난트 리스(Ferdinand Ries)의 작품들, 요한 미하엘 하이든(Johann Michael Haydn)의 교향곡, 루이제 파랑크(Louise Farrenc)의 관현악 및 실내악 작품, 리하르트 베츠(Richard Wetz)의 교향곡과 레퀴엠.
후기 낭만파/20세기 초: 한스 피츠너(Hans Pfitzner), 에밀 니콜라우스 폰 레츠니첵(Emil Nikolaus von Reznicek),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Erich Wolfgang Korngold), 프란츠 레하르(Franz Lehar) - 레하르의 오페레타들을 집중 녹음.
20세기: 파울 힌데미트(Paul Hindemith)의 대규모 작품 에디션, 막스 레거(Max Reger), 에곤 벨레스(Egon Wellesz), 쿠르트 아테르베르크(Kurt Atterberg), 아울리스 살리넨(Aulis Sallinen), 펠릭스 보이르쉬(Felix Woyrsch), 알란 페테르손(Allan Pettersson).
셋째, 국가별/지역별 음악 발굴이다. '한자 도시의 음악(Musik der Hansestadte)' 시리즈는 슈트랄준트, 단치히, 마그데부르크 등 한자동맹 도시들의 음악 유산을 체계적으로 조명했다.
CPO는 또한 현대 작곡가들과도 협력했다. 드보르자크의 초기 작품, 샤를 구노의 잘 알려지지 않은 오페라 'La Nonne Sanglante', 조지 에네스쿠의 피아노 사중주 등 메이저 레이블이 외면한 작품들을 세계 초연 녹음으로 발매했다.
2015-2016년 카탈로그 기준으로 CPO는 이미 수백 명의 작곡가들의 작품을 녹음했으며, 현재까지 2,000개 이상의 CD를 발매했다. 연간 30-50개의 신작을 꾸준히 발표하며, 각 작곡가별로 체계적인 전집 시리즈를 완성해가고 있다.
CPO는 메이저 레이블처럼 스타 연주자에 의존하지 않고, 실력 있는 중견 연주자들과 앙상블을 발굴해 장기적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이는 녹음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높은 품질을 유지하는 전략이었다.
대표적 협력 오케스트라로는 오스나브뤼커 심포니 오케스트라(Osnabrucker Symphonie-Orchester), 네덜란드 심포니 오케스트라, 라이프치히 현악 사중주단(Leipziger Streichquartett), 라 스타지오네(La Stagione - 고음악 앙상블) 등이 있다. 특히 라 스타지오네는 텔레만, C.P.E. 바흐 등 바로크 레퍼토리에서 CPO와 광범위한 녹음을 남겼다.
지휘자로는 크리스티안 시모니스(Christian Simonis)가 CPO의 대표적 파트너다. 그는 빈 무곡 작곡가들(요한 슈트라우스 2세, 요제프 란너 등)의 희귀 작품들을 CPO에서 녹음하며 명성을 쌓았다. 랄프 바이커트(Ralf Weikert), 만프레드 코르데스(Manfred Cordes - 한자 도시 음악 시리즈), 울프 슈르머(Ulf Schirmer) 등도 CPO의 주요 협력자들이다.
마르쿠스 보쉬(Marcus Bosch)는 CPO를 통해 국제적 명성을 얻은 대표적 사례다. 그는 2010년 고향인 하이덴하임의 오페라 페스티벌(Opernfestspiele Heidenheim)의 예술감독으로 취임하며 페스티벌 전속 오케스트라인 카펠라 아퀼레이아(Cappella Aquileia)를 창단했다. 이 앙상블과 함께 CPO에서 초기 베르디 오페라들, 베토벤 극음악, 슈만 교향곡 전집을 녹음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세계적인 클래식 전문잡지 그라모폰은 보쉬의 베토벤 녹음을 "레퍼런스 녹음(reference recordings)"으로 평가했으며, 2024년 1월호에서 그를 '현재 10대 브루크너 지휘자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보쉬는 2021년 '메데아' 녹음으로 오푸스 클래식(Opus Klassik) 상을 수상했으며,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녹음(레나 노이다우어와 협연)은 피찌카토 슈퍼소닉 어워드(Pizzicato Supersonic Award)를 받았다.
CPO의 미래는 몇 가지 과제와 기회를 동시에 안고 있다. 긍정적 측면에서는,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발굴의 즐거움(joy of discovery)"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스트리밍 시대에도 틈새 레퍼토리는 여전히 수요가 있으며, CPO의 방대한 카탈로그는 독보적 자산이다.
디지털 전환도 CPO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물리적 CD 시장이 축소되는 가운데, CPO는 JPC의 디지털 인프라를 활용해 스트리밍 플랫폼에 효과적으로 진출할 수 있다. 실제로 스포티파이, 애플 뮤직, 낙소스 Music Library 등에서 CPO의 광범위한 카탈로그를 이용할 수 있다.
경쟁 환경도 변화하고 있다. 낙소스, BIS, 샨도스(Chandos), 하이페리온(Hyperion) 등 다른 독립 레이블들도 틈새 레퍼토리를 적극 발굴하고 있다. CPO는 텔레만 같은 특정 작곡가에서의 독보적 위치를 강화하는 한편, 새로운 발굴 영역을 계속 개척해야 한다.
사진 속의 세 음반은 모두 마르쿠스 보쉬가 지휘한 베토벤의 극음악(theatre music)을 수록하고 있다. 베토벤은 생애 동안 여러 연극 작품을 위한 부수음악을 작곡했는데, 이들은 교향곡이나 협주곡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CPO의 이 시리즈는 바로 이러한 틈새를 메우는 프로젝트다.
'Die Ruinen von Athen (아테네의 폐허)'는 1811년 페스트(현재의 부다페스트)에 새로 지어진 독일 극장 개관을 기념하기 위해 작곡됐다. 아우구스트 폰 코체부(August von Kotzebue)의 대본에 베토벤이 서곡과 8개의 음악 번호를 작곡했다. 신화적 배경 속에서 아테네가 폐허에서 부활한다는 알레고리적 내용이다.
음악적으로는 터키 행진곡풍의 경쾌한 선율과 합창이 특징적이며, 나중에 베토벤은 이 작품의 일부를 '헌정식 서곡(Die Weihe des Hauses, Op. 124)'로 개작했다. 음반에는 또한 '부수음악과 희극적 노래(Meeresstille und gluckliche Fahrt - 고요한 바다와 즐거운 항해)'도 수록되어 있는데, 이는 괴테의 두 시에 기반한 작품이다.
체코 필하모닉 합창단(Czech Philharmonic Choir of Brno)이 참여해 합창 부분을 소화했다. 이 합창단은 체코 브르노에 본거지를 둔 전문 합창단으로, 오라토리오와 오페라 합창에서 탁월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Konig Stephan(슈테판 왕)'은 '아테네의 폐허'와 함께 1811년 같은 극장 개관식을 위해 작곡된 또 다른 부수음악이다. 헝가리 최초의 왕인 성 슈테판을 다룬 코체부의 축제극을 위한 것으로, 서곡과 9개의 음악 번호로 구성됐다. 헝가리적 색채가 강하며, 웅장한 합창과 행진곡 스타일이 특징이다.
이 음반에는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 '피델리오' 관련 서곡들도 수록됐다. 레오노레 서곡 1번, 2번, 3번과 피델리오 서곡이 모두 포함되어 있어, 베토벤이 이 오페라를 위해 어떻게 네 가지 다른 서곡을 작곡했는지 비교할 수 있다. 레오노레 서곡 3번은 독립적인 연주회용 작품으로도 자주 연주되는 명곡이다.
바리톤 베른트 타우버(Bernd Tauber)가 솔로이스트로 참여했다. 타우버는 독일 오페라와 콘서트 무대에서 활약하는 중견 바리톤으로, 베토벤과 독일 낭만파 레퍼토리에서 정평이 나 있다.
'Die Geschopfe des Prometheus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은 1801년 빈 궁정 극장에서 초연된 발레 음악으로, 베토벤의 유일한 완전한 발레 작품이다. 안무가 살바토레 비가노(Salvatore Vigano)를 위해 작곡했으며, 서곡과 16개의 음악 번호로 구성됐다. 프로메테우스가 진흙으로 두 인간을 만들고 뮤즈와 아폴론의 도움으로 그들에게 예술과 학문을 가르친다는 계몽주의적 내용이다.
음악적으로는 고전주의 발레의 정형을 보여주며, 우아한 춤곡들과 극적인 장면들이 교차한다. 특히 피날레 주제는 베토벤이 나중에 '에로이카 교향곡' 4악장의 변주곡 주제로 재사용했고, '에로이카 변주곡(Op. 35)'에서도 사용했다. 이 때문에 음악학자들은 '프로메테우스'를 베토벤의 중기 작품으로 가는 전환점으로 평가한다.
카펠라 아퀼레이아가 연주를 맡았다. 이 앙상블은 보쉬가 2010년 하이덴하임 오페라 페스티벌을 위해 창단한 정예 오케스트라로, 최정상급 연주자들로 구성됐다. 앙상블 이름은 하이덴하임의 고대 로마 이름인 '아퀼레이아'에서 따왔다.
카펠라 아퀼레이아의 특징은 실내 오케스트라 규모로 날렵하고 투명한 사운드를 구사하면서도, 필요할 때는 풍부한 음향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그들의 초기 베르디 오페라 녹음 시리즈는 '날씬한 베르디 사운드(slender Verdi sound)'로 찬사를 받았으며, 리듬감과 솔리스트 지원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독일-브라질-이탈리아 혈통의 보쉬는 독일 카펠마이스터(Kapellmeister) 전통의 정통 경력을 쌓았다. 비스바덴, 자르브뤼켄, 할레 국립극장을 거쳐 2002-2012년 아헨 시 음악총감독(GMD), 2011-2018년 뉘른베르크 국립극장 음악총감독을 역임했다. 현재는 북독일 필하모닉 로스톡의 수석 지휘자이며, 2016년부터 뮌헨 음악대학 지휘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보쉬의 지휘 스타일은 '고전적 명료함과 깊이의 새로운 기준(a new benchmark of classical clarity and depth)'으로 묘사된다. 그는 110개 이상의 오페라와 음악극 작품을 지휘했으며, 바그너의 링 사이클과 베를리오즈의 '트로이 사람들' 같은 대작들도 소화했다.
베토벤 극음악 프로젝트에서 보쉬는 이들 작품이 단순한 부수음악이 아니라 베토벤의 극적 상상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들임을 입증했다. 그라모폰이 이들 녹음을 '레퍼런스 녹음'으로 평가한 이유는 보쉬가 각 작품의 극적 문맥을 살리면서도 음악적 완결성을 구현했기 때문이다.
보쉬는 빠른 템포와 균형 잡힌 성부 대칭, 탁월한 다이내믹 조절로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그의 해석은 극적이면서도 과장되지 않으며,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솔리스트들을 유기적으로 통합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특히 베토벤의 리듬적 추진력과 화성적 긴장감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서정적 순간들에서는 섬세한 뉘앙스를 잃지 않는다.
이 세 음반은 CPO의 철학을 완벽하게 구현한 프로젝트다. 메이저 레이블들이 외면한 레퍼토리를 발굴하고, 실력 있는 중견 지휘자 및 앙상블과 협력해 레퍼런스급 녹음을 만들어냈다. 이는 CPO가 단순히 틈새를 메우는 것을 넘어, 음악사의 공백을 재조명하고 청중에게 새로운 발견의 기쁨을 선사하는 레이블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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