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음반] 르네상스 거장 팔레스트리나 '아가서', 500년 시공을 넘어 영혼을 울리다

이주상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5-12-14 09:38:23

반종교개혁 시대 헌신적 사랑 담은 모테트 29곡 음반..."교회음악의 완벽한 균형미" 팔레스트리나의 '아가서(Cantica Salomonis)'

[K라이프저니 | 이여름 기자] 16세기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교회음악 작곡가 조반니 피에를루이지 다 팔레스트리나의 '아가서(Cantica Salomonis)'가 뮌헨 팔레스트리나 앙상블의 연주로 새롭게 태어났다. 

클래식 레이블 낙소스(Naxos)가 발매한 이 음반은 1584년 로마에서 출판된 모테트 29곡과 그레고리오 성가를 담아 르네상스 교회음악의 정수를 보여준다.
 
팔레스트리나(1525/6-1594)는 르네상스 후기 가장 영향력 있는 작곡가로, '교회음악의 구원자'로 불린다. 트렌트 공의회(1545-1563) 이후 가톨릭 교회가 복잡한 다성음악을 금지하려 했을 때, 그의 청명하고 균형 잡힌 음악이 교회음악의 모범으로 제시되며 다성음악 전통을 지켜냈다.

로마 교황청 시스티나 성당 합창단의 단원이자 성 베드로 대성당의 악장을 역임한 팔레스트리나는 생애 동안 105곡의 미사곡과 수백 곡의 모테트를 작곡했다. 그의 음악은 가사의 명료한 전달과 순수한 화성의 아름다움을 완벽하게 결합해 후대 작곡가들에게 교과서가 됐다.
 
'아가서 모테트집 제4권'은 1584년 교황 그레고리 13세에게 헌정되어 로마에서 출판됐다. 종교적 격변과 반종교개혁의 시대에 작곡된 이 29곡의 모테트는 구약성서 '아가서(Song of Songs)'를 텍스트로 삼아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적 사랑을 경건하면서도 기쁨에 찬 음악으로 표현했다.

아가서는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을 노래한 시로, 전통적으로 그리스도와 교회, 또는 영혼의 신비로운 결합을 상징하는 알레고리로 해석됐다. 팔레스트리나는 이 텍스트를 통해 관능적이면서도 영적인, 인간적이면서도 신성한 사랑의 이중성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모테트들은 실내악적 정제미와 기쁨이 넘치는 헌신적 음악으로, 복잡한 대위법 기법 속에서도 가사의 의미가 명확하게 전달되는 팔레스트리나 특유의 균형미를 보여준다.
 
뮌헨 팔레스트리나 앙상블은 지휘자 베난츠 슈베르트의 지휘 아래 이 역사적 작품을 탁월하게 재현했다. 2005년과 2012년 독일 뮌헨 대학 부속 여성병원 성당에서 녹음된 이 음반은 바이에른 방송국과의 공동 제작으로 완성됐다.

앙상블은 르네상스 시대 실내 합창의 친밀한 분위기를 살리면서도, 각 성부의 투명한 음색과 정교한 앙상블 균형을 통해 팔레스트리나 음악의 본질을 드러냈다. 특히 그레고리오 성가들을 모테트와 함께 배치해 전례적 맥락을 생생하게 재현했다.

슈베르트의 해석은 과도한 낭만적 감상을 배제하고 르네상스 시대의 순수한 영성을 추구한다. 각 성부가 독립적으로 움직이면서도 하나의 유기적 전체를 이루는 대위법의 아름다움, 불협화음의 절제된 사용을 통한 긴장과 해소, 가사에 따른 섬세한 음색 변화 등이 돋보인다.
 
이 음반은 여러 측면에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첫째, 팔레스트리나의 덜 알려진 걸작을 조명했다는 점이다. 교황 마르첼루스 미사나 '탄식의 노래' 같은 유명곡에 가려져 있던 아가서 모테트집을 완전한 형태로 녹음해 작곡가의 예술세계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했다.

둘째, 16세기 반종교개혁 시대 가톨릭 교회음악의 실체를 보여준다. 트렌트 공의회 이후 교회음악이 어떻게 개혁되고 발전했는지, 신앙과 예술이 어떻게 조화를 이뤘는지를 생생하게 증언한다.

셋째, 그레고리오 성가와 르네상스 다성음악의 연관성을 드러낸다. 단선율 성가와 복잡한 다성 모테트를 함께 수록해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이어지는 서양음악사의 연속성을 보여준다.
 
500년 전 종교적 격변의 시대에 탄생한 팔레스트리나의 '아가서'는 오늘날에도 순수한 아름다움과 깊은 영성으로 청자의 마음을 울린다. 뮌헨 팔레스트리나 앙상블의 헌신적인 연주는 이 불멸의 걸작이 현대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예술임을 증명한다.

한편 표지는 현대 화가 지거 쾨더(Sieger Köder, 1925~2015) 의 그림 '원초와 완성(세부)'을 사용해 사랑과 영성의 주제를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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