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음반] 20세기 중반 황금기의 완벽한 결실, 조지 셸과 클리블랜드의 브람스 교향곡 2번과 3번
이주상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6-01-03 09:12:33
[K라이프저니 | 이여름 기자] 1960년대 중반,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음악사에 길이 남을 녹음이 이루어졌다. 조지 셸(George Szell, 1897-1970)이 이끄는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가 브람스의 교향곡 2번과 3번을 녹음한 이 음반은, 반세기가 넘은 지금까지도 브람스 교향곡 해석의 기준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1965년과 1967년에 걸쳐 녹음된 이 음반은 조지 셸이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를 세계 정상급 악단으로 끌어올린 전성기의 산물이다. 1946년부터 1970년 타계할 때까지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를 이끈 셸은 철저한 독일 전통 음악 교육을 받은 지휘자로, 미국 오케스트라에 유럽의 정통성과 미국적 정밀함을 결합시킨 독보적인 사운드를 구축했다.
이 음반이 녹음된 1960년대는 클래식 음악 녹음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시기였다. 스테레오 녹음이 완전히 자리 잡으면서 오케스트라의 섬세한 음색과 공간감을 포착할 수 있게 되었고, 셸은 이러한 기술적 진보를 최대한 활용했다.
프로듀서 폴 마이어스(Paul Myers)와 함께 작업한 이 녹음은 당시로서는 최고 수준의 음질을 자랑했으며, 1991년 하워드 H. 스콧과 브루스 밀러의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쳐 현대의 청취 환경에서도 그 가치를 잃지 않고 있다.
조지 셸의 브람스 해석은 '건축적 명료함'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브람스 교향곡의 복잡한 대위법적 구조를 투명하게 드러내면서도, 음악의 서정성과 낭만적 감흥을 결코 희생하지 않았다. 교향곡 2번의 1악장에서 셸은 브람스 특유의 전원적 서정성을 강조하되, 템포를 지나치게 늦추지 않고 음악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유지한다.
특히 교향곡 3번의 해석에서 셸의 통찰력이 빛을 발한다. 3악장 '포코 알레그레토'의 유명한 선율을 과도하게 감상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절제된 아름다움 속에서 더 깊은 정서적 울림을 만들어낸다. 이는 감정의 과장 없이도 진정한 감동을 전달할 수 있다는 셸의 음악 철학을 보여준다.
셸의 템포 설정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브람스가 지시한 템포 표시를 존중하면서도, 각 악장의 성격에 따라 유연하게 조절한다. 교향곡 2번 4악장의 '알레그로 콘 스피리토'에서는 활기찬 에너지를 유지하면서도 음악이 경솔해지지 않도록 정밀하게 통제하며, 교향곡 3번 1악장의 '알레그로 콘 브리오'에서는 웅장함과 긴장감을 동시에 구현한다.
셸 시대의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는 '미국의 빈 필하모닉'으로 불렸다. 셸은 악단원 개개인의 기량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면서도,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앙상블을 만들어냈다. 이 음반에서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는 실내악적 정밀함과 대편성 오케스트라의 웅장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현악 섹션의 통일된 음색과 정확한 보잉, 목관악기의 투명한 음색, 금관악기의 절제된 힘, 타악기의 정확한 타이밍 등 모든 섹션이 최고 수준의 연주를 들려준다. 교향곡 2번 2악장의 첼로 선율에서는 깊이 있는 음색과 표현력을, 교향곡 3번 2악장의 목관악기 앙상블에서는 섬세한 색채감을 확인할 수 있다.
셸이 구축한 사운드는 선명하고 명료하면서도 결코 차갑지 않다. 각 성부가 뚜렷하게 들리면서도 전체적인 조화를 잃지 않는 균형감은, 수십 년간의 철저한 훈련과 음악적 교감의 결과다. 이는 단순한 기교를 넘어선,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비롯된 예술적 성취다.
브람스의 교향곡 2번(작품 73)은 1877년 여름, 오스트리아 남부의 휴양지 뵈르터제에서 불과 네 달 만에 완성되었다. 1번 교향곡 완성에 21년이 걸렸던 것과 대조적으로 빠르게 작곡된 이 작품은 브람스의 교향곡 중 가장 밝고 서정적인 성격을 지닌다. '브람스의 전원 교향곡'으로도 불리는 이 곡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 내면의 평화로움을 노래한다.
하지만 이 작품의 밝음은 단순한 낙천주의가 아니다. 브람스는 1악장부터 장조와 단조를 교묘하게 뒤섞으며 빛과 그림자의 미묘한 대비를 만들어낸다. 2악장의 아다지오는 깊은 명상적 분위기 속에서 인간 존재의 고독과 위안을 동시에 담아내며, 3악장의 우아한 춤곡 풍 악장 역시 순수한 기쁨만이 아닌 복합적 정서를 내포한다. 4악장은 승리의 환희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는 성취의 기쁨과 함께 삶에 대한 진지한 긍정이 담겨 있다.
교향곡 3번(작품 90)은 1883년 여름 라인강변의 비스바덴에서 완성되었다. 50세의 브람스가 작곡한 이 작품은 그의 교향곡 중 가장 간결하고 응축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전체 연주 시간이 35분 정도로 네 개의 교향곡 중 가장 짧지만, 음악적 밀도는 가장 높다.
3번 교향곡의 핵심은 'F-A♭-F'라는 세 음으로 이루어진 모토다. 이는 브람스의 모토 "Frei aber froh(자유롭지만 기쁘게)"의 첫 글자를 음명으로 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모토는 전 악장에 걸쳐 다양하게 변형되며 작품의 통일성을 부여한다. 1악장의 영웅적이면서도 우울한 분위기, 2악장의 목가적 서정성, 3악장의 애절한 아름다움, 그리고 4악장의 비극적 격정은 중년의 브람스가 겪은 내면의 갈등과 성찰을 반영한다.
특히 3악장은 브람스가 쓴 가장 아름다운 선율 중 하나로 꼽힌다. 단순해 보이는 선율 속에 깊은 슬픔과 체념, 그리고 초월적 평화가 공존한다. 이는 브람스가 추구한 고전적 형식미와 낭만적 감수성의 완벽한 결합을 보여준다. 4악장은 1악장의 재료를 변형하여 순환적 구조를 만들며, 조용히 사라지는 엔딩은 삶의 무상함과 수용을 암시한다.
조지 셸과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브람스 교향곡 녹음은 20세기 중반 녹음 예술의 정점을 보여주는 동시에, 브람스 해석의 하나의 모범을 제시한다. 이 음반은 과장 없는 진실함, 구조적 명료함, 그리고 깊은 음악적 통찰이 어우러진 연주로, 후대의 수많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에게 영감을 주었다.
반세기가 넘은 녹음이지만,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쳐 현대의 청취자들에게도 생생한 감동을 전달하고 있다. 브람스의 음악이 추구한 고전적 균형미와 낭만적 깊이, 그리고 조지 셸이 구현한 정밀함과 진정성은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지닌다. 이 음반은 단순한 역사적 기록물이 아닌,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예술적 성취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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