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음반] 스티븐 허프, 앨범 'VIDA BREVE(덧없는 인생)'로 피아노 레퍼토리의 정수 선보여

이주상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5-11-26 07:10:57

스티븐 허프(Stephen Hough)의 'VIDA BREVE(덧없는 인생)' 음반 표지

[K라이프저니 | 이여름 기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스티븐 허프(Stephen Hough)가 영국을 대표하는 클래식 레이블 하이페리온을 통해 발매한 앨범 'VIDA BREVE(덧없는 인생)'은 바로크부터 현대에 이르는 피아노 음악의 정수를 담은 앨범으로 허프의 탁월한 음악적 통찰력과 기교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앨범은 바흐/부조니의 '샤콘느'로 시작한다. 원곡은 바이올린 독주를 위한 작품이지만, 페루초 부조니가 피아노로 편곡하면서 20세기 피아노 레퍼토리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자리잡았다. 이 곡은 바로크 시대의 대위법적 구조를 낭만주의적 피아니즘으로 재해석한 걸작이다.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2번 내림나장조'는 장송 행진곡으로 유명한 3악장을 포함한 작품으로, 낭만주의 피아노 음악의 정점을 보여준다. 죽음과 비극적 정서를 다루면서도 시적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이 소나타는 쇼팽의 성숙한 작곡 기법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리스트의 '장송곡'(Funerailles)은 1849년 헝가리 혁명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작곡된 곡으로, 극적인 서사와 화려한 기교가 결합된 낭만주의 피아노 음악의 백미다. 무조성 바가텔(Bagatelle sans tonalite)은 리스트가 20세기 음악 언어를 예견한 실험적 작품으로 음악사적 의미가 크다.
 
부조니의 '카르멘 환상곡'은 비제의 오페라를 피아노 독주곡으로 재창조한 작품이다. 19세기 말 피아니스트 작곡가들의 편곡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부조니 특유의 지적이고 구조적인 접근이 돋보인다.

앨범의 핵심은 허프 자신의 작품 '피아노 소나타 4번 - 비다 브레베'다. 현대 피아니스트 작곡가로서 허프는 전통과 혁신을 조화시키는 독자적 음악 언어를 구축해왔다. 이 소나타는 짧은 생, 덧없는 인생(vida breve)에 대한 성찰을 담아낸 작품으로, 앨범 전체의 주제와 맞닿아 있다.

특히 한국 전통 민요 '아리랑'의 편곡과 바흐의 전주곡을 기반으로 한 구노의 '아베 마리아'를 허프가 재편곡한 명상곡은 동서양의 음악적 전통을 아우르는 보편적 메시지를 전한다.
 
스티븐 허프는 현존하는 가장 완성도 높은 피아니스트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단순히 뛰어난 테크닉을 넘어, 작품의 역사적 맥락과 미학적 의미를 깊이 이해하고 해석하는 지적 연주자로 정평이 나 있다.

이번 앨범에서도 허프는 각 작품의 스타일과 시대적 특성을 존중하면서도 자신만의 음악적 개성을 잃지 않는다. 바흐/부조니의 장엄함, 쇼팽의 시적 서정성, 리스트의 극적 강렬함을 설득력 있게 구현하며, 자작곡에서는 작곡가로서의 진정성을 드러낸다.

특히 '죽음'과 '삶의 덧없음'이라는 주제로 관통되는 앨범의 프로그래밍은 허프의 예술적 통찰력을 보여준다. 바로크부터 현대까지, 서양 클래식부터 한국 민요까지 아우르는 광범위한 레퍼토리를 하나의 일관된 서사로 엮어내는 능력은 허프만의 강점이다.

'VIDA BREVE'는 단순한 연주 음반을 넘어, 피아노 음악의 역사와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을 담은 예술적 진술이다. 스티븐 허프는 이 앨범을 통해 연주자이자 작곡가, 그리고 지적 예술가로서의 면모를 완벽하게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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