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 프랑스 '시적 현실주의'의 거장, 쥘 카바이에스의 'Fenetre a Cannes(깐느의 창문)'
이주상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5-12-24 07:07:32
[K라이프저니 | 이여름 기자] 쥘 카바이에스(Jean Jules Louis Cavailles, 1901-1977)는 20세기 프랑스 회화사에서 '시적 현실주의(La Realite Poetique)'의 대표 주자로, 추상화가 지배하던 시대에 구상회화의 서정성과 아름다움을 끝까지 수호한 화가다.
1901년 6월 20일 프랑스 남부 카르모(Carmaux)의 타른 지역에서 태어난 카바이에스는 처음에는 제도기사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그의 재능을 알아본 페르 아르티그(Pere Artigue)-점묘파 화가 앙리 마르탱의 친구-의 격려로 25세에 파리로 상경하여 본격적으로 미술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1925년 아카데미 쥘리앙에 입학한 카바이에스는 학비를 벌기 위해 아내 로즈와 함께 작은 식료품 가게를 운영했다. 1928년부터 살롱 데 아르티스트 프랑세, 살롱 데 앙데팡당, 살롱 도톤 등 파리의 주요 살롱에 꾸준히 출품하며 화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36년에는 명망 있는 블루멘탈 장학금을 받았고, 1937년 만국박람회에서는 랑그독 파빌리온 장식을 의뢰받는 영예를 안았다.
카바이에스는 레몽 르그엘트, 앙드레 플랑송 등과 함께 '시적 현실주의' 그룹을 결성했다. 이들은 전후 추상화의 물결 속에서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되, 그 안에 담긴 자연의 아름다움과 삶의 기쁨을 찬미하고자 했다. 후기인상주의의 이상을 계승하면서도 야수파의 강렬한 색채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해석했다.
'Fenetre a Cannes(깐느의 창문)'(캔버스에 유채, 73 x 92 cm)는 카바이에스가 즐겨 그린 '창을 통해 본 풍경' 연작의 일부다. 작품은 실내와 실외를 동시에 포착하는 구성으로, 화가의 대표적 주제인 꽃과 항구 풍경, 지중해의 햇살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화면 중앙에는 갖가지 색상의 꽃들이 담긴 화병이 배치되어 있다. 분홍, 붉은색, 보라색 꽃들이 자유분방한 붓터치로 생동감 있게 표현되었으며, 테이블 위에도 꽃들이 흩어져 있다. 전경 좌우에는 청록색과 오렌지색 커튼이 대조를 이루며 화면에 깊이를 더한다.
창밖으로는 깐느의 항구가 펼쳐진다. 파란 바다 위에 정박한 요트들과 원경이 간략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하늘은 밝은 색조로 처리되었다. 이는 지중해 특유의 강렬한 햇살과 대기의 투명함을 표현한 것이다.
카바이에스의 화법은 '절제된 야수주의(toned-down Fauvism)'로 규정된다. 초기 야수파 화가들이 추구한 강렬함과 역동성보다는, 순수 색채의 병치를 통한 삶의 기쁨(joie de vivre)의 직접적 표현에 집중했다. 그는 들라크루아의 말을 인용하며 "회화는 눈을 위한 축제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색채 처리 방식이다. 그는 팔레트에서 색을 섞지 않고 순수한 색채를 캔버스에 직접 병치함으로써, 관람자의 눈에서 색이 혼합되도록 유도했다. 이는 인상주의와 점묘파의 광학 이론을 계승하면서도, 보다 대담하고 감각적인 색면 분할로 발전시킨 것이다. 분홍색 옆에 청록색을, 오렌지색 옆에 보라색을 배치하여 색채의 진동과 빛의 효과를 극대화했다.
붓놀림은 자유롭고 즉흥적이다. 유화와 구아슈, 파스텔을 자유롭게 혼용하며 각 재료의 특성을 살렸다. 꽃잎은 두툼한 임파스토로, 하늘과 바다는 얇고 투명한 레이어로 처리하여 질감의 대비를 만들어냈다.
카바이예스와 '시적 현실주의' 그룹의 예술적 의의는 단순히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다는 데 있지 않다. 1940~1950년대 프랑스 화단이 앵포르멜과 추상표현주의로 급격히 기울던 시기, 이들은 구상회화의 가치를 지키며 "현실에는 여전히 그릴 만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외쳤다.
카바이에스는 창가에서 본 햇살 가득한 항구, 무성한 시골 풍경, 화려한 꽃다발, 실내의 누드 여인, 심지어 랍스터까지-일상의 평범한 대상들을 통해 삶의 즐거움을 찬미했다. 그의 그림 속 대상들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 "기억의 저장소처럼 수집된 사물들"이며, 부드러운 빛으로 물든 순수한 색채를 통해 생명력을 얻었다.
이러한 태도는 전쟁으로 피폐해진 유럽에서 인간성과 아름다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려는 노력이었다. 추상화가 철학적 심오함을 추구할 때, 카바이에스는 "눈을 위한 축제"를 통해 관람자에게 직접적인 시각적 쾌락과 정서적 위안을 제공했다. 미술평론가들은 이를 "서정적 인본주의"로 평가한다.
카바이에스는 또한 뛰어난 무대미술가이기도 했다. 파리의 주요 극장에서 80여 편의 오페라와 발레 무대를 디자인했으며, 1953년 프랑스 국철(SNCF)을 위해 제작한 여행 포스터는 코트다쥐르의 낭만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그의 무대디자인에서 보여준 대담한 색채 감각과 공간 구성 능력은 회화 작품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그의 작품은 파리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알비, 마르세유, 몽펠리에, 툴루즈 시립미술관, 그리고 시카고, 헬싱키, 텔아비브, 취리히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2008년 가야크 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으며, 베르트랑 드 비비에스의 전기 '쥘 카바이에스 - 시적 현실의 화가'가 출간되어 재평가의 계기가 되었다.
한 갤러리 관계자는 "카바이에스의 작품은 투자 가치도 있지만, 무엇보다 집안에 걸어두고 매일 즐길 수 있는 '살아있는 그림'"이라며 "지중해의 햇살과 꽃향기가 느껴지는 그의 캔버스는 일상에 기쁨을 선사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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