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 러시아 인상주의의 거장, 콘스탄틴 코로빈의 'View of the River' (1932)
이주상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5-12-24 06:30:48
[K라이프저니 | 이여름 기자] 콘스탄틴 알렉세예비치 코로빈(Konstantin Alexeevich Korovin, 1861-1939)은 러시아 인상주의를 개척한 선구자이자 무대미술 혁신가로, 프랑스 인상주의를 러시아에 가장 먼저 도입한 화가다. 1861년 모스크바의 부유한 상인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예술적 환경에서 자랐으며, 형 세르게이 역시 저명한 사실주의 화가였다.
1875년 14세에 모스크바 회화조각건축학교에 입학한 코로빈은 바실리 페로프, 알렉세이 사브라소프, 바실리 폴레노프 등 거장들의 지도를 받았다. 특히 폴레노프는 파리에서 돌아온 직후였기에 프랑스 인상주의의 새로운 기법을 러시아에 전했고, 코로빈은 이를 적극 수용했다.
1885년 파리를 처음 방문한 코로빈은 인상파 작품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후일 이렇게 회고했다. "파리는 나에게 충격이었다. 인상주의자들... 그들에게서 모스크바에서 질책받던 모든 것을 발견했다." 이 경험은 그의 예술 세계를 완전히 변화시켰으며, 귀국 후 그는 러시아 화단에 인상주의 기법을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코로빈은 발렌틴 세로프, 이삭 레비탄과 평생 우정을 유지했으며, 1890년대 '미르 이스쿠스트바(예술세계)' 그룹의 회원이 되었다. 그는 사바 마몬토프의 아브람체보 서클과 교류하며 빅토르 바스네초프, 일리야 레핀 등 당대 거장들과 협업했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러시아 중앙아시아관을 디자인한 공로로 프랑스 레종 도뇌르 훈장을 수여받았으며, 1905년에는 회화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다.
무대미술가로서의 업적도 탁월했다. 마린스키 극장과 볼쇼이 극장에서 80편의 오페라, 37편의 발레, 17편의 연극 무대를 디자인했으며,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와 협업하며 전통적 무대 장식을 넘어 공연의 전반적 정서를 전달하는 '무드 장식'을 창안했다. 20세기 초를 평정했던 오페라 가수 표도르 샬리아핀은 그를 '회화의 파가니니'라 칭송했다.
1923년 건강 악화와 두 발이 절단된 아들 알렉세이의 치료를 위해 교육인민위원 아나톨리 루나차르스키의 권유로 파리로 이주한 코로빈은, 이것이 영원한 망명이 될 줄 몰랐다. 대규모 전시를 계획했으나 러시아에서 보낸 작품들이 모두 도난당하는 비극을 겪었고, 일순간 무일푼이 되었다.
1932년 작 'View of the River'(캔버스에 유채, 49.8 x 60.3 cm)는 코로빈의 파리 망명 시기 중반에 제작된 작품으로, 경제적 궁핍 속에서도 그가 예술적 역량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시기 그는 생계를 위해 '러시아의 겨울' 풍경과 '파리의 대로' 연작을 끊임없이 제작했다.
작품은 강을 가로지르는 다연 아치교와 그 주변의 도시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화면 전경에는 그림자 속의 광장과 산책하는 사람들이 배치되어 있으며, 중경의 교량은 회색과 청록색 톤으로 처리되어 강물과 조화를 이룬다. 화면 좌측에는 건물의 외벽과 간판이 보이며, 노란색과 오렌지색 포인트가 화면에 활력을 더한다.
코로빈 특유의 인상주의적 터치가 두드러지는 작품으로, 빠르고 자유로운 붓놀림으로 대기의 질감과 빛의 변화를 포착했다. 하늘은 연녹색에서 청록색, 회색으로 변화하는 복잡한 색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구름의 형태는 다소 거칠고 추상적으로 처리되었다. 이는 1930년대 그의 화풍이 초기보다 더욱 자유분방하고 표현주의적 요소가 가미되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강물의 표현이 인상적이다. 청록색과 남색을 다층적으로 배치하여 물의 깊이와 흐름을 암시하고, 교량이 강물에 반사되는 모습을 간략하면서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전경의 인물들은 작은 붓터치로 신속하게 처리되어 있어, 도시의 일상적 활기를 즉흥적으로 포착한 스케치적 성격을 보여준다.
색채 팔레트는 그가 평생 추구한 '빛과 공기를 캔버스로 옮기는' 목표를 반영한다. 회색빛 도는 차가운 톤이 지배적이지만, 건물의 황금빛 조명과 강물의 청록색이 조화를 이루며 전체적으로 우울하지 않은 도시의 분위기를 전달한다.
이 작품은 단순한 도시 풍경화를 넘어 망명 예술가의 복잡한 정서를 담고 있다. 1930년대 초 코로빈은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었다. 영화의 등장으로 무대미술 의뢰가 급감했고, 인상주의는 더 이상 파리 화단의 주류가 아니었다. 그는 골판지에 수채화와 유화를 그리며 생계를 유지했으며, 조국 러시아에 대한 향수에 시달렸다.
한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토로했다. "나는 오호티노를 계속 떠올린다. 그런 자연, 숲, 강... 그곳은 낙원이 아니었을까?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정말 모르겠다. 나는 열심히 일했고 사람들에게 죄를 짓지 않았다." 이러한 향수는 그의 파리 시기 작품에서 향토적 모티프와 소박한 진정성으로 표현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빈은 인상주의에 대한 신념을 잃지 않았다. 러시아 인상주의의 가장 순수한 형태를 보여주는 작품들을 계속 제작했으며, 1934년 비시의 카지노 극장에서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오페라 '황금 수탉'의 무대디자인을 맡아 호평을 받는 등 말년까지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코로빈의 예술은 러시아 모더니즘의 발전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그는 빛과 색채를 통한 감정 전달이라는 인상주의의 핵심 원리를 러시아 풍경과 주제에 성공적으로 적용했다. 1950년대 후반 러시아 화가들의 예술적 사고를 해방시킨 영감의 원천이 되었으며, 그의 풍경화, 정물화, 초상화는 러시아 문화와 국가적 기억의 불가분한 부분으로 자리잡았다.
코로빈은 국제 경매 시장에서 러시아 인상주의 작가 중 가장 안정적이고 높은 가격을 형성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작품은 소더비, 크리스티 등 주요 경매사에서 꾸준히 거래되며, 역사적으로 동시대 러시아 화가들을 능가하는 성과를 보여왔다.
경매 최고가는 2005년 소더비 런던에서 낙찰된 'Gurzuf in Summer'로 190만 6984달러에 거래되었다. 2007년 6월 소더비 런던 경매에서는 6점의 코로빈 작품이 출품되었는데, 5점이 추정가를 크게 상회하는 가격에 낙찰되었다. 1921년 작 'Still Life with Roses and Fruits'는 추정가 10만~15만 파운드를 훨씬 넘어 80만 4000파운드(약 160만 달러)에 판매되었고, 같은 해 작 'Still Life of Flowers'는 63만 6000파운드(약 130만 달러)에, 1922년 작 'View of Monaco'는 36만 7200파운드(약 72만 5000달러)에 낙찰되었다.
코로빈 작품의 시장 가치는 여러 요인에 기인한다. 첫째, 그는 러시아 인상주의의 창시자로서 미술사적 중요성이 크다. 둘째, 프랑스 인상주의와 러시아 전통을 성공적으로 결합한 독창적 화풍이 동서양 컬렉터 모두에게 어필한다. 셋째, 망명 예술가로서의 서사가 작품에 감정적 깊이를 더한다. 넷째,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러시아 국립미술관 등 주요 미술관이 그의 작품을 대거 소장하고 있어 미술사적 정전성이 확립되어 있다.
미술 시장 전문가들은 코로빈의 작품을 "안정적 장기 가치를 지닌 동시에 헤드라인급 정점을 보이는" 투자처로 평가한다. 러시아 미술 컬렉션을 구축하는 미국과 유럽의 컬렉터들에게 코로빈 작품은 레핀, 레비탄, 세로프 등 황금시대 러시아 화가들이나 로에리히, 페친 등 망명 예술가들과 함께 핵심 작품으로 간주된다. 그의 캔버스를 소유하는 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인상주의 그림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격동의 역사를 견뎌낸 러시아 문화사의 한 조각을 소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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