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음반] 저가에서 세계 최대로, 낙소스(NAXOS)의 성공 신화!

이주상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5-12-22 02:50:29

클라우스 하이만의 철학과 혁신으로 클래식 음반 산업 재편한 홍콩 기반 레이블
창업주의 철학과 저가 레이블에서 최고 레이블로 성장한 비결
페트렌코와 길트부르크의 베토벤 황제 피아노 협주곡(2022년)과 카펠라 이스트로폴리타나의 바로크 음악 명곡 모음집(1987년). 낙소스의 성장을 이야기하듯, 표지의 격변이 인상적이다. 이여름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K라이프저니 | 이여름 기자] 1987년 홍콩에서 탄생한 낙소스(NAXOS)는 클래식 음반 산업의 판도를 완전히 바꾼 혁명적 레이블이다. 창업주 클라우스 하이만(Klaus Heymann)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출신으로, 로마 문학과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졸업하지 못하고 테니스 강사와 신문 판매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인물이었다. 1967년 홍콩으로 건너간 그는 베트남전쟁 미군을 상대로 카메라와 오디오 기기를 통신판매하며 자본을 축적했고, 1974년 홍콩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창단에 참여하면서 클래식 음악 산업에 발을 들였다.

낙소스의 탄생 배경은 독특하다. 1980년대 후반, 하이만은 한국의 한 업자로부터 방문판매용 클래식 전집 제작을 주문받았다. 그는 방송용 녹음과 동유럽 무명 악단들의 테이프를 저렴하게 구입해 CD를 제작했지만, 의뢰 업자가 도산하면서 대량의 재고를 떠안게 됐다. 이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됐다. 하이만은 1987년 '낙소스'라는 레이블을 론칭하며 본격적인 클래식 시장 공략에 나섰다.

낙소스의 성공 전략은 명확했다. 첫째, 철저한 저가 정책이었다. 당시 메이저 레이블들이 스타 마케팅으로 고가 정책을 펼칠 때, 낙소스는 신보 CD 한 장을 4,300원에 판매하는 파격적인 가격 정책을 시행했다. 둘째, 레퍼토리 중심 전략이었다. 거액의 아티스트 프로모션 대신 음악 자체에 투자하며, 방대한 레퍼토리 확보에 주력했다. 셋째, 최첨단 녹음 기술 도입이었다. 저가임에도 불구하고 음질만큼은 타협하지 않았다.

낙소스는 '문어발식 방대한 레퍼토리'와 '미의식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앨범 커버'로 출발했지만, 꾸준한 품질 개선과 혁신적 레퍼토리 개발로 2005년 '올해의 음반사(Label of the Year)'로 선정되며 메이저 반열에 올랐다. 2023년에는 국제 클래식 음악 어워드(ICMA)에서 다시 한번 '올해의 음반사'로 선정되며 위상을 재확인했다.
 
낙소스가 클래식 유통망을 장악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디지털 전환이었다. 2002년 론칭한 낙소스 뮤직 라이브러리(Naxos Music Library)는 현재 전 세계 3,000개 이상의 교육 기관 및 도서관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으며, 거의 20만 장의 앨범을 보유한 세계 최대 클래식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매월 1,000장 이상의 새 앨범이 추가되며, 유니버설, 워너, 소니 등 메이저 음반사들도 낙소스 플랫폼에 음원을 공급하고 있다.

낙소스 레이블 자체는 현재 10,000개 이상의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하드 포맷과 디지털 플랫폼 양쪽에서 모두 이용 가능하다. 낙소스 뮤직 그룹은 17개의 레이블을 산하에 두고 있으며, 다수의 독립 레이블을 유통하는 글로벌 음악 그룹으로 확장됐다. 2008년에는 뮌헨 인근에 낙소스 글로벌 로지스틱스를 설립해 제조, 마케팅, 라이선싱 서비스를 확대했다.

2025년 9월, 낙소스는 중국의 클래식 음악 서비스 플랫폼인 쿠케 뮤직 홀딩(Kuke Music Holding Ltd, NYSE: KUKE)에 1억 600만 달러(약 1,400억 원)에 인수되며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이는 낙소스가 중국 시장 공략을 위해 2016년 쿠케와 합작 투자로 설립한 '낙소스 차이나'의 연장선상에 있는 전략적 결정으로 평가된다.
 
낙소스는 클래식 음반 산업의 '민주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0년대 후반 메이저 레이블들이 불황으로 녹음 원가 절감에 나서며 품질이 저하될 때, 낙소스는 오히려 최첨단 녹음 기술에 투자하며 고품질 저가 음반을 지속적으로 공급했다. 이는 클래식 음악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여, 새로운 청중층 개척에 기여했다.

낙소스의 혁신적 프로젝트들도 주목받는다. '아메리칸 클래식스(American Classics)' 시리즈는 현재 560여 장에 달하며, 미국 콘서트 음악의 가장 포괄적인 녹음 프로젝트로 평가받는다. 낙소스 히스토리컬(Naxos Historical) 시리즈는 저작인접권이 만료된 1920년대 이후 명연주들을 복각하며, 파블로 카잘스 같은 전설적 연주자들의 음악을 대중에게 재소개했다.

레퍼토리 다양성도 낙소스의 강점이다. 일본 클래식, 스페인 클래식, 브라질 음악 시리즈 등 메이저 레이블들이 외면한 비주류 레퍼토리를 적극 발굴했다. 리스트 피아노 작품 전집(현재 59권), 바르톡 피아노 작품 전집, 수자(Sousa) 취주악 작품집등 방대한 전집 시리즈를 진행 중이다.

낙소스의 영향은 교육 분야에서도 두드러진다. 낙소스 뮤직 박스(Naxos MusicBox)는 4-14세 어린이를 위한 클래식 교육 앱으로, 어린 시절부터 클래식 음악에 대한 평생 애호를 심어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낙소스 스포큰 워드 라이브러리(Naxos Spoken Word Library)는 오디오북과 라디오 드라마를 제공하며, 2015년 론칭한 낙소스웍스(NaxosWorks.com)는 음악학 데이터베이스로 전문가들에게 필수 자료로 자리 잡았다.
 
낙소스는 젊은 아티스트 발굴과 경력 구축 지원을 핵심 철학으로 삼고 있다. '로리어트 시리즈(Laureate Series)'는 100장 이상의 앨범을 발매하며 유망한 젊은 음악가들에게 첫 녹음 기회를 제공했다.

대표적 성공 사례로는 중국 바이올리니스트 티안와 양(Tianwa Yang)이 있다. 낙소스에서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협주곡 녹음으로 2022년 오푸스 클래식 어워드(Opus Klassik Awards) '올해의 기악 연주자'로 선정됐다. 러시아 출신 피아니스트 보리스 길트부르크(Boris Giltburg)는 낙소스에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집을 녹음하며 세계적 명성을 얻었으며, 그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녹음은 2018년 오푸스 클래식 '독주 악기 녹음상'을 수상했다. 첼리스트 가브리엘 슈바베(Gabriel Schwabe)도 낙소스를 통해 러시아 첼로 소나타와 베토벤 첼로 작품 전집을 녹음하며 주목받았다.

낙소스는 베토벤 국제 피아노 콩쿠르(빈), 프리츠 크라이슬러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빈) 등 주요 국제 콩쿠르를 후원하며 신진 연주자 발굴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낙소스의 미래는 디지털 전환과 교육 플랫폼 강화, 그리고 중국 시장 공략에 달려 있다. 쿠케 뮤직 홀딩의 인수는 낙소스가 세계 최대 클래식 음악 소비 시장으로 부상한 중국에서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낙소스 차이나는 중국 클래식 음악과 음악가들을 국제 무대에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는 양방향 문화 교류를 촉진할 것으로 기대된다.

스트리밍 플랫폼 경쟁도 중요한 과제다. 낙소스 뮤직 라이브러리는 교육 기관을 중심으로 강력한 입지를 구축했지만, 일반 소비자 시장에서는 스포티파이, 애플 뮤직과 경쟁해야 한다. 2015년 론칭한 클래식스온라인 HD(ClassicsOnline HD.LL) 같은 고음질 다운로드 및 스트리밍 서비스가 오디오파일 시장을 공략하고 있으며, 2020년 출시된 낙소스 무드(Naxos Moods) 앱은 일반 청중의 접근성을 높이는 전략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낙소스가 '발견의 레이블(label of discovery)'로 재정의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클라우스 하이만은 최근 인터뷰에서 "낙소스는 과거 표준 레퍼토리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미지의 작곡가와 작품을 발굴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낙소스는 2024년 169개의 새 오디오 및 영상 음반을 발매했으며, 이 중 74개가 세계 초연 녹음이었다.

클래식 음악 시장의 성장세도 낙소스에 유리하다. BBC 보도에 따르면 영국 음반 산업 협회(BPI) 자료는 2018-2019년 클래식 음악이 빠르게 성장하는 장르였으며, 스트리밍이 클래식 소비의 25%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안드레아 보첼리, 캐서린 젠킨스, 첼리스트 세쿠 카네-메이슨 같은 크로스오버 아티스트들의 인기와 함께, 2019년 클래식 장르 판매와 스트리밍은 10.2% 증가했다.

음악 교육 분야에서도 낙소스의 역할이 확대될 전망이다. 온라인 마스터클래스와 교육 자료가 풍부해지면서 전 세계 음악 학교 교수진의 국제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낙소스는 이러한 교육 생태계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사진 속 위의 음반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Emperor)'와 피아노 협주곡 0번 WoO 4를 수록하고 있다. 지휘는 바실리 페트렌코, 오케스트라는 로열 리버풀 필하모닉이 맡았다. 피아노 협주곡 5번은 베토벤이 1809년 빈에서 작곡한 마지막 피아노 협주곡으로, 그 웅장함과 영웅적 성격 때문에 '황제'라는 별칭이 붙었다. 이 작품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의 정점으로 평가받으며, 3악장 모두 피아니스트에게 높은 기교와 음악성을 요구한다.

피아노 협주곡 0번 WoO 4는 베토벤이 14세(1784년)에 작곡한 초기 작품이다. 원래 오케스트라 파트는 소실됐고 피아노 파트만 1890년 발견됐으며, 스위스 음악학자 빌리 헤스(Willy Hess)가 1934-1943년에 걸쳐 오케스트라 파트를 재구성했다. 베토벤은 이 작품을 평생 부인했지만, 14세 소년의 작품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성숙한 구조와 베토벤 특유의 피아노 기교가 엿보인다. 3악장으로 구성됐으며, 하이든과 모차르트 스타일의 고전주의 양식을 따르면서도 독창적 요소가 곳곳에 나타난다.

지휘자 바실리 페트렌코(Vasily Petrenko)는 낙소스를 통해 국제적 명성을 쌓은 대표적 사례다. 1976년 러시아 레닌그라드 출생인 그는 2006년부터 2021년까지 로열 리버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자로 재직하며 낙소스에서 쇼스타코비치, 라흐마니노프, 엘가 교향곡 전집을 녹음해 전 세계적 찬사를 받았다. 2017년 그라모폰 어워드(Gramophone Awards) '올해의 아티스트'로 선정됐으며, 차이콥스키 교향곡 1번, 2번, 5번 녹음은 2017년 BBC 뮤직 매거진 어워드에서 '올해의 녹음'과 '올해의 오케스트라 녹음'을 동시 수상했다.

페트렌코는 러시아 레퍼토리, 특히 쇼스타코비치와 라흐마니노프 해석으로 명성이 높지만, 베토벤에서도 탁월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그는 15년간 로열 리버풀 필하모닉을 이끌며 오케스트라를 세계 정상급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재임 기간 리버풀의 클래식 음악 관객이 36% 증가했다. 그의 지휘는 역동적이면서도 섬세하며, 오케스트라의 색채감을 극대화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래의 음반 'The Best of Baroque Music'은 카펠라 이스트로폴리타나가 연주하고 리하르트 에들링거(Richard Edlinger)가 지휘한 바로크 음악 명곡 모음집이다. 이 음반은 바흐, 헨델, 비발디, 알비노니, 코렐리, 텔레만 등 바로크 시대 거장들의 대표곡을 수록하고 있다.
 
리하르트 에들링거(1958-2005)는 오스트리아 브레겐츠 출생의 지휘자로, 17세에 첫 콘서트를 지휘했다. 빈 음악원에서 지휘와 작곡을 공부해 1982년 졸업했으며, 1983년 밀라노 라 스칼라의 귀도 칸텔리 콩쿠르(Guido Cantelli Competition)에서 최연소 결선 진출자가 됐다. 1986년부터 카펠라 이스트로폴리타나의 예술감독을 맡아 이 오케스트라를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카펠라 이스트로폴리타나는 20세기 후반~21세기 초반 가장 많은 녹음을 남긴 앙상블 중 하나로, 250장 이상의 CD에 참여했다. 실제로는 90개 이상의 녹음을 제작했지만, 재발매와 테마별 편집반(Cinema Classics 12권, Chill with Bach, Best of Opera 등)으로 수백 장의 CD가 유통됐다. 이들의 연주는 "뛰어난 기술적 숙련도, 세련된 음색, 즉각적 표현력, 해석의 절제, 그리고 양식에 대한 탁월한 충실성"으로 특징지어진다. BBC 뮤직 매거진은 카펠라 이스트로폴리타나의 플레옐(Pleyel) 교향곡 녹음을 2000년 최고의 녹음 중 하나로 선정했다.

에들링거와 카펠라 이스트로폴리타나의 바로크 음악 해석은 역사적 고증보다는 낭만적 해석에 가까운 접근법을 취한다. 현대 악기를 사용하며 비브라토를 풍부하게 사용하지만, 이는 1990년대 녹음 당시로서는 일반적인 접근이었다. 그들의 연주는 '진정한 열정(real fire)'과 함께 '세련되고 공감적인(stylish and sympathetic)' 해석으로 평가받았으며, 저가 음반임에도 '비싼 레이블의 녹음만큼 훌륭하다'는 찬사를 받았다.

낙소스는 동유럽 악단들과의 협력으로 유명하다. 슬로바키아 필하모닉 출신 단원들이 1983년 창단한 카펠라 이스트로폴리타나(Capella Istropolitana)는 낙소스의 대표적 협력 오케스트라다. 브라티슬라바에 본거지를 둔 이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1991년 브라티슬라바 시의회로부터 '브라티슬라바 시립 체임버 오케스트라' 칭호를 받았으며,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모차르트 교향곡, 하이든 교향곡 등 다수의 레퍼토리를 녹음해 플래티넘 디스크 2장을 받았다.

두 음반 모두 낙소스의 핵심 철학인 '고품질 저가 음반'을 구현한 사례로, 세계적 수준의 연주를 합리적 가격에 제공함으로써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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