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동양 미학의 정수 '시정화의(詩情畵意)'...중국 전통 문화의 깊이를 담은 교양서

이주상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5-12-15 01:21:14

황위펑(黃玉峰)의 '시는 붉고 그림은 푸르네(詩情畵意)' 이여름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K라이프저니 | 이여름 기자] 중국 전통 문화에서 시와 그림은 단순한 예술 장르가 아닌 사유와 정신의 표현이었다. 학고재가 서은숙의 번역으로 펴낸 황위펑(黃玉峰)의 '시는 붉고 그림은 푸르네(詩情畵意)' 1, 2권은 바로 이 시와 그림의 유기적 관계를 탐구한 문화 교양서다.

'詩情畵意(시정화의)'라는 제목은 '시의 정취와 그림의 의미'를 뜻하는 중국 고전 미학의 핵심 개념이다. 중국 문인화 전통에서 "시는 소리 있는 그림이요, 그림은 소리 없는 시(詩爲有聲之畵 畵爲無聲之詩)"라는 명제가 보여주듯, 두 예술은 본질적으로 하나였다.

저자 황위펑은 중국 고전 시가와 회화를 넘나들며 동양 미학의 정수를 풀어낸다. 당송(唐宋) 시대 문인들이 어떻게 시를 통해 그림을 보았고, 그림을 통해 시를 읽었는지를 구체적인 작품 분석을 통해 제시한다.

이 책의 가치는 단순한 작품 해설을 넘어 동양 예술의 창작 원리를 드러낸다는 점이다. '氣韻生動(기운생동)', '寫意傳神(사의전신)' 같은 중국화의 핵심 개념들이 시적 상상력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보여준다. 문인화에서 중시하는 '묵(墨)'의 농담과 여백의 미학이 시의 함축과 여운과 동일한 미적 추구임을 논증한다.

편집 의도 또한 주목할 만하다. 각 권의 표지에 중국 전통 회화를 배치하고, 본문에서 시와 그림을 병치하여 독자가 직접 '시정화의'를 체험하도록 구성했다.  

번역자 서은숙은 중국 고전 문학의 미묘한 뉘앙스를 한국어로 옮기면서도 원전의 운율감을 살리는 데 주력했다. 특히 시 구절의 번역에서 직역과 의역을 적절히 조화시켜 한국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학고재는 1988년 고서화 전문 화랑으로 출발해 전통 미술과 현대 미술을 잇는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곳이다. 이번 출간은 갤러리의 정체성을 출판 영역으로 확장한 사례로, '옛것을 배워 새것을 만든다(學古創新)'는 설립 정신을 구현한다.

황위펑의 시각은 중국 중심주의를 넘어 동아시아 문화권 전체에 시사점을 던진다. 한국의 문인화 전통 역시 시서화(詩書畵) 삼절을 이상으로 삼았다. 조선 시대 문인들이 추구한 '詩中有畵 畵中有詩(시중유화 화중유시)'의 경지가 바로 이 책이 다루는 미학과 맥을 같이한다.

전문가들은 이 책이 동양 예술을 이해하는 입문서이자, 현대 예술 창작자들에게도 영감을 줄 수 있는 텍스트라고 평가한다. 디지털 시대에 시와 그림의 융합이라는 고전적 명제가 여전히 유효한 창작 원리임을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시는 붉고 그림은 푸르네'는 시의 정열과 그림의 담담함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동양 미학의 이상을 담은 제목이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느리게 읽고 천천히 보는 감상의 즐거움을 선사하며, 급변하는 시대에 잊혀가는 인문적 성찰의 가치를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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