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바로크 음악의 역사를 논할 때 프랑스는 언제나 장-바티스트 륄리(Jean-Baptiste Lully)와 장 -필리프 라모(Jean-Philippe Rameau)라는 두 거인의 이름으로 시작하고 끝난다.
그 사이 어 딘가에서, 오랫동안 조용히 잠들어 있던 이름이 있다. 앙드레 캉프라(André Campra, 1660~1744). 엑상프로방스 출신의 이 작곡가는 생전에 루이 14세 치하 아카데미 루아얄 드 뮈지크의 공식 지휘자(batteur de mesure)로 복무하면서도, 스스로의 음악적 유산을 툴롱, 아를, 툴루즈, 베르사유 곳곳에 새겨 넣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랫동안 ‘륄리와 라모 사이의 연결고리’라는 다소 박한 평가 속에 묻혀 있었다.
1987년, 벨기에 출신의 지휘자 필리프 헤레베헤(Philippe Herreweghe)가 라 사펠 루아얄(La Chapelle Royale)을 이끌고 녹음한 캉프라의 ‘레퀴엠 미사(Messe de Requiem)’는 바로 그 불의한 망각을 종식시킨 역사적 음반이다. 이 레코딩은 오늘날 프랑스 바로크 디스코그래피의 불멸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2013년 재발매되며 새로운 세대의 귀에 다시 한번 울려 퍼지고 있다.
캉프라, 그는 누구인가
앙드레 캉프라는 1660년 프랑스 남부 엑상프로방스에서 태어났다. 이탈리아 혈통을 지닌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남프랑스 교회 음악의 세례를 받았으며, 이후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마이트 르 드 뮈지크(maitre de musique), 즉 음악 감독으로 재직하면서 이름을 떨쳤다. 그의 ‘레퀴엠 미사’가 작곡된 것도 바로 이 노트르담 시절로 추정된다.
캉프라의 음악사적 위치는 단순한 ‘과도기적 인물’로 축소될 수 없다. 그는 프랑스 비극 오페라(tragedie en musique)의 전통을 이어받으면서도 이탈리아 칸타타 양식을 과감히 접목하여 오페라-발레(opéra-ballet)라는 새로운 장르를 사실상 창시한 인물이다. 1697년 초연된 ‘유럽 의 갈랑테리(L'Europe galante)’는 그 선구적 성취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종교음악 분야에서도 그의 역량은 탁월했는데, 대규모 모테트와 이 ‘레귀엠 미사’는 륄리 사후 프랑스 교회 음 악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다.
작품의 탄생 배경 - 노트르담의 침묵 속에서
‘레퀴엠 미사’의 정확한 작곡 연도는 밝혀져 있지 않으나, 캉프라가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음악 감독으로 재직하던 1690년대 초중반의 산물로 학계는 추정한다. 당시 노트르담은 단순한 예배 공간이 아니라 파리 음악 문화의 심장부였으며, 음악 감독에게는 고도의 전례 음악 작곡 능력이 요구되었다.
캉프라는 이 작품에서 륄리가 확립한 프랑스식 웅장함과. 그 자신이 체득한 이탈리아적 서정미를 절묘하게 융합한다. 전례 미사의 엄숙한 틀 안에서도 선율은 유려하게 흐르고, 화성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가슴을 저미는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죽음 앞의 인간이 느끼는 두려움과 간구, 그리고 구원에 대한 희망이 음표 하나하나에 새겨져 있다.
애도와 위안의 음악적 언어
이 ‘레퀴엠 미사’는 총 7개의 악장으로 구성된다. 인트로이투스(Requiem), 키리에(Kyrie), 그라두알(Graduel), 오페르투아르(Offertoire), 상투스(Sanctus), 야뉴스 데이(Agnus Dei), 그리고 포스트-코워니옹(Post-Communion)이 그것이다. 총 연주 시간 43분 25초라는 비교적 간결한 규모 안에서 캉프라는 낭비 없이, 그러나 결코 빈곤하지 않게 인간의 죽음과 신의 자비를 노래한다.
특히 10분이 넘는 오페르투아르는 이 작품의 정점이다. 현악의 섬세한 직조 위에 합창과 독창이 교차하며 "주여, 영원한 안식을 허락하소서"라는 기도를 다층적으로 쌓아 올린다. 야뉴스 데이는 륄리의 어법을 연상케 하는 엄숙한 화성 진행으로 시작하다가, 이탈리아식 칸타빌레로 녹아드는 이중성을 보여준다. 포스트-코위니옹의 평화로운 종결은 긴 슬픔의 여정을 잔잔한 화해로 마무리한다.
헤레베헤와 라 사펠 루아얄 - 시대연주의 거장이 빛어낸 음향
이 음반의 진정한 가치를 완성한 것은 헤레베헤의 해석적 탁월함이다. 겐트 대학에서 정신의학을 공부했던 헤레베헤는 원전악기의 대가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Nikolaus Harnoncourt)와 구스타프 레온하르트(Gustav Leonhardt)의 영향 아래 고음악 연주에 입문했다.
1987년 당시 헤레베헤가 이끄는 라 샤펠 루아얄은 프랑스 바로크 레퍼토리의 시대연주를 가장 설득력 있게 구현하는 단체 중 하나였다. 헤레베헤의 해석 미학은 간결하고 명료하다. 과도한 감정의 과시 없이, 음악 내부의 구조적 논리와 텍스트의 서정성이 자연스럽게 숨 쉬도록 여백을 허용하는 것이 그의 방식이다. 이 음반에서도 그 미덕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합창의 투명한 음색, 현악의 절제된 비브라토, 통주저음의 유기적 움직임이 하나의 섬세한 태피스트리를 이룬다.
같은 곡, 다른 목소리들
캉프라의 ‘레쿼엠 미사’를 담은 음반은 헤레베헤 반 외에도 몇 가지 중요한 레퍼런스가 존재한다. 마르크 민코프스키(Marc Minkowski)가 레 뭐지시앵 뒤 루브르(Les Musiciens du Louvre)를 이끌고 녹음한 버전은 헤레베헤보다 더욱 극적이고 색채감 넘치는 해석으로 주목받는다. 민코프스키 특유의 추진력 있는 리듬 처리와 강렬한 대비는 이 작품의 오페라적 측면을 부각시킨다.
윌리암 크리스티(William Christie)와 레 자르 플로리상(Les Arts Florissants)의 접근은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 크리스티는 18세기 프랑스 음악 어법에 대한 정밀한 이해를 바탕으로, 각 악장의 아펙트(affect)를 세밀하게 조각한다. 오페라-발레 레퍼토리에서 탁월한 역량을 보여온 크리스티의 손에서 캉프라의 음악은 극장적 생동감을 얻는다.
이 세 버전을 두고 서로의 우열을 가리기는 어렵다. 다만 헤레베헤의 1987년 녹음이 가장 먼저 이 작품을 국제적 레퍼토리로 끌어올린 선구적 공헌을 했다는 사실, 그리고 35년이 지난 오늘에도 이 음반이 기준점(reference recording)으로 거론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충분한 증언이다.
망각에서 불멸로
륄리와 라모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라는 수식은 이제 더 이상 캉프라를 가두는 족쇄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는 두 거인 사이의 교량이기 이전에, 그 자체로 완결된 세계를 구축한 작곡가다. 그리고 필리프 헤레베헤와 라 샤펠 루아얄의 이 음반은, 그 세계로 들어서는 가장 아름답고 신뢰할 수 있는 문이다. 죽음을 위한 미사곡이 이토록 따뜻하고 이토록 살아있을 수 있다는 것. 캉프라의 ‘레퀴엠 미 사’가, 그리고 헤레베헤의 손이 빛어낸 이 음반이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깊은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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