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1973년 동유럽 불가리아에서 태어난 니콜라이 니노프(Nikolay Ninov)는 소피아 국립예술아카데미에서 회화를 전공하며 엄격한 유럽 고전 회화의 전통 위에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쌓아 올린 화가다. 냉전 해체 이후 동유럽 예술계가 서방 미술 시장에 본격적으로 편입되던 시기에 성장기를 보낸 그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구성적 엄밀함과 서유럽 인상주의·표현주의의 감성적 자유로움을 동시에 흡수하면서 독자적인 화풍을 발전시켰다.
미술사적으로 니노프는 21세기 들어 부상하고 있는 '감성적 구상화(Emotional Figurative Painting)' 또는 '현대 서정 리얼리즘(Contemporary Lyrical Realism)'의 계보에 위치한다. 이는 추상표현주의와 팝아트가 주도했던 20세기 후반의 흐름에 대한 반성적 회귀로, 인간의 형상과 내면 감정을 섬세하게 재현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 현대 회화의 중요한 흐름이다. 니노프는 이 흐름 안에서 동유럽 특유의 우수(憂愁)와 시적 감수성을 접목시키며 국제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달빛과 침묵, 그림 속으로
2024년 작 'Lonely Moon(외로운 달)'은 유화(Oil on Canvas), 60×50cm의 소품이다. 구성은 단순하되 그 단순함 안에 복잡한 감정의 결이 켜켜이 쌓여 있다.
화면 중앙에는 오래된 창문이 있고, 그 왼편 유리 너머로 보름달이 떠 있다. 달은 그림 속에서 유일한 광원으로 기능하며, 짙은 청회색으로 가득 찬 실내를 서늘하고도 몽환적인 분위기로 적신다. 창가에는 의자에 걸터앉아 다리를 창틀 위에 올린 채 달을 바라보는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는 관객에게 등을 보이고 있어 표정은 알 수 없다. 머리를 틀어 올린 뒷모습과 노출된 등, 그리고 이완된 자세는 깊은 밤 혼자만의 시간에 잠겨 있는 한 인간의 내밀한 순간을 포착한다.
니노프의 화법은 카라바조적 명암법(Chiaroscuro)의 현대적 변용에 기대고 있다. 어둠 속에서 빛이 조각을 빚어내듯, 달빛이 여성의 몸과 바닥에 드리운 창살 그림자를 통해 공간을 입체적으로 구성한다. 붓터치는 눈에 띄게 거칠지 않으면서도 인상주의적 유연함이 느껴지며, 특히 달의 표면과 창문 유리의 질감 표현에서 숙련된 기량이 드러난다. 색채는 철저히 블루 모노크롬 계열로 절제되어 있으며, 여기에 황백색 달빛이 온도 대비를 만들어내면서 화면 전체에 긴장감과 서정성을 동시에 부여한다.
이 그림이 말하는 것
'Lonely Moon'은 제목 그대로 '고독'을 주제로 하되, 그 고독을 결핍이나 슬픔으로만 규정하지 않는다. 화면 속 여성은 불안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달을 향한 그녀의 시선과 이완된 몸의 언어는 자발적으로 선택한 고독, 즉 내면으로의 침잠을 암시한다.
달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랜 세월 고독·그리움·시간의 흐름·여성성의 상징으로 사용되어 왔다. 니노프는 이 보편적 상징을 차용하면서도 이를 거창한 서사 없이 지극히 사적이고 일상적인 장면 안에 녹여낸다. 낡은 벽, 소박한 의자, 창틀에 걸친 맨발이 이 장면을 신화적 공간이 아닌 누구나의 어느 밤으로 끌어내린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 그림의 보편적 공감력이 발생한다.
또한 이 그림은 현대인의 디지털 피로와 관계 과잉의 시대에 역설적으로 더 강한 울림을 갖는다. '혼자 있음'이 두려움이 아닌 회복의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것, 침묵이 언어보다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작은 캔버스는 조용히 증언하고 있다.
달빛이 건네는 시, 감상의 감정
이 그림 앞에 서면 소리가 먼저 사라진다. 청회색의 공기가 화면 밖으로 흘러나와 보는 이를 감싸는 것 같은 감각, 창살이 만들어내는 빛의 격자무늬가 바닥에 고요히 내려앉는 장면은 언어로는 채 옮기기 어려운 감정의 밀도를 만들어낸다.
보름달을 바라보는 여성의 뒷모습은 보는 이 각자의 기억과 감정을 투영하는 스크린이 된다. 누군가에게는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그리움으로, 누군가에게는 도시의 소음을 피해 혼자만의 밤을 지켜온 어느 날 밤의 자화상으로 다가온다. 그 여성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것, 즉 익명성이 오히려 이 그림을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만든다.
슬픔과 평온이 공존하는 이 감각은 포르투갈어 '사우다드(Saudade)'나 덴마크어 '휘게(Hygge)'처럼 하나의 언어로 정의되지 않는 정서의 영역에 속한다. 니노프는 바로 그 번역 불가능한 감정을 60×50cm의 캔버스 위에 성공적으로 가두어 놓았다.
21세기 현대 회화의 흐름 속에서
20세기가 '무엇을 그릴 것인가'와 '어떻게 파괴할 것인가'를 놓고 싸운 시대였다면, 21세기 회화는 그 해체의 잔해 위에서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는 흐름을 만들고 있다. 디지털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역설적으로 손으로 그린 유화의 물성과 온기가 재평가받고 있으며, 구상 회화는 20세기 말 한때 '시대착오'로 여겨졌던 낙인을 벗고 당당히 국제 미술 시장의 주류로 복귀하고 있다.
특히 '심리적 리얼리즘' 또는 '내러티브 피겨레이션'으로 불리는 경향은 루시안 프로이드(Lucian Freud), 에릭 피슐(Eric Fischl)의 계보를 이어받아 젊은 세대 화가들에 의해 새롭게 변주되고 있다. 인스타그램과 아트페어를 통해 동유럽, 라틴아메리카, 아시아의 구상 화가들이 갤러리 시스템을 우회해 직접 글로벌 컬렉터와 연결되는 구조 변화도 이 흐름을 가속화하고 있다. 니노프는 이 새로운 지형도에서 불가리아라는 지리적 주변부를 미학적 강점으로 전환시킨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시장에서의 니노프
니콜라이 니노프는 아직 소더비(Sotheby's)나 크리스티(Christie's) 같은 메이저 경매 하우스에 오르는 아니다. 그러나 유럽 중소 경매 플랫폼과 온라인 갤러리, 아트페어를 통해 꾸준히 작품이 거래되며 국제적 인지도를 쌓아가고 있다.
현재 니노프의 소품(50×60cm 전후) 유화 가격은 시장에서 일반적으로 2,000~6,000유로(한화 약 300만~900만 원) 선에서 형성되어 있으며, 대형 작품이나 주요 전시 출품작의 경우 1만 유로를 상회하기도 한다. 'Lonely Moon'은 개인 소장(Private Collection)으로 처리된 작품인 만큼 공개 거래가는 확인되지 않으나, 작가의 최근 상승세와 작품의 완성도를 감안할 때 동급 작품 대비 상당한 프리미엄이 붙을 가능성이 높다.
미술 시장 전문가들은 니노프와 같은 동유럽 감성 리얼리스트 작가군이 향후 5~10년 사이 컬렉터들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아직 메이저 시장에 완전히 편입되지 않은 지금이 오히려 컬렉션 진입의 적기라는 시각도 있다. 예술적 완성도와 시장 가치가 동시에 성장하고 있는 화가, 그것이 현재 니콜라이 니노프의 위치다.
달빛 하나로 이토록 깊은 인간의 밤을 그려낼 수 있다는 것. 'Lonely Moon'은 거대한 담론이나 기교적 과시 없이 한 인간의 고독한 순간을 통해 모든 이의 내밀한 감정에 닿는다. 그것이 이 작은 캔버스가 품고 있는 가장 크고 조용한 힘이다.
klifejourney2025@gmail.com
[저작권자ⓒ K라이프저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