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라이프저니 | 이여름 기자]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클래식 레이블 중의 하나인 팬클래식스(Pan Classics)에서 출시된 니콜로 욤멜리(Niccolo Jommelli, 1714-1774)의 오라토리오 '라 파시오네 디 노스트로 시뇨레 예수 크리스토(La Passione di Nostro Signore Gesu Cristo(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는 18세기 나폴리 악파의 숨겨진 걸작을 현대에 되살린 의미 있는 음반이다.
욤멜리는 헨델, 글루크와 동시대를 살았던 나폴리 악파의 대표 작곡가로, 주로 오페라 분야에서 활약했다. 1749년에 작곡된 이 오라토리오는 피에트로 메타스타시오(Pietro Metastasio)의 대본을 기반으로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극적이면서도 서정적으로 그려낸다.
바흐의 '마태 수난곡(Matthaus-Passion)', '요한 수난곡(Johannes-Passion)'처럼, 욤멜리의 이 작품도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수난 이야기를 음악적으로 재현한 대규모 종교 성악곡이다. 바흐의 루터교 전통과 달리, 욤멜리의 작품은 이탈리아 가톨릭 전통의 오라토리오 양식을 따르고 있어, 보다 오페라적이고 서정적인 특징을 보인다.
당시 나폴리에서는 사순절 기간 동안 오페라 공연이 금지되었고, 그 대안으로 성서를 주제로 한 오라토리오가 크게 유행했다. 욤멜리의 '라 파시오네'는 이러한 전통 속에서 탄생한 작품으로, 오페라적 극성과 종교적 경건함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녹음을 이끈 베를린 바로크 아카데미(Berliner Barock Akademie)는 1990년대부터 활동해온 독일의 대표적인 고음악 연주단체다. 창단 이래 바로크 시대 작품의 원전 연주에 집중해왔으며, 특히 이탈리아 바로크 오페라와 오라토리오 분야에서 탁월한 해석으로 인정받아왔다.
지휘자 알레산드로 데 마르키(Alessandro De Marchi)는 이탈리아 출신의 건반악기 주자이자 지휘자로, 바로크 성악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섬세하고 드라마틱한 해석을 선보이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독창자로는 독일 소프라노 안케 헤르만(Anke Herrmann), 이탈리아 메조소프라노 데보라 베로네시(Debora Beronesi), 미국 테너 제프리 프랜시스(Jeffrey Francis), 이탈리아 바리톤 마우리치오 피코니(Maurizio Picconi) 등이 참여해 국제적인 앙상블을 구성했다.
특히 시지스몬도 딘디아 성악 앙상블(Ensemble Vocale Sigismondo d'India)과 에우포니아 성악 앙상블(Ensemble Vocale Eufonia) 등 이탈리아의 전문 합창단이 참여해 작품의 원산지 정서를 생생하게 전달했다.
오라토리오는 제1부(78분 45초)와 제2부(46분 12초)로 나뉘어 총 2시간 5분에 걸쳐 펼쳐진다. 2장의 CD로 1부와 2부가 나뉘어 있어 감상하기 편하다. 작품은 예수의 겟세마네 동산 기도부터 십자가 처형까지의 수난 여정을 따라가며, 마리아 막달레나, 사도 요한, 베드로, 아리마태아의 요셉 등 성서 속 인물들의 관점에서 사건을 조명한다.
욤멜리 특유의 선율미와 화성적 풍부함, 극적 긴장감이 어우러져, 단순한 종교 음악을 넘어 하나의 음악극으로서 깊은 감동을 전한다.
음반은 1996년 3월과 4월 시칠리아 팔레르모 인근의 오라토리오 디 임마콜라텔라(Oratorio di Immacolatella)에서 녹음되었으며, 독일어와 영어 해설서를 포함하고 있다.
팬클래식스 레이블은 바로크 및 고전 시대의 희귀 레퍼토리 발굴에 주력해온 레이블로, 이번 욤멜리 음반 역시 그러한 노력의 결실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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