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이프저니|글·사진 고요비 기자] 1998년 6월, 이탈리아 북부 비첸차의 테아트로 올림피코. 르네상스 건축의 정수로 꼽히는 이 유서 깊은 극장 무대에 한 여성이 섰다. 체칠리아 바르톨리(Cecilia Bartoli). 데카 레이블이 담아낸 라이브 음반 ‘Live in Italy’는 단순한 공연 실황이 아니다. 20세기 말 성악 예술이 도달한 한 정점을 증언한 역사적 문서이며, 프랑스의 유명 피아니스트 장-이브 티보데와 바로크 현악 앙상블 소나토리 데 라 조이오사 마르카(Sonatori de la Gioiosa Marca)가 함께 카치니에서 비제에 이르는 300년 음악사를 76분 47초 안에 응축해낸 역작이다.
바르톨리, 그 목소리의 의미
체칠리아 바르톨리는 1966년 로마 태생의 메조소프라노로, 부모 모두 성악가인 가정에서 자랐다.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서 수학한 그는 1980년대 후반 카를로스 클라이버, 다니엘 바렌보임 등 거장 지휘자들의 눈에 띄며 국제무대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바르톨리의 음성은 메조소프라노의 전형을 동시에 확장하고 재정의한다. 중저음의 풍부한 울림과 소프라노에 근접하는 고음역의 빛나는 음색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거기에 콜로라투라의 정밀한 기교가 더해진다.
단순히 아름다운 목소리가 아니라, 지성과 감성과 기술이 삼위일체를 이루는 목소리다. 대형 오케스트라의 장막 뒤에 숨을 수 없는 리사이틀 형식은 성악가의 진정한 역량을 가장 적나라하게 시험하는 무대인데, 바르톨리는 이 음반에서 피아노 반주와 실내악 편성이라는 친밀한 형식 안에서 오히려 더 날카롭게 자신의 예술적 본질을 드러낸다. 피아니스트 장-이브 티보데는 성악가의 호흡을 예측하고 감정의 결을 함께 직조하는 공동 창작자로서, 결코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는 완벽한 앙상블을 구현한다.
300년 음악사를 가로지르는 수록곡의 세계
이 음반의 레퍼토리 구상은 탁월하다. 바로크 초기 줄리오 카치니(1551~1618)에서 출발하여 헨델, 비발디, 모차르트를 거쳐 슈베르트, 베를리오즈, 벨리니, 도니체티, 로시니, 비제에 이르기까지 서양음악사의 굵직한 맥락을 촘촘히 짚어낸다. 카치니는 피렌체 카메라타의 일원으로 오페라 탄생에 직접 기여한 인물이다. 수록된 ‘Tu ch’hai le penne, Amore’와 ‘Amarilli’는 마드리갈과 모노디 양식이 교차하는 초기 바로크의 섬세한 감성을 담은 작품들로, 인간의 목소리 하나가 얼마나 깊은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음악사적 실험의 산물이다.
헨델의 ‘Lascia la spina’는 오라토리오 ‘시간과 깨달음의 승리’에서 발췌된 아리아로, 쾌락의 가시덤불을 버리고 미덕의 꽃을 따르라는 알레고리적 내용을 담고 있다. 비빌디의 ‘Agitata da due venti’는 오페라 ‘그리셀다’에서 발췌된 아리아로, 그 격렬함이 특징이다. 바르톨리는 두 바람에 흔들리는 영혼의 내적 갈등을 혼을 쏙 빼놓는 강렬함으로 터트린다.
사랑, 체념, 자유 – 수록곡들이 말하는 것
모차르트의 ‘Voi che sapete’는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2막에서 케루비노가 부르는 아리아로, 사랑이 무엇인지 이제 막 깨닫기 시작한 소년의 떨리는 감정을 담았다. 메조소프라노 바르톨리가 이 곡을 부를 때, 케루비노의 젠더 모호성과 청춘의 순수함은 더욱 선명하게 빛난다. 슈베르트의 ‘La pastorella’는 이탈리아어로 쓰인 희귀 가곡으로, 슈베르트가 이탈리아 양식에 경도되었던 시기의 흔적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로시니의 ‘Mi lagnero tacendo’는 페트라르카의 시에 붙인 가곡으로, 말없이 탄식하겠다는 체념 어린 사랑의 고백이 절제된 아름다움으로 흐른다.
도니체티의 ‘Me voglio fa ’na casa’는 나폴리 방언으로 쓰인 민요풍의 가곡으로, 벨칸토 오페라의 거장이 지닌 서민적 유머와 정서를 가감없이 드러낸다. 이처럼 각각의 수록곡들은 저마다의 언어와 시대적 감수성으로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노래한다. 그리고 비제의 ‘Seguedille’로 대미를 장식하는 카르멘의 관능적 자유 정신은, 이 음반 전체를 관통하는 생명력의 최종 폭발이다.
역사적 공간과 라이브의 현재성
테아트로 올림피코는 16세기 건축가 안드레아 팔라디오가 설계한 세계 최초의 실내 상설 극장이다. 르네상스 건축의 원근법적 무대 장치가 고스란히 보존된 이 공간에서 울려 퍼진 바르톨리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역사와의 대화다. 라이브 음반은 스튜디오 녹음이 결코 포착할 수 없는 것들을 담는다. 숨결, 긴장, 그리고 무엇보다 돌이킬 수 없는 그 한 순간의 현재성이다. ‘Live in Italy’는 바르톨 리가 1990년대 전성기에 남긴 가장 빛나는 증언 중 하나로, 성악 예술의 순수한 기쁨이 무엇인지를 세대를 넘어 전하는 음반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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