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이프저니|박지원 기자] 채무 압류로 생활고에 시달리던 채무자들이 최소한의 생계비를 보장받을 수 있는 '생계비 통장'이 본격 출시됐다.
최근 금융위원회와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들은 이달부터 채무자의 급여·사업소득 등이 입금되더라도 월 250만 원까지는 압류가 금지되는 '생계비 보호 통장'(가칭) 상품을 일제히 출시했다. 이는 '민사집행법' 개정안이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하고 올해 2월 1일부터 시행됨에 따른 조치다.
민사집행법 개정, "최저생계비는 압류 금지"
이번 제도는 채무자라 하더라도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마련됐다. 개정 민사집행법 제246조의2에 따르면 채무자가 지정한 특정 계좌에 입금된 금액 중 월 250만 원(4인 가구 기준 중위소득의 60% 수준)까지는 압류가 금지된다.
기존에는 급여통장에 월급이 입금되는 즉시 채권자가 압류 신청을 하면 생활비조차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법원 통계에 따르면 2025년 한 해 동안 급여 압류 신청 건수는 37만 2,000건으로, 이 중 68.3%가 전액 압류 조치됐다.
한 채무자는 "월급 180만 원이 통장에 들어오자마자 전액 압류되면서 월세와 생활비를 전혀 쓸 수 없어 길거리로 내몰릴 뻔했다"며 "생계비 통장이 있었다면 최소한의 삶은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5대 은행, 일제히 생계비 통장 출시
KB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NH농협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들은 이달 초부터 생계비 보호 통장 상품을 출시했다. 개설 절차는 일반 입출금 통장과 동일하며, 신청 시 '생계비 보호 계좌'로 지정하면 압류 금지 효력이 발생한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고객이 생계비 보호 계좌로 지정하면 은행 시스템에 자동 등록되며, 법원의 압류 명령이 들어와도 월 250만 원까지는 시스템적으로 차단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한 사람당 하나의 계좌만 생계비 보호 계좌로 지정할 수 있으며, 중복 지정 시 나중에 지정한 계좌가 유효하다. 또한 압류금지 한도인 250만 원은 매월 1일 기준으로 초기화되며, 전월 미사용 금액은 이월되지 않는다.
압류 금지 범위와 예외 조항
생계비 통장의 압류 금지 범위는 급여, 사업소득, 연금 등 생계형 소득에 한정된다. 따라서 부동산 매각 대금, 상속·증여 재산, 보험금 등 일시적 수입은 압류 금지 대상에서 제외된다.
또한 조세 체납, 양육비·위자료 채무, 범죄 피해 배상금 등 공익적 성격의 채무는 예외적으로 생계비 통장도 압류가 가능하다. 법무부 관계자는 "생계비 보호가 조세 회피나 범죄 수익 은닉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채무자 10명 중 8명 "제도 몰라"…홍보 강화 필요
그러나 정작 제도의 수혜 대상인 채무자들의 인지도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신용회복위원회가 채무 조정 상담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2.3%가 "생계비 보호 통장 제도를 모른다"고 답했다.
특히 저학력·고령층 채무자일수록 정보 접근성이 낮아 제도 혜택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금융감독원은 전국 시·군·구청과 협력해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등 취약 채무자에게 생계비 통장 안내문을 발송할 계획이다.
채권자 반발 vs 채무자 보호…이해관계 충돌
생계비 통장 도입에 대해 채권자 측에서는 반발의 목소리도 나온다. 대부업계 관계자는 "정당한 채권 회수가 어려워지면 대출 금리가 오르거나 심사가 까다로워져 오히려 서민 금융 접근성이 악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채무자 권익 단체들은 환영 입장이다. 채무자권익찾기모임 김철수 대표는 "채무 변제도 중요하지만 채무자의 생존권이 우선"이라며 "이번 제도가 채무자의 재기 발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법조계 "압류 남용 방지, 채무자 인권 보호 의미"
법조계에서는 이번 제도가 채무자 인권 보호 차원에서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평가한다. 박영선 변호사(법무법인 정률)는 "그동안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채무자 보호 수준이 낮다는 지적을 받아왔다"며 "생계비 압류 금지는 선진국에서 이미 시행 중인 제도로, 채무 관계에서도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하는 기준이 마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 영국, 독일 등 주요 선진국은 채무자의 최저생계비를 법률로 보호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연방법상 주급의 75%는 압류가 금지되며, 독일은 가구원 수에 따라 월 1,2522,805유로(약 180만405만 원)까지 압류 면제 구간을 설정하고 있다.
다중채무자 "한 달에 250만원이면 숨통 트인다"
제도 시행 직후 생계비 통장을 개설한 다중채무자 이모(47) 씨는 "카드빚, 대출 등으로 매달 급여가 압류되면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지내왔다"며 "이제 250만 원이라도 보장되니 최소한의 생활은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안도했다.
신용회복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2025년 신용회복 지원 신청자의 평균 월 소득은 189만 원으로, 이 중 72.3%가 압류로 인해 생계비 사용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조사됐다. 업계에서는 생계비 통장 제도가 연간 약 35만 명의 채무자에게 실질적 도움이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제도 정착 위한 보완 과제 산적
전문가들은 제도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 몇 가지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우선 압류 금지 한도인 250만 원이 1인 가구, 4인 가구 모두 동일하게 적용돼 형평성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다.
한 한국소비자원 연구위원은 "가구원 수, 부양가족 유무 등을 고려한 차등 적용이 필요하다"며 "특히 미성년 자녀가 있는 한부모 가정의 경우 250만 원으로는 생계 유지가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생계비 통장을 악용한 재산 은닉을 방지하기 위한 모니터링 체계도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금융감독원은 "고액 자산가가 의도적으로 소득을 생계비 통장으로 이체해 압류를 회피하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자산 규모 심사 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채무 재조정·신용회복 연계해야 실효성"
채무 전문가들은 생계비 통장이 일시적 생계 보호에 그쳐서는 안 되며, 근본적인 채무 해결 방안과 연계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용회복위원회 관계자는 "생계비 보호만으로는 채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채무 조정, 개인회생·파산 제도 안내, 금융 교육 등을 함께 제공해 채무자의 실질적 재기를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하반기 생계비 통장 제도 시행 6개월 평가를 실시하고, 압류 금지 한도 조정, 가구별 차등 적용 등 제도 개선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채무로 고통받던 이들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는 생계비 통장 제도가 채무자 인권 보호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klifejourney2025@gmail.com
[저작권자ⓒ K라이프저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이 그림] 고요한 겨울 창가의 시(詩), 에릭 톰슨의](https://klifejourney.com/news/data/2026/02/11/p1065621461753916_863_h2.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