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이프저니 | 이여름 기자] 19세기 러시아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해양화가 이반 콘스탄티노비치 아이바조프스키(Ivan Konstantinovich Aivazovsky, 1817-1900)는 해양 미술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 거장이다. 1868년 제작된 '폭풍(Storm)'은 그가 평생 천착한 바다의 원초적 힘을 극명하게 포착한 작품이다.
크림반도 페오도시아의 가난한 아르메니아 상인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바조프스키는 종이조차 구하기 힘든 환경에서 담벼락에 배와 선원을 그리며 재능을 키웠다. 상트페테르부르크 황립미술원에서 정규 과정보다 2년 앞서 졸업한 그는 러시아 해군 전속 화가로 임명되며 60년 화업의 출발점에 섰다.
'폭풍'은 아이바조프스키 해양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거대한 파도에 기울어진 범선은 자연의 압도적 위력 앞에 선 인간의 나약함을 상징한다. 하지만 작품의 진정한 주제는 절망이 아니다. 폭풍구름 사이로 스며드는 은은한 빛은 생명과 희망의 영원한 상징이다.
아이바조프스키는 "빛은 창조주이며, 이 개념은 아르메니아 문화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청록색과 회색이 뒤섞인 반투명한 물결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글레이징 기법으로 구현됐으며, 파도마다 서로 다른 빛의 굴절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아이바조프스키의 화법은 독보적이다. 그는 야외 스케치를 거부하고 기억에 의존해 작품을 완성했다. "자연의 원소는 매 순간 변하기 때문에 사실대로 그릴 수 없다"는 신념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그의 작업실 창문은 바다가 아닌 안뜰을 향해 있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는 60년간 6천여 점의 작품을 제작하며 역사상 가장 다작한 화가 중 한 명이 됐다.
19세기 러시아에서는 안톤 체호프가 대중화시킨 "아이바조프스키의 붓질에 걸맞은"이라는 표현이 아름다운 무언가를 지칭하는 관용어로 쓰였다. 영국의 거장 터너는 그의 작품에 찬사를 보내며 시를 헌정했고, 1843년 그는 루브르에 작품을 전시한 최초의 러시아 화가가 됐다. 황제와 술탄, 교황이 그의 작품을 소장했으며, 유럽과 미국 전역에서 120회 이상의 개인전을 열었다.
아이바조프스키는 단순한 화가가 아니었다. 고향 페오도시아에 미술학교와 갤러리를 설립해 후진을 양성했으며, 김나지움과 도서관을 지어 기증했다. 그의 노력으로 도시에 상수도가 설치되고 항구와 철도가 건설됐다. 1881년 페오도시아 최초의 명예시민이 된 그는 1900년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
현재 그의 작품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아르메니아의 주요 미술관에 소장돼 있으며, 특히 페오도시아 아이바조프스키 미술관은 416점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다. 21세기에도 그의 작품은 경매에서 수백만 달러에 거래되며, 러시아에서 가장 많이 위조되는 작가로 꼽힐 만큼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폭풍'이 보여주는 자연의 숭고함과 인간의 의지는 오늘날까지도 해양 미술의 불멸의 기준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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