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이프저니|글·사진 이주상 기자] 25일 서울 마포구 호텔 나루 서울 엠갤러리에서 넷플릭스 영화 '가능한 사랑'(감독 이창동) 제작보고회가 열렸다. 이창동 감독을 비롯해 배우 전도연, 설경구, 조인성, 조여정이 참석했고 방송인 박경림이 사회를 맡았다.
"이루어질 수 없어야 사랑이라면, 우리는 왜 '가능한'이라 이름 붙였나"
이창동 감독이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시’, ‘버닝’을 통해 세계 영화제를 두드려온 지 8년 만에 내놓는 신작이다. 제목부터가 하나의 질문을 품고 있다. 통상 사랑 이야기는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전제를 깔고 서사가 된다는 것이 이창동 감독의 생각이다. 손쉽게 이뤄지고 모두에게 축복받는 사랑이라면 굳이 이야기로 만들어질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정반대의 자리에서 출발한다.
이날 감독은 "사랑 이야기라고 하면 사실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전제를 안고 받아들이게 되는데, 우리는 오히려 '가능한 사랑'이라고 했다"며 "어떤 사랑이 가능한지, 사랑을 가능하게 하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런 질문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불가능을 전제로 하는 장르 관습을 뒤집어, 사랑을 '해내야 하는 것', '살아가며 도달해야 하는 것'으로 되돌려 놓은 셈이다.
그는 "‘가능한 사랑’을 사랑에 관한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남녀 간의 사랑뿐만 아니고 사람이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사랑, 또는 해야만 하는 사랑에 관한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고에서 시작해 사랑으로 도착한 이야기
'가능한 사랑'은 해고 노동자 호석(설경구)과 그의 아내 미옥(전도연), 그리고 해고 노동자들을 취재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조여정)와 그녀의 남편 상우(조인성), 두 부부가 다큐멘터리 제작을 계기로 만나 서로 다른 삶과 숨은 욕망을 마주하는 이야기다. 남편의 전 직장 동료 장례식장에서 시작된 인연은 여름휴가로 이어지고, 그 안에서 두 가족은 결국 감춰둔 욕망을 드러내게 된다.
이 이야기의 뿌리는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창동 감독은 한국의 한 대기업에서 벌어진 대규모 정리해고와 이에 맞선 파업이 공권력에 의해 강제 진압된 사건을 소재로 영화를 준비했으나, 이를 극영화로 옮기는 일이 윤리적으로 온당한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아 한동안 접어두었다. 그는 이날 "노동자가 구조조정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앞으로 피할 수 없는 사태라고 생각했다"며 "시간이 지나며 기술과 함께 노동 자체가 소멸되어 가는 시대가 왔다고 느꼈고, 그래서 이 이야기를 지금 해야 한다는 필연성이 오히려 더 강해졌다"고 돌아봤다.
노동의 이야기가 사랑의 이야기와 만나게 된 지점에 대해서는 "삶을 지배하는 힘이 점점 강해질 때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것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며 "그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일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이며, 그 본질은 사랑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노동이나 자본, 혹은 그 어떤 거대한 힘이 우리의 삶을 규정하려 하더라도, 인간은 끝내 자유를 향해 나아가려는 마음을 잃지 않는다고 믿는다"며 "그 마음, 어쩌면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는 그 욕망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연출 의도를 묻는 질문에는 "삶의 구조가 어떻게 바뀌든지 인간이 그걸 넘어설 수 있는 건 우리 마음속에 있는 '자유'에 대한 생각이라고 믿는다"며 "한 가지 분명하게 받아들여졌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 '자유'"라고 답했다.
베니스·토론토·뉴욕이 먼저 알아본 영화
'가능한 사랑'은 공개 전부터 국제 영화제의 러브콜을 받았다. 제84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제51회 토론토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제64회 뉴욕영화제 메인 슬레이트 부문에 초청됐고, 이창동 감독은 토론토국제영화제 트리뷰트 어워즈에서 한국 감독 최초로 TIFF 에버트 감독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날 이창동 감독은 "이 영화가 국제 영화제에서 최초로 공개되는데, 관객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지 최초의 반응이 매우 궁금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전도연은 "처음 얘기를 들었을 때 많이 놀랐다. 해외 관객들에게 어떤 반응이 있을지 떨리고 궁금하다"고 했고, 설경구는 "감독님과 작업한 지 20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이런 좋은 소식이 있어 너무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조인성은 "이창동 감독님의 작품을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고, 조여정은 "다른 나라의 관객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보게 될지 궁금하고 떨리고 설렌다"고 전했다.
흥행 포인트, 20년 만에 재회한 전설의 부부와 넷플릭스가 지킨 약속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캐스팅 그 자체다. 전도연과 설경구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생일’ 등을 함께한 데 이어 이번 작품으로 극 중 세 번째 부부, 통산 네 번째 만남을 이룬다. 전도연은 "이미 오랜 시간 함께해왔기 때문에 호석과 미옥으로서 서로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있고, 그래서 더 진짜 부부 같은 케미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전도연과 이창동 감독의 재회이기도 하다. 전도연이 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았던 ‘밀양’ 이후 20년 만이다. 그는 "시간이 그렇게 많이 지났는데 감독님을 뵀을 때 그렇게 오래된 걸 잘 모르겠더라. 그냥 엊그제 같은 느낌이었다"고 돌아봤다.
이창동 감독이 전도연·설경구를 캐스팅하는 데는 다른 여지가 없었다고 한다. 그는 "두 사람이야말로 '미옥'과 '호석'이라는 인물에 딱 맞는 유일한 배우라고 생각했다"며 "연기를 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그 인물로 살아갈 수 있는 배우들이었다"고 말했다.
이창동 감독과는 이번이 처음인 조인성과 조여정에 대해서도 "훌륭하게 맞는 배우, 두 배우만이 소화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조인성이 맡은 상우에 대해서는 "이 영화에서 보이지 않게 이야기를 지배하는 구조를 가진 인물이기 때문에 힘이 세고 매력적이면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이미지가 필요했다"고, 조여정이 맡은 예지에 대해서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저와 가장 가까운 시각과 입장을 가진 인물"이라며 "자의식이 강하면서도 감수성과 공감 능력을 함께 갖춘 배우"라고 설명했다.
넷플릭스와의 작업 과정도 눈길을 끈다. 이창동 감독은 "넷플릭스가 처음부터 이 작품에 대한 신뢰를 갖고 가고 싶어 했다"며 "제작 전 과정에 걸쳐 특별한 요구 사항 없이 연출자로서의 독립성을 절대적으로 인정해줬다"고 말했다. 극장 개봉 여부를 둘러싼 우려에 대해서도 "넷플릭스에 론칭되기 전 극장 개봉을 약속했었고, 그 약속을 지켜줬다"고 밝혔다.
극장의 시대가 저무는 것 아니냐는 시선에 대해서는 "영화 산업의 구조는 이미 바뀌어가고 있고 그 흐름은 되돌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극장 영화와 스트리밍 서비스가 결국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걸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영화가 관객과 얼마나 더 가까워질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영화는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게 그의 결론이었다.
'가능한 사랑'은 오는 9월 23일 한국에서 극장 개봉하며, 11월 6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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