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네덜란드 화단의 이단아이자 유대인 화가였던 모미 스바르츠(Mommie Schwarz, 본명 사무엘 레세르 스바르츠, 1876~1942)가 태어난 지 올해로 150년이 됐다.
그는 1942년 아우슈비츠에서 아내이자 동료 화가였던 엘제 베르흐(Else Berg)와 함께 나치에 의해 살해됐다. 두 사람의 죽음은 20세기 초 유럽 화단이 입은 상처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스바르츠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꽃이 있는 정물'(Still Life with Flowers, 1912~14년, 판지에 유채, 82.5×67.5cm)은 그의 예술 세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베르헨 화파의 이방인
스바르츠는 네덜란드 쥣펀(Zutphen)에서 열한 남매 중 열째로 태어났다. 안트베르펀 미술 아카데미에서 수련한 뒤 뉴욕과 마드리드를 거쳐 1905년 베를린에 정착했는데, 이 시기 독일 표현주의에 매료된 것이 그의 화풍을 결정짓는 계기가 됐다. 베를린에서 만난 엘제 베르흐와는 1920년 결혼했고, 두 사람은 1915년 네덜란드 스호를(Schoorl)로 옮겨 레오 헤스텔(Leo Gestel), 샤를레이 토로프(Charley Toorop) 등과 교류하며 '베르헨 화파(Bergen School)'의 핵심 일원으로 자리 잡았다.
베르헨 화파는 입체주의적 조형과 표현주의적 감성을 결합해, 어둡고 짙은 색조 속에 대상을 단순화된 형태로 재구성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스바르츠는 이 흐름 안에서도 독자적인 위치를 점한다. 그는 항구 풍경, 풍경화, 인물화, 정물화 등 폭넓은 장르를 넘나들었고, 화가로서의 활동 외에도 잡지 '벤딩헌(Wendingen)'의 삽화와 책 표지, 포스터 디자인 등 그래픽 아티스트로서도 상당한 성과를 남겼다. 미술사가들은 그를 20세기 초 네덜란드 지방 화단이 유럽 아방가르드와 접속하는 통로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한다.
색으로 쌓은 구조
'꽃이 있는 정물'을 들여다보면 스바르츠 특유의 화법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화면 중앙에는 붉은 꽃송이를 피운 화분이 놓여 있고, 그 아래로 둥글고 짙은 초록 잎사귀들이 리듬감 있게 퍼져 있다. 배경의 흰 천은 단색으로 처리되지 않고, 굵은 청색 윤곽선과 잘게 쪼개진 붓 터치로 채워져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는 입체주의의 다면적 형태 분할과 표현주의의 격정적 색채 구사가 만난 결과다. 스바르츠는 사물의 윤곽을 청색의 굵은 선으로 강하게 규정하면서도, 그 내부는 자유로운 색점과 짧은 붓질로 메워 평면적이면서도 진동하는 듯한 질감을 만들어낸다. 붉음과 초록, 청색과 백색이 서로 부딪히면서도 전체적으로는 균형을 이루는 구성은, 그가 정물이라는 익숙한 소재를 통해 색채 자체의 조형적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사라진 이름이 남긴 무게
스바르츠의 작품이 지니는 가치는 미학적 완성도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생전에 자신의 그림에 서명을 남기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전쟁이 임박하자 유대인 화가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이미 그려둔 그림의 서명을 지우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의 원작 다수는 작가 미상으로 오랫동안 떠돌았고, 후대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하나둘 그의 이름을 되찾았다.
이런 배경은 '꽃이 있는 정물'과 같은 작품에 이중의 의미를 부여한다. 하나는 순수하게 조형적 성취로서의 가치이며, 다른 하나는 홀로코스트로 예술 활동이 강제로 중단된 한 인간의 마지막 흔적이라는 증언으로서의 가치다. 그림 한 점 한 점이 그가 살아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삶이 폭력적으로 끊겼다는 사실을 함께 증언하고 있는 셈이다.
정물 너머의 정서
'꽃이 있는 정물'을 오래 들여다보면, 화면은 정지된 사물의 배열이 아니라 흔들리는 기억의 단면처럼 느껴진다. 굵은 청색 선들은 흰 천의 주름을 그리고 있지만, 동시에 화면 전체를 가로지르는 균열처럼 보이기도 한다. 붉은 꽃송이는 화사하지만 어딘가 위태롭게, 짙은 초록 잎들에 둘러싸여 홀로 빛난다.
이 작품이 그려진 시점(1912~14년)에는 화가가 자신의 운명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의 역사를 알고 보는 오늘의 관람자에게는, 화면 속 흔들리는 붓질 하나하나가 곧 다가올 상실을 예감케 하는 서정으로 다가온다. 밝은 색채 안에 스며 있는 이 불안한 떨림이야말로 이 그림을 단순한 정물화 이상으로 만드는 요소다.
잊힌 이름에서 재조명으로
스바르츠와 베르헨 화파는 프랑스나 독일의 주류 아방가르드에 견줘 국제적 지명도가 높은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은 입체주의와 표현주의라는 두 축을 지역적 정체성 속에서 융합해낸 독자적인 실험으로 평가받으며, 네덜란드 근대 회화의 형성 과정에 중요한 다리를 놓았다. 특히 색채와 형태를 분리해 다루면서도 이를 다시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스바르츠의 방식은, 이후 네덜란드 표현주의 계열 화가들이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탐색하는 데 참고점이 됐다.
무엇보다 스바르츠와 베르흐의 삶과 죽음은 20세기 후반 이후 '홀로코스트로 잃어버린 예술(Holocaust-era art)'에 대한 재조명 흐름 속에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이는 순수한 화풍의 계승과는 다른 차원의 영향으로, 오늘날 미술사가 나치에 의해 단절된 예술적 계보를 복원하고 기억하는 작업에 그의 이름이 하나의 상징으로 자리하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조용한 시장, 뒤늦은 재평가
스바르츠의 작품은 국제 경매 시장에서 피카소나 마티스급 화가들처럼 활발히 거래되는 이름은 아니다. 그의 작품은 주로 네덜란드 현지 경매사와 유럽 지역 경매를 중심으로 유통되며, 아트넷(Artnet)이나 인밸류어블(Invaluable), 아트프라이스(Artprice) 등 국제 미술품 가격 데이터베이스에도 다수의 낙찰 기록이 축적돼 있다.
포스터나 소품 드로잉급 작품은 낮게는 수백 유로에서, 회화 작품은 대체로 1천~2천 유로대에서 거래되는 사례가 흔하게 확인된다. 실제 최근 경매 기록에서도 추정가가 1,200~1,800유로 선에 형성된 사례가 있어, 이는 그의 작품이 아직 '대중적 재평가'보다는 '전문 컬렉터와 연구자 중심의 조용한 시장'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대형 정물화나 전시 이력이 뚜렷한 대표작의 경우 이보다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도 하며, 프로베넌스(소장 이력)가 명확하고 전쟁 이전 작품임이 입증되는 작품일수록 가치가 높게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미술사가들은 홀로코스트로 희생된 예술가들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적으로 커지고 있는 만큼, 스바르츠와 베르흐 같은 '잊혀졌던 이름'들이 향후 재조명을 통해 시장 평가 또한 점차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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