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우타가와 히로시게(歌川廣重, 1797~1858)의 '메구로 태고교와 유히 언덕(目黒太鼓橋夕日の岡)'은 그의 대표 연작 '명소에도백경(名所江戸百景)' 중 111번째 작품으로, 1857년 4월 발표됐다.
에도(현재의 도쿄) 메구로 지역의 눈 덮인 다리와 강, 그 위를 오가는 행인들을 담은 이 판화는 세로형 오반(大判) 판형(약 340×225mm)으로 제작되었으며, 히로시게가 세상을 떠나기 불과 1년 전 완성한 만년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우키요에의 마지막 거장
히로시게는 우타가와파(歌川派)의 화가로, 도요히로(豊廣)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웠다. 그는 '도카이도 53차(東海道五十三次)'와 '명소에도백경' 등 대형 풍경 연작으로 명성을 얻으며, 가쓰시카 호쿠사이와 더불어 일본 풍경 판화의 양대 산맥으로 평가받는다. 미술사적으로 그는 흔히 '우키요에의 마지막 거장'으로 불리는데, 이는 그의 사후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거치며 서구화되는 과정에서 전통 목판화 장르인 우키요에가 급격히 쇠퇴했기 때문이다. 즉 히로시게는 에도 시대 목판 풍경화 전통의 정점이자 종착점에 위치한 화가라 할 수 있다.
대각선 구도와 색의 그러데이션
이 작품은 히로시게 특유의 대담한 구도와 섬세한 색채 기법을 잘 보여준다. 화면 전경에는 눈을 흠뻑 뒤집어쓴 소나무가 화면을 가로지르듯 배치돼 있고, 그 사이로 활처럼 휘어진 태고교(북 모양의 아치형 다리)와 우산을 쓴 행인들의 뒷모습이 작게 그려진다.
짙은 감청색에서 옅은 회백색으로 번지는 하늘은 '보카시(暈し)'라 불리는 그러데이션 인쇄 기법으로 표현되었으며, 이는 여러 차례의 별도 인쇄를 거쳐야 하는 매우 정교하고 노동집약적인 작업이다. 근경의 인물과 나무를 과감하게 확대하고 원경을 작게 처리해 화면에 압도적인 공간감을 부여하는 방식은, 히로시게가 이 연작 전반에서 즐겨 사용한 혁신적 구도법이기도 하다.
사계절과 도시의 초상
'명소에도백경'은 단순한 관광 명소 안내도가 아니라, 사계절의 변화와 함께 에도라는 도시의 일상을 기록한 일종의 시각적 연대기다. 그중에서도 이 작품이 담아낸 것은 인적이 드문 겨울 저녁, 눈 속을 조용히 걸어가는 이름 없는 행인들의 뒷모습이다. 화려한 축제나 번화한 거리 풍경이 아니라 고요한 자연과 인간의 왜소함을 대비시킨 이 구성은, 에도 시대 후기 일본인들이 자연을 바라보던 정서적 태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미술사적·문화사적 가치를 지닌다.
침묵 속에 내리는 눈, 그리고 여운
이 작품을 마주하면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것은 소리 없는 고요함이다. 하늘에 흩뿌려진 무수한 눈송이는 정적인 화면에 미세한 움직임을 부여하고, 우산을 쓴 채 등을 돌린 인물들의 실루엣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그들이 향하는 곳을 함께 상상하게 만든다. 짙은 감청빛 하늘과 새하얀 설경이 만들어내는 색채의 대비는 차갑고 쓸쓸하면서도 묘하게 따뜻한 서정을 자아내며, 마치 한 편의 짧은 하이쿠(俳句)를 눈으로 읽는 듯한 여운을 남긴다.
반 고흐가 베껴 그린 그림들
히로시게의 작품은 19세기 후반 유럽을 휩쓴 '자포니즘(Japonisme)' 열풍의 중심에 있었다. 마네와 모네를 비롯한 인상주의 화가들은 히로시게의 대담한 구도와 평면적 색채 처리를 면밀히 연구하고 자신들의 컬렉션에 그의 판화를 소장했다. 특히 빈센트 반 고흐는 '명소에도백경' 연작 중 두 작품—'가메이도의 매화나무 정원'과 '오하시 다리의 소나기'—을 유화로 직접 모사하며 존경을 표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히로시게 특유의 과감한 클로즈업 구도와 대담한 색면 처리는 이후 서구 회화의 구도 관습을 뒤흔드는 데 기여했으며, 이는 오늘날까지도 근대 회화사에서 '동서 미술 교류'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사례다.
희소성 못지않은 미술사적 서사
히로시게는 호쿠사이, 우타마로와 더불어 우키요에 시장에서 가장 꾸준한 수요를 지닌 작가로 꼽힌다. 다만 가격 편차는 매우 큰 편이다. 후대에 다시 찍은 후쇄본이나 상태가 좋지 않은 인쇄본은 수백 달러 선에서 거래되는 반면, 19세기 당대에 찍힌 초기 인쇄본으로 색상 보존 상태가 우수한 작품은 수천 달러에서 많게는 1만 달러 이상에 거래되기도 한다.
미술 시장 관계자들은 우키요에 거장들의 걸작 중 희귀본이 경매에서 수십만 달러, 드물게는 100만 달러를 넘는 가격에 낙찰된 사례도 있다고 전한다. '명소에도백경'처럼 서양 미술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진 연작은 특히 컬렉터들 사이에서 상징성이 크다는 점에서, 판화 자체의 희소성 못지않게 미술사적 서사가 가격 형성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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