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이프저니|글·사진 이주상 기자] 2월 4일 2026 F/W 서울패션위크 둘째 날 저녁 6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아트홀1을 가득 채운 안개 속에서 얼킨(ULKIN)의 컬렉션이 시작됐다. 디자이너 이성동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며 만들어낸 비공식적인 통로, Desire Path'를 컨셉으로 내세우며, 계획되지 않았으나 보호받지 않았으며 때로는 위험하고 외로운 그 길을 만들어온 사람들에게 헌정하는 무대를 펼쳤다.
어둠 속에서 드러난 해체주의 미학
런웨이를 가득 채운 어둠은 단순한 무대 연출이 아니라 컬렉션의 핵심 메타포였다. 불확실성 속에서 스스로의 길을 만들어가는 존재들, 그들이 입은 옷은 완성된 형태보다 과정 중의 상태에 가까웠다. 그레이 미니 드레스에 암 워머를 비대칭으로 착용하고 블랙 부츠를 신은 오프닝 룩은 얼킨의 시그니처 해체주의를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특히 주목할 점은 워셔블 소재와 디스트로이드 니트, 레이스 디테일의 조합이다. 그레이 리브 니트 위에 화이트 퍼 디테일을 더하고, 사이드 슬릿이 깊게 들어간 레이스 스커트를 매치한 룩은 우아함과 거칠음이 공존하는 얼킨만의 미학을 구현했다. 완벽하게 봉제되지 않은 듯한 날것의 가장자리, 의도적으로 해체된 실루엣은 계획되지 않은 길의 불완전한 아름다움을 시각화했다.
코듀로이 재킷, 새로운 시그니처의 탄생
이번 컬렉션에서 반복 등장한 아이템은 코듀로이 재킷이었다. 그레이 코듀로이 크롭 재킷에 터틀넥 니트를 레이어링하고 사이드 슬릿 미디 스커트를 조합한 룩은 얼킨이 추구하는 '일상적이면서도 특별한' 디자인 철학을 담았다. 코듀로이 특유의 촉감과 시각적 질감은 편안함을 주면서도, 크롭 길이와 오버사이즈 핏, 불규칙한 버튼 배치 등은 예측 불가능한 개성을 더했다.
남성복 라인에서 보이는 카키 트렌치코트 역시 클래식한 아이템을 얼킨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결과물이다. 안개 속에서 등장한 모델의 실루엣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극적이었고, 이는 의도된 연출이었다. 이성동 디자이너는 옷이 입는 사람의 서사를 담아내는 매개체가 되기를 바란다.
학계와 산업계를 잇는 디자이너
이성동은 2020년부터 케니스 인터내셔널 법인 설립 및 공동 대표로 활동하며 브랜드 경영과 디자인을 병행해왔다. 동시에 2018년부터 한양대학교 의류학 석사 과정을 밟으며 이론적 기반을 다졌고, 2017년부터는 주식회사 옴니아트를 설립해 패션과 아트의 경계를 넘나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16년부터는 서울예술실용전문학교 패션예술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이러한 다층적 경력은 얼킨 컬렉션에 깊이를 더한다. 학계의 이론적 엄밀함, 산업계의 실용적 감각, 교육자로서의 소통 능력이 하나의 컬렉션 안에서 유기적으로 작동한다. 'Desire Path'라는 컨셉 역시 도시계획학과 건축학에서 사용되는 학술적 용어를 패션의 언어로 번역한 결과물이다.
비계획적 통로, 그 위험하고 외로운 길
'Desire Path'는 도시계획가들이 미처 예측하지 못한 곳에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지나다니며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길을 의미한다. 공식적으로 계획되지 않았고, 관리되지도 보호되지도 않으며, 때로는 위험하기까지 한 그 길을 이성동 디자이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Desire Path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헌화"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철학은 패션 산업 내에서도 의미심장하다. 정해진 트렌드를 따르기보다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려는 신진 디자이너들, 주류 시장의 기준에서 벗어난 체형이나 취향을 가진 소비자들, 성별 이분법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이들 모두가 각자의 Desire Path를 걷고 있다.
해체와 재구성, 불완전함의 완전한 아름다움
얼킨의 옷은 완성되지 않은 듯 보이지만, 그 불완전함은 정교하게 계산된 결과물이다. 레이스의 날것 같은 가장자리, 코듀로이의 불규칙한 질감, 니트의 해진 듯한 디테일, 암 워머와 레그 워머의 비대칭 배치는 모두 '계획되지 않은 아름다움'을 계획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장치다.
이는 현대 패션이 직면한 근본적인 질문과도 연결된다. 완벽하게 봉제되고 정교하게 마무리된 옷만이 아름다운가? 불완전하고 미완성된 것처럼 보이는 옷은 가치가 없는가? 이성동 디자이너는 이러한 질문에 단호히 답한다. 불완전함 속에도 아름다움이 있으며, 오히려 그 불완전함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미학이라고.
학문과 실무, 교육과 창작을 넘나드는 미래
이성동 디자이너의 행보에서 주목할 점은 한 분야에 안주하지 않는 끊임없는 확장이다. 브랜드 경영자이자 디자이너, 학자이자 교육자, 아티스트이자 사업가로서 다양한 정체성을 넘나들며 각각의 영역에서 얻은 통찰을 패션으로 통합해낸다.
'Desire Path'로 제시한 얼킨의 2026 F/W 컬렉션은 단순한 의상 발표를 넘어, 한국 패션이 나아갈 비계획적이지만 필연적인 길을 보여준 상징적 무대였다. 안개 속에서 드러난 해체주의 미학, 불완전함 속에서 발견한 아름다움, 그리고 계획되지 않았지만 가장 인간적인 통로. 이성동과 얼킨이 만들어가는 길 위에서 한국 패션의 새로운 가능성이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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