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이프저니 | 이여름 기자] 존 엘리엇 가디너가 지휘하고 몬테베르디 합창단 및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헨델의 '딕시트 도미누스(Dixit Dominus)'와 '대관식 찬가 1번(Coronation Anthem No. 1)'이 클래식 음악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특별하다. 1976년 10월과 1977년 1월에 녹음되어 1978년 에라토 레이블로 발매된 이 음반은 전 세계적으로 50만 장 이상 판매되며 역사적 연주(원전악기 연주) 운동의 대중화를 이끈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 음반이 발매된 1970년대 후반은 클래식 음악계에서 '역사적 연주 기법(Historically Informed Performance)'이 본격적으로 태동하던 시기였다. 당시까지 헨델의 합창 작품들은 대규모 현대 오케스트라와 낭만주의적 해석으로 연주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가디너는 이러한 관행을 과감히 탈피했다. 작곡가가 활동하던 18세기 초의 악기와 연주 방식을 철저히 재현했다. 바로크 활, 가트 현, 바로크 트럼펫과 팀파니, 그리고 통주저음에는 하프시코드와 오르간을 사용했다. 합창단의 규모도 당시 기준에 맞춰 축소했으며, 투명하고 날렵한 음색을 추구했다.
음악학자는 "가디너의 이 녹음은 헨델 음악이 원래 얼마나 생동감 넘치고 극적이었는지를 대중에게 알린 전환점"이라며 "무거운 낭만주의 스타일에서 벗어나 바로크 본연의 경쾌함과 리듬감을 되살렸다"고 평가했다.
헨델이 1707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22세의 나이에 작곡한 '딕시트 도미누스'는 시편 109편을 가사로 한 합창 작품이다. 약 30분 분량의 이 곡은 8개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극적인 대비와 화려한 성악 기교, 그리고 오케스트라의 역동적인 반주가 돋보인다.
특히 소프라노 솔로가 부르는 '비르감 비르투티스 투애(Virgam virtutis tuae)'의 아리아는 첼로 독주와 어우러지며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글로리아 파트리(Gloria Patri)' 악장에서는 푸가 기법을 활용한 복잡한 대위법이 펼쳐지며 작곡가의 기교를 과시한다.
가디너의 연주는 이러한 곡의 구조를 명쾌하게 드러낸다. 빠른 템포와 날카로운 아티큘레이션, 그리고 합창단의 정확한 딕션은 텍스트의 의미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독창자들의 기량도 뛰어나다. 소프라노 펠리시티 팔머와 마가렛 마샬, 카운터테너 찰스 브렛의 음색은 투명하면서도 표현력이 풍부하다.
음반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대관식 찬가 1번: 자독 더 프리스트(Zadok the Priest)'다. 헨델이 1727년 조지 2세의 대관식을 위해 작곡한 이 곡은 이후 영국 왕실의 모든 대관식에서 연주되는 전통이 됐다. 최근 2023년 찰스 3세의 대관식에서도 울려 퍼졌다.
약 7분 길이의 이 곡은 느리고 장엄한 서주로 시작해 "자독 더 프리스트 앤드 네이던 더 프로펫(제사장 사독과 예언자 나단이)"이라는 가사와 함께 폭발하는 합창으로 전환된다. 오케스트라의 긴 크레셴도 후 터져 나오는 합창은 경외감을 자아낸다.
가디너는 이 곡에서 바로크 트럼펫과 팀파니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왕실의 위엄을 표현했다. 합창단의 웅장하면서도 명료한 사운드는 텍스트의 의미를 극대화하며, 오케스트라의 정교한 앙상블은 작품의 구조미를 돋보이게 한다.
존 엘리엇 가디너가 1964년 케임브리지 대학 재학 중 창단한 몬테베르디 합창단은 역사적 연주 운동의 선구자 중 하나다. 1960년대부터 바로크 음악을 원전 악기와 역사적 연주 기법으로 연주해온 이들은 가디너의 음악적 비전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앙상블로 성장했다.
이 음반에서 몬테베르디 합창단의 앙상블은 탁월하다. 각 성부의 균형이 완벽하고, 딕션은 명료하며, 다이내믹의 대비는 극적이다. 합창단원들의 성악 기량은 솔로 파트에서도 빛을 발한다. 특히 푸가 악장에서 보여주는 정확한 앙트레(입장)와 긴밀한 호흡은 수년간의 협업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몬테베르디 오케스트라 역시 바로크 악기의 특성을 최대한 살렸다. 가트 현의 따뜻한 음색, 바로크 오보에의 날카로운 사운드, 그리고 통주저음 섹션의 섬세한 반주는 합창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음악 평론가는 "이 음반은 가디너와 몬테베르디 앙상블이 절정의 기량을 보여준 시기의 녹음"이라며 "젊은 열정과 음악학적 엄밀함이 결합된 연주"라고 평가했다.
이 음반의 가장 놀라운 성과는 상업적 성공이다. 클래식 음악, 그것도 역사적 연주 기법을 사용한 바로크 합창 작품이 전 세계적으로 50만 장 이상 판매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는 고음악이 더 이상 소수 마니아의 전유물이 아니라 대중적 호소력을 지닌 장르임을 입증했다.
음반의 성공 요인은 여러 가지다. 첫째, 작품 자체의 매력이다. 헨델의 '딕시트 도미누스'와 '자독 더 프리스트'는 바로크 합창 음악 중에서도 가장 극적이고 접근하기 쉬운 작품들이다. 둘째, 가디너의 해석이 학구적이면서도 생동감 넘친다는 점이다. 셋째, 녹음 음질이 당시 기준으로 매우 우수했다.
레코드 산업 전문가는 "1970년대 후반 클래식 음악 시장에서 50만 장 판매는 메이저 레이블의 베스트셀러에 준하는 성적"이라며 "이 음반의 성공은 에라토 레이블이 고음악 전문 레이블로 자리잡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 음반은 발매 후 45년이 넘은 지금도 기준점으로 여겨진다. 이후 등장한 수많은 '딕시트 도미누스' 녹음들은 가디너의 해석과 비교되며, 역사적 연주 기법의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가디너 본인도 이 녹음을 자신의 커리어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꼽는다. 이후 그는 바흐의 '마태 수난곡', 베토벤 교향곡 전곡, 베를리오즈 오페라 등 방대한 레퍼토리를 역사적 연주 기법으로 녹음하며 현대 최고의 지휘자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았다.
음반은 여러 차례 재발매됐으며, 현재는 워너 클래식스를 통해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도 들을 수 있다. 2010년대에는 가디너의 에라토 시절 녹음 전체를 담은 64CD 박스 세트에도 포함되어 그의 예술적 유산을 보존하고 있다.
클래식 음악 저널리스트는 "이 음반은 단순한 명연주 기록을 넘어 음악사의 흐름을 바꾼 혁명적 작품"이라며 "바로크 음악이 박물관의 유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예술임을 증명했다"고 강조했다.
국내에서도 이 음반은 고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필청반으로 통한다. 1980년대 LP로 처음 수입된 이후 CD, 스트리밍 등 다양한 포맷으로 꾸준히 소비되고 있다. 특히 클래식 음악 입문자들에게 바로크 합창 음악의 매력을 소개하는 추천반으로 자주 거론된다.
국내 음악 평론가는 "가디너의 '딕시트 도미누스'는 한국 클래식 애호가들이 고음악을 접하는 관문 역할을 했다"며 "명쾌한 해석과 뛰어난 연주로 바로크 음악에 대한 편견을 깨뜨렸다"고 평가했다.
헨델의 '딕시트 도미누스'와 '자독 더 프리스트'를 담은 이 음반은 단순히 음악적 성취를 넘어 한 시대의 패러다임 전환을 상징한다. 가디너와 몬테베르디 앙상블이 만들어낸 이 역사적 녹음은 앞으로도 클래식 음악사에서 불후의 명반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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