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독일의 클래식 레이블 오르페오가 발굴한 이 음반은 반세기 가까이 잠들어 있던 부르크너 해석의 거장 폴크마르 안드레아에의 유산을 세상으로 불러내며, 부르크너 연주사의 중요한 공백을 메우는 귀중한 역사적 문헌으로 평가받는다.
역사 속에 묻힌 거장의 부활
1990년 오르페오는 자사의 역사적 희귀 음원 전문 시리즈 '오르페오 도르(Orfeo d'Or)'를 통해 반세기 전의 잊혀진 연주를 세상에 내놓았다. 1953년 1월 19일 빈 무지크페라인 대강당(Großer Saal des Wiener Musikvereins)에서 열린 라이브 공연의 모노 녹음을 디지털 마스터링으로 복원한 이 음반의 주인공은, 역사 속에 거의 묻혀 있던 스위스 출신 지휘자 폴크마르 안드레아에다.
오스트리아 라디오가 방송용으로 아카이빙했던 이 연주에 대해 음악학자 쿠르트 블라우코프는 "안드레아에의 지휘 아래 빈 심포니커가 선사하고 오스트리아 라디오 테이프에 보존된 이 연주들은 하나의 음악적 기념비로서의 의의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총 연주 시간 60분 48초. 안드레아에가 생전에 남긴 상업 녹음이 극히 희소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음반이 지닌 역사적 무게는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교향곡의 신 앞에 평생을 바친 지휘자
폴크마르 안드레아에(Volkmar Andreae, 1879~1962)는 스위스 베른에서 태어나 쾰른 음악원에서 수학한 뒤, 1906년부터 1949년까지 43년간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스위스 음악계의 중심축이 된 인물이다. 그의 명성은 알프스를 넘어 유럽 전역에 울려 퍼졌고, 1911년에는 구스타프 말러의 후임으로 뉴욕 필하모닉 음악감독직이 제안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안드레아에는 이를 고사했다. 국제 무대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보다 조용한 예술가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는 20세기의 절반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 부르크너를 지휘했으며, 유럽에서 이 작곡가의 가장 탁월한 해석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았다. 오늘날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는 작곡가 부르크너 생존 시절에 태어난 위대한 지휘자 세대의 일원이었다. 브루노 발터,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오토 클렘페러, 한스 크나퍼츠부쉬, 카를 슈리히트와 함께 20세기 부르크너 연주의 황금 세대를 이룬 인물이 바로 안드레아에였다.
그가 역사의 그늘에 묻힌 데는 그 자신의 선택이 크게 작용했다. 안드레아에는 상업 녹음을 의도적으로 회피했고, 국제적인 지휘자들의 제트셋 라이프스타일을 거부했다. 웅변적인 예술적 옹호가 더 풍요로운 녹음 유산으로 남지 못한 것은 그래서 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그의 부르크너 해석이 지닌 특징은 구조에 대한 확고한 파악이다. 많은 현대 지휘자들이 시도하는 과잉 경건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빠르기는 대체로 경쾌하고 클라이맥스는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강렬하다. 선율은 자연스럽게 펼쳐지고, 그 어느 것도 무겁게 들리지 않는다.
부르크너의 음악사적 위치와 작곡 성향
안톤 부르크너(Anton Bruckner, 1824~1896)는 19세기 후반 교향곡의 정점에 선 거인이다. 당대의 또 다른 교향악의 정점 브람스와 부르크너는 놀랍도록 닮은 점이 많다. 두 사람 모두 베토벤과 슈베르트에 뿌리를 두었으며, 생의 후반기에야 교향곡 작곡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프로그램 교향곡이 시대의 유행이 되던 시절에도 전통적인 4악장 교향곡 형식에 대한 신념을 굳건히 지켰다는 점도 두 사람의 공통점이다.
베토벤 교향곡 9번의 도입부를 연상케 하듯, 부르크너의 교향곡들은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출현한다'. 현악기의 고요한 트레몰로 위로 주제가 서서히 안개에서 걸어나오는 것처럼, 음악은 무(無)에서 유(有)로 진화한다. 현악, 목관, 금관이라는 세 개의 음향적 코어를 성악 앙상블처럼 운용하는 방식, 광대한 아치형 순차 진행, 강렬한 반복들이 그의 교향악 언어를 구성하는 독보적인 특징이다. 그의 제9 교향곡이 하나님께 헌정되었다는 사실이 상징하듯, 부르크너의 교향악 세계는 독실한 신앙심, 오스트리아의 자연 풍경에 대한 깊은 사랑, 그리고 개인적 갈망의 거대한 표현으로 가득하다.
'로맨틱' 탄생의 배경과 파란만장한 작곡 여정
1869년과 1871년, 부르크너는 파리와 런던에서 오르간 독주자로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빈 음악원에 교수로 임용된 직후의 일이었다. 그러나 44세의 부르크너는 세 편의 교향곡과 뛰어난 합창 음악들을 쓴 작곡가임에도 불구하고, 빈에서는 여전히 거의 알려지지 않은 존재였다. 이 런던·파리의 성공이 새로운 창작 열기의 불씨가 되었고, 그 결실 중 하나가 바로 교향곡 4번 '로맨틱'이다.
교향곡 4번은 1874년 1월에 착수하여 그해 11월에 초고가 완성되었고, 이후 1888년까지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쳤다. 많은 이들이 부르크너의 첫 번째 교향악적 걸작으로 여기는 이 작품의 탄생 과정은 완벽주의자 작곡가에게 끝없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1878년에 마지막 두 악장을 완전히 다시 썼고, 1880년에는 피날레를 또다시 전면 개정했다. 오늘날 연주회장에서 가장 자주 들을 수 있는 것이 이 1880년 버전이다. '로맨틱'이라는 부제는 작곡가 자신이 직접 붙인 것으로, 바그너의 ‘로엔그린’과 ‘지크프리트’로 대표되는 당대 낭만주의 예술 운동의 절정기를 그 시대적 배경으로 삼는다.
초연 당일에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1881년 빈 필하모닉 연주가 끝나고 무대로 올라간 부르크너는 지휘자 한스 리히터에게 수고비로 반짝이는 은화 한 닢을 쥐어주었다. 감동받은 리히터는 그 동전을 평생 열쇠고리에 달고 다녔다고 한다. 그것은 부르크너의 소박한 인간미와 자신의 작품이 마침내 빈 청중에게 받아들여졌다는 기쁨이 만들어낸, 음악사에서 가장 따뜻한 장면 중 하나다.
'로맨틱'이 그린 중세의 꿈, 4악장의 세계
부르크너는 이 교향곡에 직접 표제적 해설을 남겼다. "중세 도시—여명—탑에서 아침을 알리는 나팔 소리—성문이 열린다—기사들이 힘찬 말을 타고 들판으로 질주한다—자연의 마법이 그들을 감싼다—숲의 속삭임—새의 노래—이렇게 낭만적인 그림이 전개된다." 이 묘사는 음악의 기원이라기보다는 이미 완성된 음악을 사후에 서술한 것에 가깝지만, 각 악장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여전히 유효한 길잡이가 된다.
1악장 '베베그트, 니히트 추 슈넬(Bewegt, nicht zu schnell)'은 이 음반에서 16분 39초에 걸쳐 전개된다. 현악기의 조용한 떨림 위에서 호른이 마치 중세 도시의 성탑 위에서 울려 퍼지듯 신비로운 독주로 서막을 알리고, 음악은 점차 풍성하고 서정적인 세계로 확장된다. 그 어느 교향곡의 1악장보다도 잊기 힘든 개시다.
25분 01초에 달하는 2악장 '안단테 콰시 알레그레토(Andante quasi Allegretto)'는 이 음반 전체에서 가장 긴 악장이다. 많은 논평가들이 장엄한 종교적 행렬의 분위기를 환기한다고 묘사하는 이 악장에서는 슈베르트의 내성적인 가곡들과 맥을 같이하는 '걷는 리듬'과 향수 어린 서정성이 깊은 울림을 남긴다.
9분 57초의 3악장 '스케르초—베베그트(Scherzo, Bewegt)'는 현악기의 조용한 트레몰로 위로 호른 군(群)이 '사냥 주제(Jagdthema)'를 멀리서 들려오듯 선언하며 막을 연다. 이 개시는 1악장의 방식과 의도적으로 메아리치며 교향곡 전체의 유기적 통일성을 강화하는 탁월한 구조적 장치로 기능한다.
마지막 18분 38초의 피날레 '베베그트, 도흐 니히트 추 슈넬(Bewegt, doch nicht zu schnell)'은 클라리넷과 호른 독주가 하강하는 세 음표의 신비로운 음형으로 문을 두드린다. 1악장 여명 주제의 어두운 대응물로 기능하는 이 동기는 점차 빨라지며 크레센도를 거쳐 오케스트라 전체의 포르티시모로 폭발하고, 마침내 교향곡의 장엄한 대단원을 장식한다.
역사의 심연에서 건져낸 기념비
1953년 빈 무지크페라인의 실황 녹음이 이 음반에 담겼을 때, 안드레아에의 나이는 74세였다. 수십 년에 걸쳐 부르크너를 지휘해온 노년의 지혜와 통찰이 오롯이 응축된 연주다. 오르페오 도르가 이 음원을 발굴하여 복원한 것은 단순한 과거의 재발매가 아니다. 푸르트벵글러와 크나퍼츠부쉬로 대표되는 독일·오스트리아 전통과는 결이 다른, 스위스 출신 지휘자의 독자적이고 절제된 부르크너 해석을 망각의 강으로부터 구출해낸 것이다.
빈 무지크페라인 대강당의 음향 안에서 펼쳐지는 이 연주는, 부르크너 교향곡 해석사의 중요한 한 챕터를 복원하는 음악적 문헌으로서 오늘도 그 가치를 잃지 않고 있다. 역사는 종종 위대한 예술가를 그 생전에 충분히 조명하지 못한다. 폴크마르 안드레아에가 그러했다. 이 음반 한 장이, 그 오랜 빚을 일부나마 갚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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