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리]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의 완성 — 레나 노이다우어·파울 리비니우스, '겸손한 거장'의 4시간

고요비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6-09-19 15:21:49

레나 노이다우어와 파울 리비니우스의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전집. 사진 | CPO

[K라이프저니|글·사진 고요비 기자] 바이올리니스트 레나 노이다우어(Lena Neudauer)와 피아니스트 파울 리비니우스(Paul Rivinius)가 완성한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음반은 3장의 CD에 걸쳐 총 229분 21초, 약 3시간 49분에 이른다.

전집은 2022년 1월과 7월 녹음을 거쳐 2025년 6월 유럽에서 발매됐으며, 커버에는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명화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를 사용해 눈길을 끈다.

15년에 걸친 여정, 하나의 음반에 담기다

베토벤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는 빈에서 활동하던 1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작곡된 작품군으로, 이 장르의 이정표이자 바이올린-피아노 이중주 편성의 정수로 꼽힌다. 초기작인 Op.12의 세 곡은 젊은 작곡가의 자신감이 그대로 묻어나는 작품이고, 1801년에 나온 '봄 소나타(Spring Sonata)' Op.24는 기존의 3악장 구성을 깨고 처음으로 4악장 편성을 택한 곡으로, 유려하고 장난기 어린 순간과 불안하고 어두운 순간이 공존한다.

이후 극단적인 정서의 대비와 격정적인 음악 어법으로 유명한 '크로이처 소나타(Kreutzer Sonata)' Op.47은 이 장르의 정점으로 평가받으며, 연주자에게 기술적 완성도뿐 아니라 강렬한 창조적 의지를 요구하는 곡이다. 반면 마지막 곡인 10번 소나타 Op.96은 화려함을 걷어낸 채 극도로 담백하며, 베토벤의 제자 카를 체르니의 기록에 따르면 '부드러움과 감정'을 필요로 하는 작품이라 전해진다.

10곡을 한 세트로 묶어 발매한 이번 음반의 의미는 단순한 '전집화'에 그치지 않는다. 낱장으로 순차 발매되는 시리즈와 달리, 완결된 전집은 청자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 듣기를 요구하며, 그 과정에서 개별 소나타를 따로 들을 때는 보이지 않던 새로운 통찰과 발견을 안겨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이다우어와 리비니우스, 오랜 파트너십이 빚어낸 균형

이번 전집의 핵심은 두 연주자 사이의 오랜 호흡이다. 노이다우어와 리비니우스는 2013년 모리스 라벨의 작품을 함께 녹음한 이래 십수 년째 실내악 파트너십을 이어온 사이로, 이번 작업에서도 그 신뢰를 바탕으로 바이올린과 피아노 사이의 팽팽한 대화를 완성해냈다. 두 사람은 곡마다 드러나는 역동적 뉘앙스를 세심히 포착하면서 무곡적 요소와 내밀한 순간을 두루 강조하고, 베토벤 특유의 재기 넘치는 유머와 리듬적 복잡성, 장식음과 선율적 아름다움까지 놓치지 않았다는 평이다. 무엇보다 4시간에 가까운 전곡을 끝까지 밀도 있게 이끌어가는 지구력도 이들의 강점으로 꼽힌다.

뮌헨 출신의 노이다우어는 세 살에 바이올린을 시작해 열한 살에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에서 수학했고, 열다섯 살이던 1999년 아우크스부르크 레오폴트 모차르트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 영재 코스 대신 신중한 커리어를 택한 그녀는 2010년 발매한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슈만 음반으로 국제 클래식 음악상(ICMA) 콘체르토 부문을 수상했고, 2016년부터 뮌헨 음악·공연예술대학교 바이올린 교수로 재직 중이다.

베토벤 해석에서는 이미 정평이 나 있는데, 2020년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아 녹음한 바이올린 협주곡과 로만체 음반에 대해 룩셈부르크 매체 타게블라트는 노이다우어의 연주에서 어두운 톤이 작품의 거친 단면을 드러내다가도 다음 순간 서정적이고 노래하는 듯한 연주로 전환된다고 평했으며, 포노포룸 역시 그의 절제된 비브라토와 수정처럼 맑은 음색을 높이 평가한 바 있다.

파울 리비니우스는 1970년 뮌헨에서 태어난 피아니스트로, 다섯 살에 피아노를 시작해 자르브뤼켄·프랑크푸르트·뮌헨의 음악대학을 거쳤고, 피아노와 프렌치호른을 모두 다루며 실내악 연주자이자 성악 반주자로 특히 이름이 높다. 1996년 클레멘테 트리오에 합류해 1998년 ARD 국제 콩쿠르에서 주요 상을 받았고, 카네기홀과 위그모어홀 무대에도 섰다. 이후 형제들과 결성한 리비니우스 피아노 콰르텟, 그리고 2004년부터 몸담은 모차르트 피아노 콰르텟을 통해 국제적으로 활동을 넓혀왔다. 

시대 연주 어법에 기반한 '절제의 미학'

영국의 권위 있는 현악기 전문지 '더 스트라드(The Strad)'는 2025년 12월호에서 이 음반을 '더 스트라드 추천(The Strad Recommends)' 코너에 선정하며 "절제된 거장다움이 이토록 설득력 있는 감상을 만들어낸다"고 평했다. 평론가 카를로스 마리아 솔라레는 이 음반을 들으며 베토벤의 열 개 바이올린 소나타와 다시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하면서, '봄 소나타', '크로이처 소나타', C단조 Op.30-2 같은 익숙한 명곡들은 물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곡들까지도 오랜 친구처럼 반갑게 느껴졌다고 적었다. 그는 이런 감동의 원천이 노이다우어와 리비니우스의 꾸밈없는 음악성에 있다며, 두 사람이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적 효과를 좇기보다 악보가 요구하는 바에 철저히 충실한 해석을 들려준다고 분석했다. 

특히 시대 연주 어법의 흔적도 뚜렷하다. 솔라레는 노이다우어가 비브라토의 폭을 세심하게 조절하고 기본적으로 낮은 포지션을 고수하되 교조적이지 않게 예외를 두는데, 그 예로 '봄 소나타' 아다지오 악장에서 내림사장조로 벗어나는 대목에서는 D현 고음역의 은은한 음색을 살려낸다고 짚었다. 이어 모든 반주 음형까지 표현력을 짜내는 좀 더 개입적인 해석도 나름의 매력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두 사람의 예술성이야말로 베토벤 소나타 사이클이라는 우주를 안내하는 믿음직한 길잡이라고 결론지었다. 

독일어권 클래식 매체 피치카토(Pizzicato)의 우베 크루쉬 역시 호평을 보탰다. 그는 베토벤이 Op.12의 세 곡을 표지에 굳이 '쳄발로 혹은 포르테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로 표기하며 건반악기를 앞세운 점을 짚으면서도, 정작 음악 자체는 미래를 향한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고 짚었다. 노이다우어와 리비니우스가 오랜 음악적 파트너십에서 길어 올린 '두 사람 사이의 친밀함'이 연주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는 분석이다. 많은 매체들은 두 사람의 연주를 '슈퍼소닉'이라 표현하며, 소나타들을 우아한 구조로 빚어내는 동시에 균형 잡힌 상호작용을 완성해냈다고 소개했다.

기획 의도 — '작곡가의 정신 안에서'

이번 음반의 부제는 '작곡가의 정신 안에서(In the spirit of the composer)'다. 노이다우어는 "내가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연주할 때, 연주자는 자신의 내면을 아주 많이 드러내게 된다. 가장 깊은 속마음을 바깥으로 꺼내 보이는 것"이라는 말로 이번 프로젝트의 지향점을 설명했다. 개별 소나타가 아닌 전곡을 한 세트로 묶어낸 기획은, 15년에 걸쳐 조금씩 다른 개성으로 쓰인 열 개의 작품을 하나의 연속된 서사로 재구성해 청자에게 들려주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음반 커버에 사용된 낭만주의 회화 이미지 역시 고독한 방랑자가 안개 낀 풍경을 굽어보는 구도로, 베토벤 음악이 품은 내면 성찰적 정서와 맞닿아 있다.

음악사 속 베토벤, 그리고 이 음반이 남기는 것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들은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 넘어가는 길목에 놓인 작품군으로, 하이든·모차르트가 다져놓은 형식적 틀 위에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대등한 파트너로 세운 점에서 장르사적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피아노가 주도하고 바이올린이 반주에 머물던 이전 시대의 관습에서 벗어나, 두 악기가 대화하듯 주고받는 구조를 완성한 것이 베토벤의 성취다. 이 흐름은 이후 브람스·프랑크·포레 등 후대 작곡가들의 바이올린 소나타로 이어지는 하나의 계보를 열었다.

229분이 넘는 연주 시간을 견인해가는 이번 전집은, 화려한 기교의 과시가 아니라 악보에 대한 정직한 신뢰를 통해 베토벤이 그리려 한 인간적 드라마—젊은 날의 패기, 봄날의 생동감, 크로이처의 격렬한 갈등, 그리고 노년의 관조—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평단이 공통적으로 짚는 지점도 바로 이 '절제를 통한 설득력'이며, 그것이 이 음반을 단순한 레퍼토리 완주 이상의 기록으로 남게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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