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 헤드리스(Headless) 초상, 근대를 품에 안다 — 가브리엘레 뮌터의 '전차(電車) 위의 정물(쇼핑 후)'

고요비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6-09-18 07:30:24

가브리엘레 뮌터의 '전차(電車) 위의 정물(쇼핑 후)'(전도) 사진 | 구겐하임 미술관

[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캔버스 속 여인에게는 얼굴이 없다. 짙은 청록빛 드레스와 새하얀 장갑을 낀 두 손, 그리고 무릎 위에 가지런히 놓인 색색의 꾸러미들만이 그녀의 존재를 증언한다.

독일 표현주의 화가 가브리엘레 뮌터(1877~1962)가 그린 작품 '전차 위의 정물(쇼핑 후)'은 초상화이면서 동시에 초상화이기를 거부하는, 그녀 특유의 회화적 역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칸딘스키의 그늘 밖에서 — 청기사의 또 다른 얼굴

베를린에서 태어난 뮌터는 미술학교 시절 바실리 칸딘스키를 만나며 예술적 전환점을 맞았다. 두 사람은 연인이자 동료로서 뮌헨의 예술가 모임을 이끌었고, 이는 훗날 독일 표현주의의 산실이 된 청기사파의 토대가 되었다. 바이에른 알프스 자락의 소도시 무르나우에 매료된 뮌터는 그곳에 집을 마련했고, 두 사람은 그 집의 벽면에 민속 문양을 그려 넣으며 일상 자체를 예술로 바꾸어놓았다.

그러나 화려한 동반자 관계의 이면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칸딘스키의 명성이 날로 높아지는 동안 뮌터는 결혼하지 않은 연인이자, 거장의 그늘에 가려진 여성 화가라는 불안정한 위치를 감내해야 했다. 오늘날 미술사는 그녀를 '칸딘스키의 연인'이라는 수식어에서 떼어내, 청기사파의 독자적 창립 멤버이자 독일 표현주의 형성기의 핵심 인물로 다시 쓰고 있다.

검은 윤곽선 안에 갇힌 색채

뮌터의 화법은 마티스의 야수파, 그리고 형태를 굵은 윤곽선으로 구획하는 구획주의적 전통의 영향을 짙게 받았다. 납작하게 펼쳐진 색면을 검은 선으로 감싸는 이 화법은 입체감과 원근을 과감히 포기하는 대신, 형태와 색채 자체의 정서적 울림을 전면에 내세운다.

이 작품에서도 그 특징은 선명하다. 화면 상단에는 붉은 꽃과 오이처럼 뭉뚱그려진 녹색 형태들이 배치되어 있고, 그 아래로 짙은 청록색 옷을 입은 상반신이 캔버스를 가로지르고, 흰 장갑을 낀 두 손이 화면 중심을 붙잡는다. 손 아래로는 리본으로 묶인 소포가, 그 밑으로는 노끈에 매달린 물방울무늬 손가방이 걸려 있다. 가방 표면에는 초록 잎과 레몬 한 알이 그려져 위쪽 정물과 은근히 화답한다.

일상의 스쳐 지나가는 한 장면을 찰나의 정물로 바꾸어놓은 이 작업은 뮌터만의 독창성을 드러낸다. 여인의 손에 들린 화분과 손가방의 꽃 무늬가 서로 호응하며 짜임새를 만들어내지만, 정작 인물의 얼굴과 머리는 과감히 잘려나가 있다. 이 극단적인 크로핑은 그림이 스스로 '초상화'라는 이름표를 배반하도록 만든다.

가브리엘레 뮌터의 '전차(電車) 위의 정물(쇼핑 후)'(부분)) 사진 | 구겐하임 미술관

이름 없는 여성, 익명의 도시 

이 작품이 지닌 힘은 무엇을 '보여주지 않는가'에 있다. 인물의 정체와 장소는 끝내 감추어진 채, 오직 은밀한 단서들 — 드레스의 색, 장갑의 흰빛, 무릎 위 꾸러미들 — 을 통해서만 짐작될 뿐이다. 굵은 윤곽선들은 자연과 상업, 그리고 근대적 삶의 복잡성을 하나의 화면 안으로 이어 붙인다.

전차라는 공간 자체가 상징적이다. 근대 도시에 전차가 놓이면서 여성들은 처음으로 혼자 도시를 이동하고 소비하는 주체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뮌터는 그 익명의 순간 —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누구라도 될 수 있는 근대 여성의 초상 — 을 얼굴이 아닌 사물들로 그려낸다. 이는 단순한 풍속화가 아니라, 여성의 정체성이 소비와 이동성 속에서 어떻게 파편화되고 또 재구성되는지를 묻는 회화적 질문이다.

겨울 뒤에 봄이 걸려 있다 

화면을 오래 들여다보면 이상한 온도차가 느껴진다. 배경의 짙은 청록과 검푸른 색조는 창밖의 겨울, 혹은 어떤 무게감 있는 침묵을 연상시키는 반면, 여인의 손과 무릎 위 꾸러미들의 노랑과 분홍, 붉은 꽃송이는 봄날의 온기를 품고 있다. 얼굴이 없는데도 그림은 쓸쓸하지 않다. 오히려 어딘가 다정하다 — 장갑 낀 손이 조심스레 화분을 감싸 쥔 그 몸짓 하나로, 보는 이는 이름 모를 이 여인이 방금 지나온 골목과 꽃집, 그리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저녁 식탁까지 상상하게 된다. 헤드리스 초상이 주는 것은 상실감이 아니라, 누구나 그 자리에 앉을 수 있다는 조용한 초대다.

표현주의를 넘어 

뮌터의 회화는 동시대와 후대 화가들에게 실질적인 흔적을 남겼다. 20세기 초 뮌터가 남긴 뮌헨은 이곳의 새로운 예술적 흐름이 프랑스의 지성주의적 운동보다 오히려 더 진지하고 효과적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했다. 이후 그의 작품들에서는 굵은 검은 윤곽선으로 둘러싸인 뮌터식 색면 기법의 메아리가 뚜렷이 발견된다.

무엇보다 뮌터는 칸딘스키가 구상에서 완전한 추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동행하며, 형태의 단순화와 색채의 자율화라는 미학적 토대를 함께 다졌다. 훗날 그녀가 소장하고 있던 칸딘스키와 동료 화가들의 작품 일체를 미술관에 기증한 일은, 독일 표현주의 연구의 물적 기반을 마련한 결정적 사건으로 남아 있다. 오랫동안 '거장의 연인'으로만 조명되던 그녀는, 최근 세계 주요 미술관들의 대규모 회고전을 통해 독자적인 근대 회화사의 한 축으로 다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시장이 뒤늦게 알아본 값어치

미술 시장에서 뮌터의 위치는 최근 수년 사이 눈에 띄게 상승했다. 그녀의 작품 중 최고가는 경매에서 1200만 달러(한화 약 166억 원)를 훌쩍 넘겼고, 대표작 한 점은 런던 경매에서 200만 달러(한화 약 28억 원)에 육박하는 가격에 낙찰되며 화제를 모았다. 다만 같은 무대에서 칸딘스키의 작품이 수천만 달러대에 거래되는 것과 비교하면, 두 사람 사이의 시장 격차는 여전히 뚜렷하다. 미술사적 재평가가 시장가에 온전히 반영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가브리엘레 뮌터의 '전차(電車) 위의 정물(쇼핑 후)'(부분) 사진 | 구겐하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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