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리] 텔레만 '마태수난곡', 바흐 이전에 텔레만이 있었다!

고요비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6-01-22 12:27:02

1730년 작품의 역사적 연주, 고음악 해석의 정수를 보여줘 텔레만의 '마태수난곡(1730)' 사진 | Christophorus

[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독일 Christophorus 레이블이 발매한 게오르크 필리프 텔레만(Georg Philipp Telemann, 1681-1767)의 '마태수난곡(Matthäus-Passion, 1730)' 총 117분 34초에 달하는 대작으로, 바흐의 마태수난곡 그늘에 가려져 있던 텔레만의 또 다른 걸작이다.

바흐와 동시대, 또 다른 거장의 수난곡

이 음반의 가장 큰 의미는 바흐의 마태수난곡(1727)과 거의 같은 시기에 작곡된 텔레만의 마태수난곡(1730)을 통해, 18세기 초 독일 루터교 수난곡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바흐의 작품이 신학적 깊이와 음악적 복잡성으로 유명하다면, 텔레만의 수난곡은 보다 명료하고 극적이며 대중적인 접근을 보여준다.

1730년은 텔레만이 함부르크 음악감독으로 활동하던 전성기였다. 당시 그는 독일어권에서 가장 유명하고 생산적인 작곡가로, 바흐보다 훨씬 더 높은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 이 마태수난곡은 함부르크의 5개 주요 교회를 위해 작곡된 일련의 수난곡 중 하나로, 성금요일 예배를 위한 작품이다.

텔레만은 평생 46개의 수난곡을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바흐의 5개(현존하는 것은 2개)와 비교하면 엄청난 양이다. 이 중 1730년 마태수난곡은 텔레만 수난곡의 성숙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레치타티보와 아리아, 코랄이 균형 있게 배치되어 있다.

역사적 연주 관행의 모범

지휘자 루페르트 고트프리트 프리베르거(Rupert Gottfried Frieberger)는 이 녹음에서 18세기 연주 관행에 충실한 해석을 선보인다. 바로크오케스터 뮌헨(Barockorchester München)은 고악기(period instruments)를 사용해 텔레만 시대의 음색을 충실히 재현한다.

특히 바바라 훅(Barbara Hook)의 쳄발로와 잉게마르 멜셰르손(Ingemar Melchersson)의 오르간이 만들어내는 통주저음은 작품 전체에 안정적인 화성적 토대를 제공하며, 18세기 교회음악의 전례적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슐레글러 합창단(Collegium Vocale der Schlägler Musikseminare)은 명료한 딕션과 균형 잡힌 앙상블로 텔레만 음악의 투명한 짜임새를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합창단의 규모는 당시 교회 합창단의 편성을 고려한 것으로, 실내악적 섬세함과 극적 표현력을 동시에 구현한다.

탁월한 솔리스트 진용

테너 마르틴 클리트만(Martin Klietmann)은 복음사가(Evangelist) 역할을 맡아 수난 이야기를 극적이면서도 명료하게 전달한다. 복음사가는 수난곡의 내레이터로서, 텔레만은 이 역할에 표현력 풍부한 레치타티보와 함께 여러 개의 아리아도 배정했다. 클리트만은 서사적 부분에서는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아리아에서는 깊은 감정을 표현하는 이중적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한다.

베이스 안드레아스 레베다(Andreas Lebeda)는 예수 역을 맡아 위엄 있으면서도 인간적인 모습을 동시에 보여준다. 텔레만의 예수는 바흐의 작품에서처럼 항상 현악 반주를 동반하는 것은 아니지만, 레베다는 간결한 선율 속에서도 깊은 영성을 전달한다.

소프라노 게르트라우트 부르칭거(Gertraud Wurzinger)는 여러 역할을 소화하며 다채로운 음색을 선보인다. 그녀는 아리아 I뿐만 아니라 마리아와 빌라도의 아내 역도 맡아, 각 인물의 심리적 상태를 섬세하게 표현한다. 특히 빌라도의 아내가 남편에게 예수를 석방하라고 경고하는 장면에서 그녀의 극적 표현력이 빛을 발한다.

소프라노 크리스티네 퓌슬(Christine Füssl)은 아리아 II와 또 다른 마리아 역을 맡아 부르칭거와 대비를 이루며, 두 소프라노의 음색 차이가 작품에 다채로움을 더한다.

바리톤 베르톨트 브란트슈테터(Berthold Brandstetter)는 유다, 빌라도, 대제사장 가야바 등 여러 역할을 맡아 각 인물의 성격을 명확히 구분한다. 특히 유다의 배신과 후회, 빌라도의 정치적 고뇌를 설득력 있게 표현한다.

테너 하루미치 후지와라(Harumichi Fujiwara)는 베드로 역을 맡아 예수를 세 번 부인한 후 통곡하는 장면을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베이스 프리드리히 오프너(Friedrich Ofner)는 아리아와 "믿는 영혼(Gläubige Seele)" 역할을 통해 관조적이고 명상적인 음악을 담당한다.

텔레만, 바흐를 능가했던 거장

게오르크 필리프 텔레만(1681-1767)은 바로크 시대 가장 다작한 작곡가 중 한 명으로, 그의 작품 목록은 3,600곡이 넘는다. 바흐보다 4년 먼저 태어난 텔레만은 생전에 바흐보다 훨씬 더 높은 명성을 누렸다.

1721년 바흐가 라이프치히 토마스교회 칸토르 자리에 지원했을 때, 첫 번째 후보는 텔레만이었다. 텔레만이 이 자리를 거절한 후에야 바흐에게 기회가 돌아왔다. 이는 당시 텔레만의 위상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보여주는 일화다.

텔레만의 음악은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폴란드 등 다양한 유럽 음악 양식을 결합한 국제적 성격이 특징이다. 그는 "혼합 취미(vermischter Geschmack)"라는 개념을 추구했는데, 이는 각 나라의 음악적 장점을 통합하려는 시도였다.

바흐의 음악이 대위법적 복잡성과 신학적 깊이를 추구했다면, 텔레만의 음악은 명료한 선율과 이해하기 쉬운 구조, 극적 효과를 중시했다. 이는 텔레만이 오페라 작곡가로도 활동했던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의 수난곡에는 오페라적 극성이 두드러진다.

텔레만은 1721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함부르크의 음악감독으로 재직하며, 5개 주요 교회의 음악을 총괄했다. 그는 매년 성금요일을 위한 수난곡을 작곡해야 했는데, 이는 엄청난 창작력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텔레만은 이 과제를 46년 동안 수행하며 독일 루터교 수난곡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1730년 함부르크, 수난곡의 전성기

1730년은 텔레만이 함부르크에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치던 시기였다. 함부르크는 당시 자유도시로서 상업과 문화가 융성했으며, 시민들의 음악적 취향이 높았다.

텔레만의 마태수난곡은 마태복음 26-27장의 수난 이야기를 텍스트로 사용하며, 여기에 당대 시인들이 쓴 아리아 가사와 전통적인 루터교 코랄을 결합했다. 이러한 구조는 당시 수난곡의 전형적인 형식으로, 성서 본문의 극적 전개, 개인적 명상의 아리아, 회중의 참여를 위한 코랄이 유기적으로 배치된다.

작품은 예수의 최후의 만찬부터 십자가 처형과 장례까지를 다루며,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와 체포, 베드로의 부인, 유다의 배신까지를 다루고, 2부는 빌라도 앞에서의 재판, 십자가형, 죽음과 장례를 그린다.

텔레만은 이 작품에서 각 장면의 극적 긴장감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군중들의 함성("십자가에 못 박으시오!")은 강렬한 합창으로, 베드로의 통곡은 슬픈 아리아로, 예수의 마지막 말씀은 엄숙한 레치타티보로 표현된다.

수난의 보편적 의미를 노래하다

텔레만의 마태수난곡이 표현하고자 한 것은 단순히 역사적 사건의 재현이 아니라, 예수 수난의 신학적 의미와 개인적 적용이었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죄의 고백, 속죄에 대한 감사, 십자가의 의미에 대한 명상이다.

레치타티보(성서 본문)는 수난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전달하지만, 아리아는 이 이야기에 대한 개인적 반응을 표현한다. "믿는 영혼"이라는 알레고리적 인물은 관객을 대신해 사건의 의미를 성찰하고, 감정적 반응을 노래한다.

코랄은 회중의 참여를 상징하며, 수난 이야기가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신자들의 신앙과 직접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텔레만은 전통적인 루터교 코랄 선율을 사용하되, 화성적으로 풍부하게 편곡해 감정적 깊이를 더했다.

특히 예수의 십자가 죽음 이후 나오는 아리아들은 슬픔, 경외감, 감사가 교차하는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한다. 텔레만은 여기서 오페라에서 익힌 극적 기법을 활용해, 각 정서를 음악적으로 생생하게 구현한다.

십자가형 장면에서는 어두운 화성과 불협화음이 고통을 표현하지만, 예수의 죽음 이후에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음악이 흐르며 구원의 완성을 암시한다. 마지막 합창과 코랄은 슬픔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며, 부활에 대한 기대를 담고 있다.

바로크 수난곡 전통의 재발견

텔레만의 마태수난곡은 바흐의 작품과 비교할 때, 보다 직접적이고 극적인 접근을 보여준다. 바흐가 복잡한 대위법과 상징주의로 신학적 깊이를 추구했다면, 텔레만은 명료한 선율과 극적 효과로 청중의 즉각적인 감정적 반응을 이끌어낸다.

이러한 차이는 두 작곡가의 성향과 활동 무대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바흐는 주로 교회와 궁정을 위해 작곡했지만, 텔레만은 오페라 극장과 공개 연주회에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텔레만의 음악은 보다 대중적이고 접근 가능한 특성을 지니며, 이는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의 미학과도 맞닿아 있다.

이 음반은 1985년 초판이 발매된 후 2010년 재발매되었는데, 이는 고음악 연주 운동의 발전과 함께 텔레만 음악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바흐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텔레만의 수난곡들이 재발견되면서, 18세기 초 루터교 수난곡 전통의 다양성과 풍부함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Christophorus 레이블의 이 음반은 텔레만 수난곡의 예술적 가치를 재확인시키고, 바흐 일변도였던 바로크 수난곡 연주 레퍼토리에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역사적 연주 관행에 충실한 연주와 탁월한 솔리스트 진용이 빚어낸 이 녹음은, 텔레만이라는 위대한 작곡가를 재발견하는 여정의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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