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리] 'Bruckner·Beethoven의 수호자' 지휘자 헤르베르트 블롬스테트(Herbert Blomstedt) 별세…향년 99세

고요비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6-11-05 12:15:55

Conductor Herbert Blomstedt, Last Great Keeper of the Austro-German Tradition, Dies at 99 말년의 헤르베르트 블롬스테트. 사진 | 슈타츠카펠레 드레스덴

[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악보에 대한 충실함과 절제된 품격으로 70년 넘게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를 이끌어온 지휘자 헤르베르트 블롬스테트가 4일(현지시간) 스웨덴 예테보리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99세.

소속 매니지먼트사 퀸스틀러세크레타리아트 암 가스타이크가 부고를 공식 발표했다. 사인은 숙환으로 알려졌다. 그와 오랫동안 작업한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측도 별세 소식을 전했다. 

세계에서 가장 나이 든 현역 지휘자…마지막까지 지휘대에

블롬스테트는 매년 '현역 최고령 지휘자'라는 타이틀을 스스로 경신해 온 인물이다. 올해 4월에도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무대에 섰고, 같은 달 베를린 필하모닉 앞에서 브루크너를 지휘해 "관객이 결코 잊지 못할 연주회"(베를리너 차이퉁)라는 평을 받았다. 디트로이트 심포니에서도 올해 지휘봉을 잡았다. 

2022년과 2023년 낙상, 2025년 중이염으로 일부 공연이 취소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일정을 다시 채웠다. 근래에는 의자에 앉아 지휘했다. 내년 7월 100세 생일을 앞두고 덴마크 국립 방송교향악단과 기념 연주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의 올해 5월, 내년 1월 공연은 건강 문제로 취소됐다.

미국 태생 스웨덴인…푸르트벵글러의 사인을 받던 소년

블롬스테트는 1927년 7월 11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에서 스웨덴 출신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선교사였고, 두 살 때 가족과 함께 예테보리에 정착했다. 피아노, 바이올린, 오르간을 배우며 자란 소년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이름을 외울 만큼 교향악에 빠져 있었다. 거장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예테보리를 찾았을 때는 수줍음 많던 그가 용기를 내 사인을 청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1945년 스웨덴 왕립음악원에서 지휘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후 다름슈타트에서 존 케이지, 잘츠부르크에서 이고르 마르케비치, 줄리아드에서 장 모렐을 사사했다. 1953년에는 탱글우드에서 레너드 번스타인에게 배우고 쿠세비츠키 지휘상을 받았다. 이듬해 스톡홀름 필하모닉에서 정식 데뷔했다.

드레스덴, 샌프란시스코, 라이프치히…거장의 궤적

지휘자로서 이름을 세계에 알린 무대는 독일과 미국이었다. 1975년부터 10년간 슈타츠카펠레 드레스덴을 이끌었고, 1985년부터 1995년까지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의 음악감독을 맡았다. 1998년부터 2005년까지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로 재직했다. 이 밖에 오슬로 필하모닉, 덴마크 국립 방송교향악단, 스웨덴 방송교향악단, 북독일 방송교향악단(NDR) 등을 거쳤고, 다수 악단의 명예지휘자로 위촉됐다. 2017년에는 90세를 앞두고 라이프치히시 명예 메달을 받았다.

특히 샌프란시스코 시절의 평가가 높다. 전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평론가 조슈아 코스먼은 블롬스테트가 규율이 부족했던 악단을 더 선명하고 날렵한 팀으로 바꿔놓았다고 돌아봤다. 이 시기 악단은 국제 투어와 음반 녹음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됐고, 그는 이를 두고 악단이 "무대에 설 준비를 갖췄다"고 평했다. 블롬스테트가 2003년 객원으로 돌아왔을 때 악단은 반가움을 드러내며 최상급 연주로 화답했다고 한다.

두 번의 베토벤 전곡, 브루크너, 북유럽 레퍼토리

그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가장 먼저 꼽히는 것은 베토벤이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교향곡 9곡을 각각 한 차례씩, 모두 두 번 녹음했다. 뉴욕타임스는 2022년 두 전집을 두고 절제된 품위 속에 깃든 영적 힘이 돋보인다고 평했다. 특히 5번은 폭력적이기보다 자비로운 공감을 느끼게 한다고 짚었다. 

이 밖에 브루크너, 브람스, 슈베르트, 하이든, 말러 등 독일·오스트리아 교향곡 계보를 아우르는 음반이 이어졌다. 샌프란시스코 시절 데카(Decca)에 남긴 닐센과 시벨리우스 등 북유럽 작곡가 녹음도 대표 음반으로 꼽힌다.

'밀어붙이지 않고 풀어놓는' 음악

블롬스테트의 해석은 구조에 대한 명징한 이해와 악보에 대한 엄격한 충실함으로 요약된다. 가디언의 마틴 케틀은 2022년 공연 평에서 노년의 거장에게서 흔히 보이는 장중함이나 느림이 그에게는 없다고 썼다. 그는 음악을 억지로 끌고 가거나 강조하지 않고 풀어놓으며, 박동과 프레이징, 다이내믹에 대한 집중이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휘대 위에서도 과장된 제스처나 스타 의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동작은 절제되고 경제적이었다. 한편 지나친 이성과 신중함이 일부 연주에서 열정과 자유로움을 억누른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는 음악을 "사회를 위한 거대한 윤리적 힘"이라고 믿었다. 베토벤에 대해서는 작곡가 개인을 넘어 모든 인간의 고통을 담고 있어서 시대를 넘어 살아남는다고 말했다. 

안식일을 지킨 지휘자

독실한 제7일안식일예수재림교 신자였던 그는 술, 커피, 담배, 육식을 멀리했다. 젊은 시절 안식일인 토요일에는 리허설을 하지 않는 원칙을 고수해 일자리를 몇 번 잃기도 했다고 스스로 털어놓았다. 다만 연주회 자체는 지휘했다. 위대한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신에게 영광을 돌리는 영적 교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2004년 인터뷰에서 자신을 구도자로 칭했다. 예술가의 궁극적 목표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음악 속에서 중요한 무엇을 전하는 것이라고 했다.

"일하지 않으면 사는 것이 아니다"

블롬스테트는 은퇴를 나이의 문제로 보지 않았다. 호주 ABC와의 인터뷰에서는 음악이 너무 좋아서 놓을 수 없다고 했다. 98세이던 지난해 CBS 선데이 모닝에서는 "일하지 않으면 나는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케스트라 앞에 설 때마다 불꽃이 다시 타오른다며 피곤하지 않다고 했다. 기억되고 싶은 모습으로는 겸손하되 진실하고 꾸밈없는 사람을 꼽았다.

아내 발트라우트도 재림교 신자이자 음악학 학위 소지자로, 2003년 74세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이후 블롬스테트는 스웨덴 외레브로 인근으로 돌아와 딸들과 가까이 살았다. 유족으로 네 딸이 있다.

klifejourney2025@gmail.com

[ⓒ K라이프저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