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 모이즈 키슬링 '장 콕토의 초상' - 몽파르나스가 빚어낸 우정의 기록

고요비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6-02-11 10:30:35

에콜 드 파리의 대표 화가, 키슬링 모이즈 키슬링 '장 콕토의 초상'

[K라이프저니|글·사진 고요비 기자] 모이즈 키슬링(1891-1953)은 20세기 초 파리로 모여든 국제적 예술가 집단 '에콜 드 파리(École de Paris)'의 핵심 인물이다.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유대인 가정에 태어난 그는 1910년 19세의 나이로 파리에 정착해 몽파르나스의 예술가 공동체에 합류했다.

키슬링은 파리 미술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모딜리아니, 샤갈, 수틴, 후지타 등과 함께 에콜 드 파리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도, 자신만의 뚜렷한 화풍을 구축했다. 그는 입체주의의 구조적 엄격함과 야수파의 색채 감각을 흡수하면서도, 언제나 형상성과 장식성을 유지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 외인부대에 자원입대해 부상을 입었고, 이후 프랑스 시민권을 획득했다. 이러한 경험은 그를 파리 예술계의 중심부에 더욱 깊이 뿌리내리게 했다. 그의 몽파르나스 작업실은 피카소, 마티스, 아폴리네르, 콕토 등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드나드는 살롱이 되었다.

키슬링은 특히 초상화가로 명성을 얻었다. 그의 초상화들은 모델의 외모뿐 아니라 내면의 성격과 시대의 분위기를 포착하는 능력으로 높이 평가받았다. 강렬한 색채와 장식적 패턴, 그리고 예리한 심리적 통찰이 결합된 그의 초상화는 1920-30년대 파리 사교계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천재 시인을 담은 화려한 실내

1916년 작 '장 콕토의 초상(Portrait of Jean Cocteau)'은 키슬링의 초상화 기법이 완성되어가던 시기의 걸작이다. 이 작품은 단순한 초상화를 넘어 1910년대 파리 아방가르드 예술계의 분위기를 압축적으로 담아낸 문화적 기록이다.

화면 중앙에는 26세의 젊은 장 콕토가 붉은 벨벳 의자에 앉아 있다. 그는 회색 정장에 흰 셔츠, 검은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으며, 한 손은 무릎 위에, 다른 손은 의자 팔걸이에 올려놓은 채 정면을 응시한다. 그의 표정은 차분하면서도 예리한 지성을 드러낸다.

배경은 강렬한 붉은색이 지배한다. 왼쪽의 심홍색 커튼은 극적인 무대 장치를 연상시키며, 벽면 전체를 붉은 톤으로 물들인다. 실내 공간은 다채로운 오브제들로 채워져 있다. 오른쪽 상단의 창은 기하학적 문양과 새의 형상이 어우러진 디자인으로, 아르데코 스타일을 예고한다. 바닥에는 검은 고양이가 웅크리고 있고, 녹색 쿠션이 놓인 가구들이 배치되어 있다. 바닥은 대각선으로 뻗은 패턴으로 공간에 역동성을 부여한다.

키슬링의 붓 터치는 평면적이면서도 질감이 풍부하다. 특히 천의 표현에서 그의 기량이 드러나는데, 커튼의 무거운 벨벳 질감, 정장의 매끄러운 직물, 쿠션의 부드러운 표면이 각각 다르게 묘사되어 있다. 색채는 강렬하지만 조화롭게 배치되어, 전체적으로 장식적이면서도 통일된 화면을 만들어낸다.

몽파르나스 예술가들의 우정이 낳은 걸작

'장 콕토의 초상'은 여러 층위에서 미술사적, 문화사적 의미를 지닌다. 첫째, 이 작품은 에콜 드 파리 예술가들 사이의 긴밀한 유대관계를 보여주는 증거다. 키슬링과 콕토는 몽파르나스에서 만나 평생의 친구가 되었으며, 이 초상화는 그들의 우정을 기념하는 동시에 서로의 예술을 인정하는 제스처였다.

둘째, 장 콕토(1889-1963)라는 인물 자체가 지닌 상징성이 크다. 콕토는 시인, 극작가, 영화감독, 화가로서 20세기 프랑스 문화계의 르네상스적 천재였다. 그는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등 아방가르드 운동의 중심에 있었으며, 피카소, 스트라빈스키, 디아길레프 등과 협업하며 예술 장르의 경계를 허물었다. 1916년은 콕토가 발레 뤼스를 위한 '파라드(Parade)' 작업을 준비하던 시기로, 그의 창작 활동이 꽃피기 시작한 때였다.

셋째, 작품은 1910년대 파리 아방가르드의 미학적 특징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강렬한 색채 사용은 야수파의 유산이며, 장식적 패턴과 평면성은 입체주의와 이국취향의 영향이다.

넷째, 초상화 장르의 재해석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전통적 초상화가 인물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도구였다면, 키슬링의 초상화는 모델이 속한 예술적·지적 공동체와 그 시대의 미학적 취향을 함께 포착한다. 콕토를 둘러싼 오브제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그의 정체성과 미적 취향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다섯째, 이 작품은 제1차 세계대전 중에 그려졌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예술가들은 창작을 멈추지 않았으며, 오히려 전통적 가치가 붕괴하는 시대에 새로운 미학을 모색했다. 화려한 색채와 장식성은 암울한 시대에 대한 예술적 저항이자 삶에 대한 긍정이었다.

세기말의 우아함이 흐르는 공간

이 초상화를 바라보는 것은 1910년대 몽파르나스의 한 작업실 안으로 들어가는 경험이다. 붉은 벨벳 커튼이 드리워진 공간은 사적이면서도 극적이며, 마치 무대 위의 한 장면처럼 연출되어 있다.

젊은 콕토의 시선은 차분하지만 꿰뚫는 듯하다. 그의 눈빛에는 천재 시인의 예리한 관찰력과 동시에 청년기의 연약함이 공존한다. 회색 정장은 그를 우아하게 감싸고 있지만, 그 우아함 속에는 어딘가 불안정한 긴장감이 흐른다.

붉은색은 이 그림의 감정적 중심이다. 커튼의 심홍색은 열정과 관능을 암시하며, 의자의 붉은 벨벳은 부르주아적 안락함과 예술가적 보헤미아니즘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한다. 이 붉은색들은 따뜻하면서도 불안하며, 위로하면서도 도발적이다.

바닥의 검은 고양이는 신비로운 존재감을 발산한다. 고양이는 예술가들이 사랑한 동물이자, 독립성과 신비주의의 상징이다. 이 고양이는 마치 이 초상화 속 세계의 수호자처럼, 조용히 웅크리고 있다.

전체적으로 이 초상화는 세기말에서 모더니즘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분위기를 담고 있다. 화려함과 우수, 확신과 불안, 전통과 혁신이 복잡하게 뒤섞인 이 시대의 감수성이 한 젊은 천재의 초상 속에 포착되어 있다.

재평가받는 에콜 드 파리의 거장

미술 시장에서 모이즈 키슬링의 위치는 최근 들어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한때 모딜리아니나 샤갈의 그늘에 가려졌던 그의 작품들이 에콜 드 파리 미술에 대한 재평가와 함께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키슬링의 작품들은 국제 경매 시장에서 수십만 달러에서 수백만 달러 사이에 거래된다. 특히 1910-20년대 초상화와 누드화가 높은 평가를 받는다. 2015년 소더비 경매에서 그의 1916년 작 누드화가 약 428만 달러에 낙찰되며 주목을 받았고, 2019년에는 또 다른 초상화가 300만 달러 이상에 거래되었다.

'장 콕토의 초상'과 같이 저명한 문화인을 그린 초상화는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작품 자체의 예술적 완성도에 더해, 모델의 명성과 역사적 중요성이 시장 가치를 높이는 요인이 된다. 콕토는 20세기 프랑스 문화사의 거대한 인물이며, 그를 그린 초상화는 단순한 미술품을 넘어 문화사적 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미술 시장 전문가들은 키슬링의 작품이 여전히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어 있다고 평가한다. 에콜 드 파리의 다른 주요 화가들에 비해 국제적 인지도가 낮은 편이지만, 작품의 질과 역사적 중요성을 고려하면 향후 가치 상승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주요 미술관들이 에콜 드 파리 화가들에 대한 회고전을 개최하면서 학술적 재평가가 진행 중이다. 프랑스 퐁피두 센터, 파리 현대미술관, 이스라엘 텔아비브 미술관 등이 키슬링 작품을 적극적으로 전시하고 수집하고 있다. 이러한 기관의 관심은 시장에서도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키슬링의 시장 가치는 작품의 시기, 주제, 크기, 보존 상태, 출처(provenance)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1910-20년대 초상화와 누드화가 가장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며, 특히 저명인사를 그린 초상화나 중요 전시 이력이 있는 작품들은 프리미엄이 붙는다.

컬렉터들 사이에서 키슬링은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모더니즘 회화의 주류에서 약간 비껴나 있지만, 바로 그 때문에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며, 에콜 드 파리라는 국제적 예술 운동의 다양성과 풍요로움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존재로 재조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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