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 에밀 오톤 프리에즈 '꽃다발' - 야수파의 색채 혁명을 담은 정물

고요비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6-02-11 10:52:09

야수파 운동의 핵심 멤버, 프리에즈  에밀 오톤 프리에즈 '꽃다발'

[K라이프저니|글·사진 고요비 기자] 에밀 오톤 프리에즈(1879-1949)는 20세기 초 프랑스 미술계를 뒤흔든 야수파(Fauvism) 운동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이다. 노르망디 지방의 르아브르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같은 고향 출신인 라울 뒤피와 함께 미술 수업을 받았으며, 이후 파리의 에콜 데 보자르에서 앙리 마티스와 알베르 마르케를 만나 평생의 동료가 되었다.

프리에즈는 1905년 살롱 도톤 전시회에서 마티스, 드랭, 블라맹크 등과 함께 강렬한 원색과 대담한 붓 터치의 작품들을 선보였고, 비평가 루이 복셀로부터 "야수들(Fauves)"이라는 충격적인 명칭을 얻으며 미술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이 전시는 20세기 모더니즘 회화의 출발점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그의 예술적 여정은 인상주의에서 출발해 야수파의 색채 해방을 거쳐, 이후 보다 구조적이고 절제된 양식으로 변화했다. 특히 세잔의 영향을 받아 색채의 강렬함과 형태의 견고함을 조화시키는 독자적인 화풍을 발전시켰다. 그는 풍경화와 정물화에 특히 뛰어났으며, 고향 노르망디와 남프랑스의 풍경을 즐겨 그렸다.

프리에즈는 야수파의 다른 거장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색채의 표현적 사용과 회화의 순수한 조형성을 추구한 점에서 20세기 모더니즘 회화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그는 교육자로서도 활동하며 후배 세대에게 영향을 미쳤고,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는 등 생전에 상당한 인정을 받았다.

색채가 폭발하는 야수파 정물화

1906년 작 '꽃다발(Bouquet de Fleurs)'은 야수파 운동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의 작품으로, 프리에즈의 색채 감각이 가장 대담하고 자유롭게 표현된 시기의 결정체다. 1906년은 야수파가 살롱 앙데팡당과 살롱 도톤에서 연이어 성공을 거두며 파리 화단의 중심으로 부상한 해였다.

캔버스 위에 유화로 그려진 이 작품은 45 x 30cm의 비교적 작은 크기지만, 그 안에 담긴 에너지는 결코 작지 않다. 화면 중앙을 차지하는 꽃병에는 다양한 꽃들이 무질서하게 꽂혀 있다. 붉은 양귀비, 흰 데이지, 분홍과 보라의 꽃잎들이 뒤섞여 있으며, 짙은 청록색과 검은색의 잎사귀들이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색채 사용은 혁명적이다. 주황색과 노란색이 지배하는 배경은 마치 빛 자체가 색으로 변한 듯하며, 왼쪽 상단의 주황빛에서 오른쪽의 노란빛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꽃병은 보라색, 노란색, 녹색이 뒤섞인 다면체처럼 표현되어, 빛의 반사가 아니라 색채 자체의 자율적 운동을 보여준다.

프리에즈의 붓 터치는 빠르고 자신감 넘친다. 두껍게 쌓인 물감은 조각적 질감을 만들어내며, 각 붓질은 독립적인 존재감을 지닌다. 꽃잎들은 세밀하게 묘사되지 않고 색채의 덩어리로 암시되며, 이는 야수파의 핵심 원칙인 '색채의 자율성'을 구현한다.

화면 하단의 테이블과 그 위의 오브제들도 순수한 색면으로 처리되어 있다. 파란색 체크무늬 천, 녹색과 검은색의 또 다른 병, 산재한 과일 같은 형태들이 배치되어 있지만, 모두 색채의 교향곡을 구성하는 음표들일 뿐 사실적 재현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 색채는 대상을 묘사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주제다. 주황색은 실제 벽의 색이 아니라 화가가 느낀 빛의 온도이며, 보라색 꽃병은 실제 꽃병이 아니라 화가의 내면에서 우러나온 색채적 감흥이다.

회화 언어의 해방을 선언한 역사적 작품

'꽃다발'은 미술사적으로 여러 층위의 의미를 지닌다. 첫째, 이 작품은 야수파의 핵심 이론인 '색채의 해방'을 완벽하게 구현한다. 인상주의 이후 색채는 점차 자연의 재현에서 벗어나 표현의 도구로 변모했고, 야수파는 이를 극단까지 밀고 갔다. 프리에즈의 주황색 배경과 보라색 꽃병은 자연의 모방이 아니라 순수한 감정의 표현이다.

둘째, 정물화라는 전통적 장르의 재해석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부터 세잔의 정물화까지, 정물화는 서양 미술의 중요한 장르였다. 프리에즈는 이 전통을 야수파의 언어로 완전히 재구성하며, 정물화가 단순히 사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색채와 형태의 관계를 탐구하는 실험실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셋째, 1906년이라는 제작 시기가 지닌 의미가 크다. 이 해는 세잔이 사망한 해이자, 피카소가 '아비뇽의 처녀들' 작업을 시작하기 직전이었다. 야수파는 절정에 있었고, 곧 입체주의가 등장하게 된다. 프리에즈의 이 작품은 19세기 회화에서 20세기 모더니즘으로 넘어가는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넷째, 색채 이론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야수파 화가들은 보색 대비, 색채의 동시 대비, 색채의 감정적 효과 등을 직관적으로 실험했다. 이 작품의 주황색-파란색 대비, 빨강-녹색 대비는 과학적 색채 이론을 예술적 직관으로 승화시킨 사례다.

다섯째, 야수파의 짧은 전성기를 대표한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야수파는 1905-1907년 약 2-3년간 절정을 이루었고, 이후 구성원들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1906년 작품은 바로 그 정점의 순간을 담고 있으며, 이후 프리에즈 자신도 보다 구조적이고 절제된 양식으로 변화한다.

색채가 노래하는 생명의 찬가

이 작품 앞에 서면 색채의 순수한 기쁨이 전해진다. 주황색 배경은 마치 여름 오후의 햇살이 실내로 쏟아져 들어오는 순간을 포착한 듯하며, 그 빛 속에서 꽃들은 생명력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한다.

붉은 양귀비는 열정적으로 타오르고, 흰 데이지는 순수하게 빛나며, 보라색과 분홍색 꽃잎들은 서로 어우러져 춤을 춘다. 이 꽃들은 식물학적으로 정확한 재현이 아니라, 꽃이라는 존재가 주는 본질적 환희의 표현이다.

꽃병의 다채로움은 신비롭고 풍요롭다. 노란색과 빨간색이 뒤섞인 그 표면은 마치 살아 숨 쉬는 유기체처럼 느껴진다. 프리에즈는 단순한 도자기 화병을 색채의 교향곡이 울려 퍼지는 악기로 변모시켰다.

배경의 주황색과 노란색은 따뜻하고 포용적이다. 이 색채들은 공간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공간 자체가 되며, 관람자를 색채의 세계 속으로 초대한다. 야수파의 색채는 공격적이라기보다는 생명력 넘치며, 파괴적이라기보다는 창조적이다.

전체적으로 이 정물화는 삶에 대한 긍정과 예술의 자유를 노래한다. 20세기 초 파리의 젊은 예술가들이 느꼈던 해방감, 기존 규칙을 깨뜨리고 새로운 미학을 창조하는 기쁨이 이 작은 캔버스 위에 응축되어 있다.

이 그림을 감상하는 것은 단순히 꽃다발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색채 그 자체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경험하는 것이다. 프리에즈는 우리에게 말한다. 색채는 현실을 재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현실이며 기쁨이며 생명이라고.

재발견되는 야수파의 숨은 보석

미술 시장에서 에밀 오톤 프리에즈의 위치는 야수파의 다른 거장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용하지만, 점차 재평가받고 있다. 마티스나 드랭 같은 동료들이 수천만 달러에 거래되는 것에 비하면 그의 작품들은 여전히 접근 가능한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다.

국제 경매 시장에서 프리에즈의 야수파 시기 작품들은 통상 10만 달러에서 100만 달러 사이에 거래된다. 특히 1905-1907년 사이의 강렬한 색채가 돋보이는 작품들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 2010년대 이후 그의 작품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가격도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다.

'꽃다발'과 같은 1906년 작품은 프리에즈의 야수파 전성기를 대표하는 시기의 작품으로, 작품의 질과 역사적 중요성을 고려할 때 상당한 시장 가치를 지닌다. 정물화는 풍경화에 비해 약간 낮은 가격대를 형성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 작품처럼 색채가 뛰어나고 야수파의 특징이 명확한 경우 프리미엄이 붙는다.

미술 시장 전문가들은 프리에즈를 '가치 대비 저평가된 야수파 화가'로 지목한다. 그의 미술사적 중요성과 작품의 질을 고려하면, 마티스나 드랭과의 가격 격차가 지나치게 크다는 것이다. 특히 야수파에 대한 학술적 재평가가 진행되면서 프리에즈의 독창적 기여가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주요 미술관들의 컬렉션에서도 프리에즈의 위치가 강화되고 있다. 파리 오르세 미술관, 퐁피두 센터, 뉴욕 MoMA,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특히 야수파 운동을 다루는 전시에서는 필수적으로 그의 작품이 포함된다. 르아브르의 앙드레 말로 미술관은 고향 출신 화가인 프리에즈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수집하고 있다.

최근 야수파 회화 전반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프리에즈 작품의 가치도 함께 상승하고 있다. 20세기 초 모더니즘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단순히 스타 작가만이 아니라 운동 전체의 맥락에서 작품을 평가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프리에즈 같은 '숨은 거장'들이 재조명받고 있다.

컬렉터들 사이에서는 프리에즈의 작품이 '미래 가치 상승 가능성이 높은 투자 대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마티스 작품을 구입하기 어려운 컬렉터들이 같은 시기, 같은 미학을 공유하면서도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가격의 프리에즈 작품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작품의 출처(provenance), 전시 이력, 출판 기록 등이 명확한 작품일수록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개인 컬렉션에서 나온 작품들이 경매에 등장할 때마다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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