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 앙드레 드랭 '우물이 있는 광장' - 야수파에서 고전주의로의 회귀
고요비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6-02-11 10:21:26
[K라이프저니|글·사진 고요비 기자] 앙드레 드랭(1880-1954)은 20세기 초 프랑스 미술계를 뒤흔든 야수파(Fauvism) 운동의 창시자 중 한 명이다. 앙리 마티스와 함께 1905년 살롱 도톤 전시에서 강렬한 원색과 대담한 붓 터치로 미술계에 충격을 안겼고, 비평가들로부터 "야수들(Fauves)"이라는 명칭을 얻었다.
드랭은 파리에서 태어나 아카데미 카리에르에서 수학했으며, 그곳에서 마티스와 모리스 드 블라맹크를 만나 평생의 동료가 되었다. 1900년대 초반 그의 작품들은 색채의 해방을 선언한 야수파 운동의 정수를 보여주었으며, 이는 이후 표현주의와 추상미술의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1910년대 이후 드랭은 급진적인 모더니즘에서 벗어나 고전주의적 전통으로 회귀하는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거장들과 푸생, 쿠르베 같은 고전 대가들을 재발견하며, 보다 견고한 형태와 절제된 색채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일부 동료와 비평가들로부터 '배신'이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20세기 미술에서 '질서로의 회귀(Rappel à l'ordre)' 운동을 대표하는 사례로 평가받았다.
지중해의 시간이 멈춘 풍경
1930-32년 작 '우물이 있는 광장(Plaza with a Well)'은 드랭의 후기 고전주의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이 시기 그는 이탈리아와 남프랑스를 여행하며 지중해 연안의 고풍스러운 마을 풍경에 깊이 매료되었고, 그 인상을 화폭에 담았다.
화면 중앙에는 철제 장식이 달린 우물이 자리 잡고 있다. 우물의 검은 철재 구조물은 곡선의 우아함을 지니며, 화면에 수직적 중심축을 제공한다. 주변을 둘러싼 건물들은 아이보리, 베이지, 연한 갈색 톤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각기 다른 높이와 각도로 배치되어 광장에 입체감을 부여한다.
왼쪽 건물의 밝은 노란색 벽면과 하늘의 연한 청색은 남유럽의 맑은 대기를 연상시킨다. 오른쪽 건물의 붉은 기와지붕은 따뜻한 색조의 포인트가 되며, 중앙 높은 건물의 회녹색 지붕은 시간의 흔적을 담고 있다.
드랭의 붓질은 야수파 시절의 격렬함에서 벗어나 훨씬 차분하고 절제되어 있다. 색채는 원색의 폭발이 아니라 톤의 조화를 추구하며, 형태는 기하학적으로 단순화되면서도 견고한 구축성을 지닌다. 이는 세잔의 영향과 이탈리아 르네상스 벽화의 기념비성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화면 전체에는 사람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아, 텅 빈 광장은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함을 자아낸다. 이러한 공간 처리는 1920-30년대 이탈리아 형이상회화(Pittura Metafisica)의 영향을 암시하기도 한다.
모더니즘과 전통 사이의 대화
'우물이 있는 광장'은 20세기 미술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한다. 이 작품은 드랭이 젊은 시절의 혁명적 야수파에서 고전주의로 전환한 이후의 성숙한 양식을 보여준다.
첫째, 이 그림은 1920-30년대 유럽 화단을 지배했던 '질서로의 회귀' 운동을 구현한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혹함을 겪은 후, 많은 예술가들이 전위적 실험보다는 전통과 질서, 명료함을 추구했고, 드랭은 그 선두에 섰다. 피카소의 신고전주의 시기와 맥을 같이하는 이러한 경향은 당시 시대정신의 반영이었다.
둘째, 작품은 모더니즘과 전통 사이의 긴장을 담고 있다. 형태의 단순화와 기하학적 구성은 분명히 모던한 감수성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고전적 균형과 조화를 추구한다. 이는 전위와 보수, 혁신과 전통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선 제3의 길을 모색한 시도로 볼 수 있다.
셋째, 지중해 풍경에 대한 천착은 단순한 풍경화를 넘어 유럽 문명의 근원에 대한 탐구였다. 우물이 있는 광장이라는 모티프는 고대부터 지중해 문화권에서 공동체의 중심이었던 공간이며, 드랭은 이를 통해 시간을 초월한 영속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미술사적으로 드랭의 이러한 전환은 논쟁적이다. 혁명가가 보수로 돌아섰다는 비판과, 진정한 예술적 성숙을 이루었다는 옹호가 공존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의 후기 작품들이 20세기 미술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햇살 가득한 고요의 시
이 그림 앞에 서면 마치 오후의 나른한 정적 속으로 빠져드는 듯하다. 우물이 있는 광장은 텅 비어 있지만, 그 고요함은 쓸쓸하지 않다. 오히려 몇 세기 동안 이곳에 스며든 삶의 흔적들이 벽면의 색채 속에, 돌바닥의 그림자 속에 남아 있는 듯하다.
중앙의 우물은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라 시간의 증인이다. 철제 장식의 우아한 곡선은 장인의 손길을 기억하고, 돌로 쌓아 올린 우물대는 몇 대에 걸쳐 물을 길어 올렸을 사람들의 손때를 간직하고 있다.
건물들의 색채는 지중해의 햇살을 머금고 있다. 아이보리와 베이지의 부드러운 조화는 오랜 세월 햇빛과 바람에 바랜 석회 벽의 질감을 떠올리게 한다. 그림자는 짙지 않고 연하게 깔려 있어, 정오가 막 지난 오후의 빛을 암시한다.
이 풍경에는 향수와 명상이 공존한다. 근대 이전의 느린 시간이 흐르는 곳, 산업화의 소음이 아직 닿지 않은 곳에 대한 그리움이 화폭 전체에 배어 있다. 동시에 텅 빈 공간은 관람자에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채워 넣을 여지를 남긴다.
드랭의 붓 터치는 조용하면서도 확신에 차 있다. 야수파 시절의 격정은 사라지고, 대신 깊은 사유와 성찰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것은 젊음의 폭발이 아니라 성숙의 고요함이며, 혁명의 함성이 아니라 지혜의 침묵이다.
재평가 중인 거장의 시장 가치
미술 시장에서 앙드레 드랭의 위치는 복잡하고 흥미로운 궤적을 그린다. 야수파 창시자로서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장 가치는 마티스나 피카소 같은 동시대 거장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어 왔다.
이러한 평가 절하는 여러 요인에서 비롯되었다. 첫째, 그의 급진적인 양식 변화가 일관성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둘째,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점령하의 프랑스에서 활동을 이어간 이력이 전후 그의 명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셋째, 전위적 모더니즘이 지배적이었던 20세기 중후반 미술계에서 그의 고전주의 회귀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드랭에 대한 재평가가 진행 중이다. 국제 경매 시장에서 그의 야수파 시기 작품들은 수백만 달러에서 천만 달러 이상에 거래된다. 2018년 소더비 경매에서 그의 1905년 작 야수파 풍경화가 1,730만 달러에 낙찰되며 주목을 받았다.
후기 고전주의 시기 작품들은 야수파 시기 작품보다는 낮은 가격대를 형성하지만, 점차 재평가받고 있다. '우물이 있는 광장'과 같은 1930년대 작품들은 통상 수십만 달러에서 수백만 달러 사이에 거래되며, 작품의 크기, 보존 상태, 전시 이력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
미술 시장 전문가들은 드랭의 작품이 '가치 대비 저평가된(undervalued)' 영역에 속한다고 지적한다. 그의 미술사적 중요성과 작품의 질을 고려할 때, 향후 시장 가치가 상승할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 특히 20세기 미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다양한 경향들이 재조명되면서, 단선적 모더니즘 서사에서 벗어난 드랭의 예술적 궤적이 새롭게 평가받고 있다.
주요 미술관들도 드랭 컬렉션을 확대하고 있다. 파리 퐁피두 센터, 런던 테이트, 뉴욕 MoMA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2010년대 이후 여러 대규모 회고전이 개최되었다. 이러한 기관의 관심은 시장 가치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klifejourney2025@gmail.com
[ⓒ K라이프저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