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 아우슈비츠에서 사라진 화가의 '연인들' - 펠릭스 누스바움이 남긴 달빛 아래 영원한 사랑

고요비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6-02-15 08:25:26

홀로코스트가 앗아간 천재, 누스바움의 비극적 생애 펠릭스 누스바움의 '연인들'

[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독일 표현주의 화가 펠릭스 누스바움(Felix Nussbaum, 1904-1944)은 20세기 미술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한 예술가 중 한 명이다. 1904년 독일 오스나브뤼크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베를린과 로마에서 미술을 공부하며 촉망받는 젊은 화가로 성장했다. 1920년대 후반 베를린 미술계에서 주목받던 그는 신즉물주의(Neue Sachlichkeit) 경향과 표현주의적 감수성을 결합한 독특한 화풍을 선보였다.

그러나 1933년 나치의 집권과 함께 그의 삶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유대인 예술가로서 독일을 떠나야 했던 누스바움은 이탈리아, 프랑스, 벨기에를 떠돌며 망명 생활을 이어갔다. 1940년 벨기에에서 체포되어 수용소에 갇혔다가 탈출했지만, 1944년 브뤼셀에서 아내 펠카 플라테크와 함께 게슈타포에 붙잡혀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다. 같은 해 그는 가스실에서 4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누스바움은 미술사적으로 독일 표현주의와 신즉물주의의 교차점에 위치한 화가로 평가받는다. 그의 작품은 오토 딕스(Otto Dix), 게오르크 그로스(George Grosz) 등 동시대 독일 화가들의 날카로운 사회 비판과 유사하면서도,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망명자로서의 고독이 더해진 독특한 정서를 담고 있다.

달빛 아래 포옹 - 1928년 '연인들'의 화법과 상징

'연인들(Lovers, 1928)'은 누스바움이 24세에 그린 작품으로, 그가 아직 베를린에서 활동하던 시기의 작품이다. 이 그림은 어둠 속에서 포옹하는 연인을 묘사하고 있는데,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깊고 신비로운 밤의 분위기다.

화면 중앙 상단에는 둥근 보름달이 떠 있고, 그 빛은 은은하게 주변을 비추고 있다. 하늘에는 작은 별들이 점점이 박혀 있어 밤하늘의 깊이를 더한다. 화면 하단에는 노란빛의 벽 위에 서 있는 두 연인이 있다. 검은 옷을 입은 남성과 흰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서로를 껴안고 있으며, 그들의 얼굴은 서로를 향해 가까이 맞닿아 있다. 오른쪽에는 붉은 지붕을 가진 작은 탑이 보이는데, 이는 중세 유럽의 성벽이나 요새를 연상시킨다.

누스바움은 거친 붓질과 두꺼운 물감층을 사용하여 질감 있는 표면을 만들어냈다. 배경의 어두운 톤과 전경의 밝은 벽면은 강렬한 대비를 이루며, 연인들은 이 명암의 경계에 서 있다. 색채는 전체적으로 어둡고 제한적이지만, 달빛의 차가운 흰색, 벽의 따뜻한 노란색, 탑의 붉은 주황색이 조화를 이루며 화면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화풍은 표현주의적 감성과 상징주의적 요소가 결합된 형태다. 구체적 묘사보다는 분위기와 감정 전달에 집중하고 있으며, 단순화된 형태와 거친 질감은 내면의 감정을 강조한다.

사랑과 고독의 이중주 - 그림이 담은 보편적 가치

'연인들'은 표면적으로는 사랑의 친밀함을 그린 작품이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복잡한 정서가 교차한다. 연인들은 서로를 껴안고 있지만, 그들을 둘러싼 세계는 광활하고 어둡다. 달빛은 아름답지만 차갑고, 별들은 반짝이지만 멀리 떨어져 있다. 이들의 포옹은 사랑의 표현인 동시에 외부 세계로부터의 방어이기도 하다.

벽 위에 선 연인들의 위치는 의미심장하다. 그들은 안전한 내부도, 자유로운 외부도 아닌 경계에 서 있다. 이는 1920년대 후반 유럽의 불안한 시대 분위기, 그리고 유대인으로서 누스바움이 느꼈을 불안정한 정체성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발렌타인데이를 맞아 이 그림을 다시 보면, 사랑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진정한 사랑은 완벽한 조건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하고 어두운 세계 속에서도 서로를 껴안고 위로하는 것임을 이 그림은 보여준다. 달빛 아래 포옹하는 연인들의 모습은 9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사랑의 힘과 취약함을 동시에 일깨운다.

밤의 정적 속 떨리는 심장 - 감상자가 느끼는 감정의 울림

이 그림 앞에 서면 고요하지만, 긴장감 있는 정적이 느껴진다. 달빛은 은은하게 빛나지만 따뜻함을 주지 못하고, 밤하늘은 아름답지만 무한한 고독을 담고 있다. 연인들의 포옹은 절박하면서도 부드럽고, 그들의 검은 실루엣은 영원히 그 순간에 멈춰 있는 듯하다.

"어둠 속에서도 서로를 찾아 / 벽 위에 선 두 사람 / 달빛만이 그들의 증인 / 별들만이 그들의 축복"

이 그림이 주는 감정은 낭만적이면서도 쓸쓸하다. 사랑의 달콤함과 세상의 냉혹함이 공존하고, 친밀함과 고독이 교차한다. 관람자는 이 연인들이 얼마나 오래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을지,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면 그들은 어떻게 될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작가의 비극적 운명을 아는 순간, 이 그림은 더욱 애틋하고 슬프게 다가온다.

홀로코스트 예술의 역사적 가치

펠릭스 누스바움의 작품은 미술 시장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의 그림은 예술적 가치뿐 아니라 역사적, 인도주의적 가치를 함께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생전에 남긴 작품은 약 150-200점으로 추정되며, 이 중 상당수가 홀로코스트 기간 중 소실되었다. 현존하는 작품의 희소성은 그의 작품 가치를 더욱 높이는 요소다.

누스바움의 작품은 주로 독일과 유럽의 박물관 및 개인 소장가들이 보유하고 있으며, 경매 시장에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독일 오스나브뤼크에는 그의 이름을 딴 펠릭스 누스바움 하우스(Felix-Nussbaum-Haus)가 있어 그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이 미술관은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설계한 것으로, 건물 자체가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형상화한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연인들'과 같은 1920년대 작품은 누스바움의 초기 양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으로, 후기의 어둡고 고통스러운 작품들과 대비되어 그의 예술적 변화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만약 이 작품이 경매에 나온다면 수십만 달러에서 백만 달러 이상의 가격이 예상되지만, 역사적 중요성을 고려할 때 대부분의 작품은 공공 소장품으로 보존되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홀로코스트 희생자 예술가들의 작품은 단순한 미술품이 아니라 인류의 기억이자 증언이다. 펠릭스 누스바움의 '연인들'은 사랑과 희망이 존재했던 시간,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야만으로 파괴되기 전의 순간을 영원히 기록하고 있다. 발렌타인데이에 이 그림을 되새기는 것은 사랑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동시에, 그 사랑이 짓밟힌 역사를 기억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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